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쓴 자전적 소설로 국내를 비롯한 작가의 출생지인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일만큼 많이 팔린 책이다. 일본 데카당스(Décadence) 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3회에 걸쳐 잡지에 연재한 소설로, 마지막 회가 게재되기 직전 오사무는 애인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의 자살시도 5번 째만에 성공한 것이었다.
19세기 '에밀 졸라'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문예 사조인 자연주의는 인간의 사회 현실을 묘사하거나 참여하려는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일본의 자연주의는 서구의 자연주의를 모태로 했으나 점점 작가의 사생활을 그리고 고백하는 고백문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사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하게 된다. 소설은 픽션(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일본의 사소설은 작가와 주인공이 일치하는 효과를 가져와 독자가 작가와 주인공을 일치시켜 읽는다는 특성이 있다.
작품의 주된 내용은 세 편의 수기인데, 유년기, 학생 시대, 청년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문학 근본에 깔려있는 주제는 '부끄러움'이며, 이 소설도 자신이 살아오며 느낀 인간 본연의 욕구,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 쾌락적이고 자기파멸적인 삶의 방식, 감추고 싶은 마음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바 요조' 라고 하는 남자다. 첫번 째 유년 시절이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요조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 어머니 역시 병약해 그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으며 권위적인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생활이 무엇인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람이 두렵고 무섭다고 느낀다. 대인 기피 증세로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주인공 요조는 진입 불가능한 세상과의 벽을 느끼고 타협을 모색한다. 바로 광대짓이다. 그저 장난스럽게 행동함으로 상대에게 무시 당할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속이 편했다. 그러나 그런 익살을 연기하는 것이 가족까지 포함이었으니 그런 소년이 과연 정상적인 삶과,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요조는 비 정상적인 삶을 살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요조는 계속 광대짓을 하며 산다. 학교에서는 엄청난 익살꾼으로 알려지나 오히려 요조는 자신이 일부러 그러는 것을 들킬까봐 늘 불안해했고 인간에 대한 공포는 한층 더 격렬해졌다. 요조의 그런 행동을 '다케이지'라는 아이가 눈치채고 들킬 즈음 요조는 다케이지를 포섭하여 친구가 되는데 다케이지는 요조가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것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요조는 도쿄의 미술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하나 학교에 적응하지못하고 그곳에서 친구 하나를 잘못 사귀게 되면서 인생이 파멸로 이르게 되는데 바로 그 친구가 미술학도이면서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호리키'다. 그를 따라다니며, 매춘, 담배, 좌익 운동, 기둥서방 노릇 등을 배워가며, 요조는 인간이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자연스레 습득하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인간 쓰레기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어떤 큰 카페(술집)의 아가씨 쓰네코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데 둘은 빈곤한 주머니 사정과 현실을 비관하며 함께 바다에 투신하여 동반자살을 기도하지만 요조 홀로 살아남는다. 결국 자살방조죄를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기소유예로 풀려난다.
이 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요조는 무명의 만화가로 생활을 하던 중 호리키를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5살 짜리 딸이 있는 시즈코라는 여 기자와 동거를 시작하나 딸과 요조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한 그녀를 두고 자신이 둘의 행복을 망칠 것 같은 느낌에 그곳을 떠나고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한 스탠드 바에 정착하게 되는데 바의 건너편에 있는 유일하게 요조에게 술을 끊으라고 권하는 담배가게 아가씨에게 술을 끊는 대신 함께 살아 달라는 고백을 시작으로 그녀와 동거를 시작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행복을 맛보지만 그녀가 어느 상인에게 겁탈을 당하자 그의 삶에 다시 어둠의 그림자가 스며든다. 술로 인해 망가져 각혈을 하고 약국의 부인은 술을 끊어야 한다며 정 못 참을 때 모르핀을 맞으라고 한다. 그러나 점점 양이 늘어나 중독이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큰 형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3개월후 맏형의 도움으로 동북지방의 상당히 낡은 집으로 이사한다. 벽은 헐고, 기둥은 벌레먹고, 수리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초가집이다. 그리고 큰 형이 구해준 나이 60정도 먹은 식모와 함께 살면서 가끔은그녀에게 억지로 겁탈도 당하고 부부싸움 비슷한 것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산다.
인간 세상의 허위와 위선, 그리고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폭로해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의 내용과 현재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다를까. 지금의 사회가 그저 짧고 쾌락 적인 관계와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익숙해져 있는 사회는 아닌지, 남을 이용하고 짓밟아야 내가 일어서는 그래서 자신을 감추고 광대짓을 하지 않으면 약하고 착한 나의 내면을 들키고 결국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잡아먹히고 패배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부의 소유, 사회적 지위 등 세상이 정의하는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주변인이 되는 것인지, 그래서 죽어라 돈과 명예, 출세를 위해 달려가는 것인지, 지금 우리는 약한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래서 어떻게든 강해지려고 타인의 위에 서려고 사랑, 관용, 따뜻함 등 스스로의 인간적 가치를 모른 체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품을 통해 돌아보고 나는 인간 실격인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