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댓돌
한결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평상 시 같았으면 으레 비오는 날이겠거니 하던 마음이 군대에 가있는 아들이 아프다고 하여 주말에 상비약을 챙겨 면회를 가서 얼굴을 보고 약을 먹였지만 소용이 없어 주말 내내 끙끙 앓고 열이 39도 까지 올라 외진을 나가 링거를 맞고 왔다는 말을 듣고 계속 심란하던 차에 비가 거칠게 내리니 아침부터 짜증이 솟구친다. 출근 길, 우산을 쓰지만 들이치는 비는 다 막을 수 없어 바지가 축축하고 운동화에는 물이 스며 들어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영 괴롭다. 빗방울이 셔츠 안으로 들이 칠 때마다 느끼는 차가움 또한 음울한 기운을 떨칠 수 없는, 어쩌면 오늘의 내 마음 상태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정류장 장 의자에 앉아 하염 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부딪혀 파동을 일으키며 틱 틱' 물튀는 모습이 각이 져있다.
도로와 인도의 경계선에 길다란 블럭이 옛날 고향 집 마루 앞에 놓여있던 댓돌이 떠오르게한다. 고향 집의 댓돌은 계절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떤 날은 옆집 할머니의 고무신이놓여있 있었고 어떤 날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고모님의 꽃신이 놓여 있었다. 손님이 오시면 어머니는 내게 댓돌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도록 정리를 시키셨고 난 먼지만큼의 오차도 생길세라 짝을 맞추어 가지런히 놓았다. 댓돌 위에 먼지가 쌓이면 빗자루질과 걸레질은 내 담당이었고 우리집 댓돌은 늘 반짝반짝 윤이났다. 우리집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어 댓돌 위에 놓인 신발 들이 넘쳐나 아래까지 신발을 정리해야하는 날도 있었는데 동네 잔치가 열리는 것처럼 시끌벅적했고 마실이 끝나고 나오는 손님들이 참 가지런히도 신발을했다고 내 머리를쓰다듬으며 기분좋게 돌아가시곤 했다.
그 때 당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날이면 댓돌 앞에서 쪼그려 앉아 옆집 누나 들과 소꿉놀이를 하곤 했는데 장난감 용기에 흙,기왓장을 갈은 가루, 물, 풀을 담아놓고 밥, 반찬, 채소를 대신한 식탁을 차려놓고는 난 늘 맛있다를 외치는 아빠 역할이었다. 또, 오늘 처럼 비가오는 날이면 동무들과 밖에서 놀지 못했으므로 마루에 앉아 댓돌에 튀기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댓돌은 손님을 맞이하는 집의 이정표였고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으며 발자국 하나없이 닦거나 바라볼 때는 마음 수행의 장소였다. 또한, 우리집에 온것을 환영하는 증표 이기도 했고 늘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충성스런 신하와도 같았다. 댓돌은 어떤 불평도 불만도 없이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언제든 타인의 신발아래서 그저 자신이 할 일 만을 하는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아파트는 댓돌도 없고 집에 마을 사람 들도 놀러오지 않는다. 현관 앞에는 정리되지 않은 신발 들이 제 짝 맞추기도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게 널려있고 거꾸로 업어진 채로 자신의 더러운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아우성만 있을 뿐이다. 정겨웠던 댓돌이 그립다. 무심코 지나다니면서 어루만지고 봉숭아 잎을 짓찌며 빨갛게 부끄럼 물이 들어도 묵묵히 자신의 등을 내어주던 고향의 댓돌이 그리운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과 그 시류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간사한 사람이 되어가는 내 자신이 그 옛날의 댓돌처럼 흔들림없이 우직하고 변함없는 중심을 잡고 살고 싶기 때문인걸까. 비는 그칠 생각이 없고 기분은 여전히 꿉꿉하다. 아들은 여전히 아프고 장염까지 겹쳐 훈련도 열외된다고한다. 이러다가 선임들에게 찍히는 것은 아닌지, 아빠도 이런데 자기 속은 어떨까. 좌불 안석일텐데, 어서 나아서 댓돌이 집을 지키 듯 튼튼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군인의 역할을 잘 해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드디어 날이 개었다. 기온이 올라가 아침의 한기는 없어지고 포근한 봄 기운을 회복하려 한다.아들도 비온 뒤 개이듯 건강해지길 기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