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15
[문학칼럼]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 온정을 말하다
한결
오영수(1909-1979) 소설가는 경남 울주 출생으로 일본 오사카 소재 나니와 중학을 수료했고 일본 국립예술원을 졸업했다. 경남여자고등학교 및 부산중학교 교사로 근무했고했다. 19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가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로 1961년 발표되었다. 은냇골이라는 아주 깊은 첩첩산중의 골짜기가 있었다. 예로부터 은냇골은 약초 캐던 곳이었는데 날짐승도 가기를 망설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 약초 캐는 형제가 어느 날 은냇골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벼랑까지 왔다가 골짜기에 삼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몸집이 작은 동생이 줄을 타고 벼랑을 내려갔다가 삼을 캐서 올라올 때 바위틈에서 가마솥 만한 거미가 나와 밧줄을 끊어 버려 형제는 안개 속에 묻혀 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고 그래서 이 은냇골에서는 후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은냇골에는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이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바깥 세상은 생활용품을 장만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약초를 팔러 산을 내려갈 때뿐이었고 산을 내려갈 때도 가족이 아닌 이웃갔다선정하여 두 사람 이상이 갔다. 어느 버에 삼 두 뿌리를 갖고 도망가 버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냇골에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네 조카딸 덕이와 눈이 맞아 덕이가 아이를 배는 바람에 몰래 도해친 김 노인이 들어오고 다음 해 도박으로 집안을 망치고 쫓긴 박 생원이 들어온다.이미 은냇골에는 양 노인과 양 노인의 아들, 며느리, 손녀가 있었고 또 지가(哥)네 부부와 젊은 문둥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느 해 혹독한 흉년이 닥치자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남은 이는 김 노인 부부와 문둥이 부부뿐이다. 양식이 없자 김 노인은 처이모 집에 가서 간신히 양식을 약간 얻어 온다. 그러나 김 노인의 아내 덕이는 굶주림으로 반 미친 사람이 다 되어 갓 낳은 아들을 솥에 넣어 죽게 하고는 김노인을 보자마자 배고픔을 못 이겨 김노인을 뜯어먹으려 했다. 김 노인은 갓난아이를 묻어 주고 돌아왔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양식으로 겨울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김 노인의 아내 덕이가 정신을 차린 후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다시 봄이 되자 양 노인네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서 돌아왔고, 박 생원도 돌아왔다. 그 해 초가을에 김노인의 아내, 덕이가 팔삭둥이를 낳았다. 문둥이 부부의 아내 옥례가 낳은 아이가 훗날 ‘만’이 된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러 찾아오자, 김 노인은 그들의 지난 세월과 잃어버린 생명을 회상하며 허무와 연민에 젖는다.
은냇골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인간의 진실한 정이 드러난다. 눈이 내려 서로 오갈 수 없는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은 꿩 한 마리를 잡아 술을 빚고 이웃을 불러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삶을 살며 은냇골 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지탱하는 ‘인간다움’이 있었다. 작품은 생존을 다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남아 있는 인간성의 살아있음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현 시대는 어떤가. 살기 좋아진 지금도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척박한 은냇골과는 비교도 안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함께'라는 의식이 있는가. 요즘처럼 경제가 곤두박질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추운 겨울, 지금이 바로 은냇골의 정과 사랑이 진짜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매서운 한파에 경제까지도 얼어붙은 지금이지만 저마다 아주 조금씩의 온기라도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온정이 눈처럼 퐁퐁 내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