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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14. 2024

가장 숭고하고도 아픈 이름, 돌봄

마음 에세이

[에세이] 가장 숭고하고도 아픈 이름, 돌봄

한결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양쪽 어깨가 뻐근하니 눈도 안떠지고 일어나기가 싫다. 휴일엔 잠을 푹 자는 것도 좋지만 일찍 일어나 해야할 숙제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화장실 청소라든가 분리수거를 일찍 끝내놓고  느긋하게 아침 커피 시간을 즐기는 것, 그리고 각 계절마다의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는 것 등이다. 난 휴일의 특권같은 이 시간을 좋아한다. 산책을 나섰다. 내일은 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가야하고 어머니 퇴원 시 그날 회사에 바쁜 일정이 있는지 점검해야하고 어머니를 다시 요양병원에 입소시키면 그때 필요한 서류 목록을 간호사에게 미리 전달해야한다. 간병인비도 계산해야하고 짐도 요양병원에 미리 요양병원에 가져다 놓아야한다. 낙엽처럼 쌓이는 생각의 더미 속에서 헤매다보니 벌써 햇살이 따스하게 비출만큼 시간이 흘렀다.


내겐 90이 다 되어가시는 아버지와 80이 넘으신 어머니가 계시다. 가까운 거리에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뵙는 편이었는데 두 분의 연세가 70대가 될 때까지는 크게 손 가는 것 없이 그런대로 무난히 생활을 했다. 그런데 70을 넘기면서부터 조금씩 건강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무릅 인공관절 수술을 시작으로 당뇨, 요실금, 수면 장애 등 먹는 약이 점점 늘어나더니 지금은 뇌경색에 알츠하이머로 장애 4등급을 받았고 아버지는 척추관 협착증 수술을 시작으로 고관절 골절, 우측 손 마비로 같은 장애등급을 받았다. 부모님 모두 수 년간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요양보호사에 24시간 간병인까지 두면서 집에서 돌봄을 이어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두 분 다 각자가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힘든 시점까지 이르러 결국 혼자 걷지못하는 어머니를 집에서 가까운 뇌질환 전문요양병원에 모셨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얼마전 당남염 수술로 지금은 일반 병원에 입원 중이시다. 어제 토요일엔 엔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왔고 월요일 다시 진료를 예약했다. 머리가 아프다 최근 몇년간 회사에서 일하다가 부모님댁으로 뛰쳐나가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고  주말도 요양병원에서 어머니 외출을 시키느라 거의 쉬질 못했다. 부모님께 온통 생각과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 내 일상도 흐트러져 직장 생활도 편치 않다. 우울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어 바람 좀 쐬려 올해 11월에 베트남 여행을 에약했으나 어머니가 아직 퇴원하지 못해 여행을 취소하고 위약금만 물었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그러나 OECD 국가중 노인빈곤률 세계 1위의 불명예 대한민국, 지금의 노인들은 모아준 재산이 풍족하다면 모르겠으나 노후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돌봄을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돌봄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다. 일상생활, 취업, 취미, 개인적인 사생활까지도 다 내려놓고 돌봄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상처와 육체적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돌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돌봄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돌봄은 거의 가족이 떠맡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가족의 돌봄은 경제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 들면서 주변에 요양원, 요양병원, 주간보호센터 등이 눈에 뜨이게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 있으면서 경제력이 없다면 어떻게 돌봄의 의무를 행해야 할까. 회사 어느 직원어 어머니는 요양병원 1인실에 간병인을 두고 월 60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있다. 내 어머니는 3인실을 쓰는데 매월 350만원 정도가 든다. 거기에 요양병원에서 진료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약값이나 진료비는 따로다. 돌봄은 물질이 바쳐주지 않는 사람 들은 꿈도 꾸지못한다. 요양원은 비용이 휠씬 적게 들지만노인들은 요양원에간다고 하면 죽으러 가는것으로 생각하고 자식에게 버림받는다고 생각하며 펄쩍 뛰기에 요양원에 보내기도 어렵다.

연로하고 병약한 부모님에 대한 돌봄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한 분만 그러면 다행인데 두 분에게 동시에 문제가 생기면 죽을 맛이다. 이젠 올 해 주어진 휴가일 수를 거의 소진해 또 아프실까봐 걱정이다. 어떤 분이 말하길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한다. 돌아가시면 후회한다고 말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잘했든 못햇든 후회는 남기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자신이 후회없이 돌봄을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냥 노고가 많아요. 힘드시죠. 그정도면 족하다.


동료  후배가 말하길 자신의 도 내 부모님 연배인데 얼마나 돌봄에 시달렸는지 친이 돌아가시자


"할만큼 했다."


딱 그말  밖에 안나왔다고 다. 부모자식 간의 혈육의 정과 존경심, 감사도  파괴할만큼 돌봄은 힘들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즈음, 돌봄은 가장 숭고하면서도 죄의식을 갖게하기도하고 부모를 원망하게  만드는 아픈 이름이다.

결국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사회 안전망의 확보다. 수많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움직이는 힘은 돈이다. 즉,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되어 뭐든지 돈으로 계산된다. 식대부터 해서 3인실은 얼마, 6인실은 얼마, 재활치료 한 종류당 몇분에 얼마, 기저귀 얼마, 한 가지 복지가 실현될때마다 무조건 돈이다. 일부러 구직을 하려고 하지 않는 실업급여, 쓸데없이 수시로 교체하는 멀쩡한 보도 블럭, 지역발전을 핑계로 수지타산에 맞지않는 선심성 정책, 이런 것들 좀 그만하고 노인 복지에 좀 더 신경썼으면 한다. 가족의 부양에 책임을 떠맡기듯 하는 현 돌봄의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돌봄을 받는 자, 돌보는 자,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돌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는 돌봄의 시스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스템의 허점 등에 대해 공적논의가 지금부터라도 활발히 논의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돌봄의 대상자가 될것이고 순식간에 돌봄의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그 때 버림받는 가족 난민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돌봄은 어느 개인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국가와 사회, 국민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지고 해결해야할 숙제다. 점점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초고령화시대,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돌봄의 무게는 계속하여 우리를 짓누를 것이고 숨을 조여 올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늙고 병든다.


어느새 집 앞, 출발했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좀 어떠세요. 아버지."

"얼음 찜질 했더니 좀 좋아진 것도 같아."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내일 입원하거나 이런 건 없어야할텐데 참 걱정이다.  마음을 좀 다스려야겠다. 끊임없는 부모님의 요구와 돌봄에 지쳐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닌데 잘 안되겠지만 차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햇살에 무거운 내 어깨를 맡기며 며 토닥거리는 듯한 포근함에 깜빡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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