오늘은 먼 길 출장을 왔다. 날은 덥고 장시간 차를 탔더니 지치기도 하고 업무가 끝나고 이제 때늦은 점심을 먹을 차례다. 시원한 것을 먹을까 얼큰한 것으로 먹을까 동료들의 의견을 물은 끝에 든든한 순대국 으로 선택한다. 허기질 때 순대국만한 음식이 없다. 보글보글 끓는 순대국에 빨간 양념장에 새우젓, 들깨가루까지 투하하면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값싸면서도 담백한 성찬이 완성된다. 펄펄 긇는 순대국에 밥을 숭숭 말아 넣고 한 숟갈 뜬다음 그 위에 얹어먹는 깍두기는 여름이면 이열치열, 겨울이면 강추위에 얼은 몸을 녹여주는 최고의 보양식임은 부인할 수 없다. 국밥 한 그릇에 배를 두드리며 트림 한 번 꺼억하면서 이쑤시개를 들고 식당문을 나설 때의 그 포만감과 만족감은 순대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특권이다.
순댓국의 장점은 사골 국물과 돼지고기나마 고기 건더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이라는 것이 었는데 요즘은 물가가 하도 많이 올라 비싸기도 하고 잘못 조리하면 돼지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의 식사와 술안주를 겸할 수있는 소울 푸드였다. 순대국에는 순대뿐만 아니라 머릿고기, 곱창, 오소리감투 등 갖가지 돼지 부속물이 들어간다. 난 그냥 돼지 머리고기와 순대만 들어간 것을 좋아하는데 순대국의 진정한 맛을 느꼈을 때는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재수를 할 때였다. 저녁시간에 중고등학생이다니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지금은 스터디 까페라 할 수있는 24시간 독서실에서 지내면서 밤을 새워 시험준비를 할 때였는데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하다보니 늘 체력이 달렸고 부대꼈다. 그 때 독서실 근처에 아주 허름한 순대국집이 하나 있었다. 외관도 허름하고 테이블도 두어 개, 손님이라곤 가족단위나 회사원들이 오는 곳이 아닌 노동일을 하는 아저씨 들의 함바집 같은, 들어가면 새까만 가마솥이 하나 있고 그곳에서 돼지 사골뼈를 고는 군내가 나는 그런 집이 었다. 어느 날 밤을 샌 아침 배가 고파 김밥이라도 사먹으려고 거리를 나섰는데 마침 그 순대국집이 문을 연 것이다. 한참 망설이다가 일단 먹어보자하고 들어갔는데 희안하게 진국이었다. 땀까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처져 있던 몸에 힘이 생기는 그런 맛이랄까. 그후론 그곳을 자주 찾아서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곤 했는데 그때부터 순대국밥은 나의 최애 음식중 하나가 되었다. 순대국밥은 전국 각지마다 맛이 다 다르고 들어가는 내용물도 차이가 나니 음식명은 순대국밥 한 가지이지만 종류는 수백가지가 넘는다.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하면서도 고유의 각기 다른 맛을 내니 매력적이 아닐 수 없다.
공휴일이다. 회사에 급한일이 있어서 갔다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중 속이 출출해진다. 동네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 집에 들어선다. 나름 주위에서 맛집이라고 이름난 곳이다.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하니 식도를 뜨끈하게 데우며 '꿀꺽' 하며 국물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캬 시원하다."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와 함께 양파 한조각을 쌈장에 찍어 먹는다. 국밥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다가 청량고추 한입 베어 물으니 알싸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이제서야 뱃 속에 무언가를 넣는 듯하다. 짜내듯 국물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시니 마시지도 않은 술이 해장되는 기분, 문득 아버지 생각이난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시다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자 집에 홀로 남아 지내시던 중 급기야는 우울증이 생겨 약까지 드시는 아버지, 아버지도 순대국밥을 좋아하시는데 나만 맛있고 배부르려니 마음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