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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Oct 23. 2024

감기

마음 에세이

[에세이] 감기

한결


비가 세차게 내렸다. 계절은 가을인데 마치 여름 소나기처럼 내리 쏟는 비에 바지가랑이가 다 젖어 겨울인듯한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는데 바지가 축축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우산 안으로 들이치는 한기의 스산함이 몸을 파고 들고 꼭 빨 래를 한 후 젖은 바지를 입은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찝찝함이다. 오후부터는 기분 나쁘게 몸이 으실으실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저녁즈음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육통이 생기면서 살껍데기가 아리다. 옷에만 닿아도 찌릿하고 기분나쁜 통증이 전해져온다. 거기에 기침, 가래, 총체적 난국, 다행히 열은 없다.

귀가하자마자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끼니도 거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잠을 자니 어느덧 아침, 잠시 눈을 떴다가 또 잠에 빠진다. 눈을 뜨니 목에 모래알이 낀 듯 깔깔함이 컹컹 하는 기침과 함께 누워있지도 못하도록 귀찮게한다. 오늘 어머니 면회를 가고 백화점에가서 겨울 패딩을 하나 장만하겠다는 계획과 운동은  바로 접어두고 산처럼 쌓인 설거지도 나중으로 미룬다. 이것 저것 다 귀찮고 까랑까랑한 목 때문에 미칠지경으로 침을 삼키면 목구멍이 따끔거려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만사가 귀찮아 다시 약을 퍼붓고는 다시 누워있기로한다.


이번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많은 수가 침투했나보다. 목부터 몸뚱이 까지 어디 안아픈 곳이 없는 것이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이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탓이다. 몇 주전부터 몸은 이미 경고를 해 왔었다. 운동도 하고 잠도 푹 자려했지만 몸이 원하는 것 만큼 쉬어주질 못했고 쉬라고 잘 먹으라고 하는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했다. 회사 원거리 출장에 주말이면 부모님 돌봄에 젊은 날 같지 않은 몸을 혹사시킨 건 맞다. 감기 하나에 이렇게 비실대다니 이번 주말동안 예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  보다 더 아픈 세상을 경험했다.

토요일 오후 속을 너무 비워두면 위장까지 버릴 것같아 밥을 먹기로 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랑 밑반찬 몇 가지. 원래 뭐든지 잘먹는 체질이지만 도저히 넘어갈 것같지않아 국물이라도 먹으려고 소머리 국밥을 배달시킨다.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건더기를 미끈덩 목구멍으로 넘긴다. 조금 짠듯한데 뒷맛이 쓰다. 함께 먹는 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맛나게 먹는데 맛을 느낄 수 없는 나는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국에 밥을 말아 꾸역꾸역 넘긴다. 배고픔도 배부름도 느껴지지 않는 철저히 생존을 위한 목넘김이다.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버텼다. 약을 털어 넣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눈을 떠보니 일요일 아침이다. 금요일에서 바로 일요일로 건너 뛴 기분은 뭘까. 거울을 보니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루느라 얼굴이 핼쓱해졌다. 이러다가는 월요일 출근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따뜻한 미역국을 데워 밥을 말아 먹는다. 연차를 내도 되지만 부모님 위급상황에 대비하여 며칠은 남겨두어야하기에 누워서 편히 쉴수 없다.  기침과 가래는 그대로지만 몸살의 강도가 어제보다는 약해졌다.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점점 좋아지려한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고보면 감기는 삶의 교훈이다. 스스로 몸관리를 해야한다는 건강관리의 중요성과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감사, 이렇게 두 가지 교훈이다. 내 몸을 누가 사랑해줄까.  내가 스스로 챙기고 사랑해야 건강한 몸으로지낼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평범한 일상이 평범한 것이 아닌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알면서도 생각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살았던 건강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 배우고 있다. 이윽고 월요일 아침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두껍게 옷을 입고 목을 감싸고 소중한 것을 곁에 있을 때 지키지 못하면 고생한다는 교훈을 되씹으면서 출근을 한다. 한층 쌀쌀해진 날씨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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