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에세이
[에세이] 오타쿠의 무소유
한결
회사 후배 중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인 남직원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결혼을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거겠다. 자신은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큰 소리치지만 그건 아마도 스스로 결혼을 포기한데서 나오는 일종의 정신 승리라고 보인다. 왜냐면 과거에 그가 결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소개팅을 했는지, 여자를 소개 받기 위해 여기 저기 소개시켜달라고 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40이 넘어서부턴 상대가 제한적이다. 이미 모두 결혼을 했거나 안했다하더라도 이왕 늦은거 서두르지말고 좋은 사람을 못만나면 안해도 상관없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기에 나이들어 제 짝을 찾기란 결코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외관상으로는 하자가 전혀 없다. 키도 적당히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언변도 좋다. 재밌고 호탕하고 섬세하기까지 하며 어려운 이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정의감까지 왜 아직까지 혼자일까라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괜찮다. 굳이 흠을 진ㅂ다면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잘 퍼준다는 거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루어 놓은 조건들이 없다.
삼십대 후반 일 때 그가 소개팅을 했는데 여자 측에서 물었다.
"오실 때 힘드셨죠? 오늘 차가 좀 밀리더라구요"
"전 차가 없는데요."
"그럼 출퇴근은 어찌 하세요?''
"회사가 사택과 가까워서 자전거 타고 다닙니다."
"혹시 결혼하면 어디서 사실껀가요."
"회사 사택이요, 전 집이 없어요."
그날 소개팅은 그대로 끝났다. 소개팅을 하고 돌아온 그는 상대방을 된장녀라고 하며 비난했는데 나와 동료들은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집도 절도 없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냐고, 그것도 결혼적령기가 넘은 사람인데 조건을 안보면 더 이상한 거라고 맨정신으로 소개팅 나간 네가 양심이 없다며 놀려댔다. 그후로도 동료의 주선으로 몇 번의 소개팅이 있었지만 늘 자기소유의 집과 차가 없음을 고백해야하는 것 외에는 어떤 소득도 없었다. 후에 사택 앞에 세워 놓은 그가 가진 최고 고가의 재산목록인 자전거도 어떤 놈이 자물쇠를 끊고 훔져가는 바람에 회사까지 걸어다녀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별명이 무소유가 되었다.
그 후 인사발령이 났고 후에 우린 다시 수도권에서 만났다. 그때도 그는 자의가 아닌 솔로였고 여전히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초대를 받아 동료들과 그의 사택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온통 방이 핑크색, 벽지도 핑크, 이불도 핑크, 심지어 선풍기도 핑크다. 거기에 분홍색 헬로우키티 인형이 여러 개, 몇년 간 안보는 사이 그는 핑크색 오타쿠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융자를 받아 커피 숍 하나를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말아먹고 은행 빚만 잔뜩 지고 다달이 월급에서 까 나가는 우리의 무소유 군은 별명이 빚소유로 바뀌었다. 그후로도 그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으나 핑크 색에서 안정감을 찾는다고 했다. 짐작하건대 예쁜 사랑을 하며 핑크빛 미래를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데 대한 설움이 핑크색으로 온 방을 도배하게 된 것 아니었을까.
"어이, 빛소유, 잘 지내나. 결혼은 이제 포기한건가?"
"형님, 그깟 된장녀 들 필요 없어요."
"이봐, 돈 한 푼없이 결혼하려 한다면 자네가 된장남 되는거야."
"이대로 살렵니다. 이대로가 더 좋아요"
어느새 나이가 50이 넘은 우리의 무소유군은 곧 죽어도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다는 소리는 안하며 당당하게 큰소리를 친다. 그나마 그는 나은 처지다. 커피숍을 하다가 망했으니 어찌됐건 돈을 벌어보려고 시도 했던 자발적 무소유고 아직 회사라도 아직 다니지 있지 않는가. 어쩌면 대한민국 곳곳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자발적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런지 아무도 모른다. 취업도 어렵고 취업한다고해도 버티기도 어려운, 그렇다고해서 자영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산 입에 거미줄치랴하고 당장 오늘만 보는 사람 들, 실제는 산입에 거미줄 치고 굶어 죽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도 있다. 다같이 잘사는 세상은 힘들더라도 다같이 함께 사는 삶은 가능할텐데 모든게 다 어려운 때 일수록 주변에 눈을 돌리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