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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Mar 27. 2021

그림 속 경제학 /독후감135

 사람들의 관점이란?! 

지난주 독후감에서 이야기했던 [씨 뿌리는 사람], [이삭줍기], [만종] 등으로 유명한 밀레의 그림이 어떤 사람은 휴머니즘을 간직했다고 말하지만, 어떤 이는 주운 이삭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빈민들의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그려졌다고 이야기한다. 둘 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린 배를 채워야만 하는 일상이 휴머니즘과 같은 뉘앙스를 풍길 순 없다.

 성전의 장사꾼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예수님의 분노는 성전 장사꾼들의 담합에 의한 독점체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등지는 현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해석은 이 책이 너무나 경제학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사뭇 걱정되기도 했다.




 경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의 목표와 미술의 목표는 모두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마네 Edouard Manet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서 바 종업원의 공허한 눈빛을 보면서 최근 들어 심각한 이슈가 된 감정노동자를 생각하게 될 만큼 미술은 경제와 연관성이 있다.

동일한 마네의 작품 중 [아스파라거스]에는 정물화를 주문한 수장가에게 보내는 메모를 함께 넣었다. ‘깜박 잊어버린 200프랑어치의 아스파라거스를 보냅니다.’ 약속한 그림 값 800프랑보다 더 받은 200프랑에 대해 아스파라거스 딱 한 줄기가 그려진 그림을 더 보내준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림은 환금성을 지니게 될 만큼 경제와 분리하기 어렵다.


 경제의 발전은 시간의 흐름과 같다.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대항해 시대부터 금은과 같은 귀금속의 양이 한 국가의 부유한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였던 중상주의 重商主義를 지나 산업혁명을 거쳐 현재의 자본주의에 이르는 경제의 발전은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미술은 당연히 경제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림을 알고 싶어 고른 책이 역사책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경제(사)와 미술(사)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책 중에 고리대금업을 뜻하는 usury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우수리를 뗀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확인해보니 우수리란 ‘물건 값을 치르고 남은 잔돈’이란 순 우리말이라 더 이상의 혼동은 없었다는. 고대와 중세에는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은 부도덕하다고 여겼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들로 악마가 내미는 돈자루에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대부업자의 그림이나 환전상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대부업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대부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주로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이 돈이 많은 듯하다) 그리스도교인들의 텃세로 다른 비즈니스에 종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신명기에 “외국인에게는 변리를 놓더라도 같은 동족에게는 변리를 놓지 못한다”는 구절을 동족인 유대인끼리만 이자를 안 받으면 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은 동족이란 하느님의 백성이나 전 인류를 의미했기 때문에 돈놀이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같았다. 돈을 빌려준다는 대부업 광고가 TV만 켜면 나오는 현재와는 너무나 비교된다.


 19세기 이전에는 회화에도 서열이 있었다.

역사적 주제를 다룬 역사화가 가장 높은 대접을 받았다. 여기서 역사적 주제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리스도교 성서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역사화 다음이 초상화였고, 그다음은 풍속화, 그다음은 풍경화, 그리고 정물화는 꼴찌였다. 그래서, 서양화하면 성전의 벽화나 초상화들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신대륙을 발견을 위한 대항해 시대의 그림에는 심심치 않게 지구본을 볼 수 있다. 지구본뿐만 아니라 별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나, 해시계 등도 관찰된다. 이처럼 지구본과 함께 있는 유럽 권력자들의 초상화는 대항해를 지원하면서 더 적극적인 무역에 눈을 뜬 군주들의 경제적 중상주의를 암시하기도 한다.

 중상주의 정책하의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보호무역을 하고 식민지를 넓히려 애쓰면서 서로 충돌이 불가피했다. 연이은 전쟁 비용은 고스란히 농민의 세금 부담으로 전가됐다. 공업과 상업이 원활하게 돌아가야만 농업에 자본이 투입되는 자연스러운 순환 관계에 주목한 중농주의로 로코코풍의 향락적인 귀족들의 생활이나 관능적인 그리스 신화 대신에 시민계급의 계몽주의적이고 소박한 서민의 일상을 그린 그림들도 찾아볼 수 있다.


 산업혁명을 견인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차라는 새로운 탈것이 주는 그 놀라운 속도감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획기적인 풍경을 화가들은 그림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부터 기차가 도시 교외를 한 시간 이내 거리로 연결하게 되면서 도심의 가난한 화가들도 이젤과 팔레트를 싸들고 쉽사리 전원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1842년 휴대용 튜브 물감의 발명도 한몫했다.) 산업혁명의 빠른 발전이 화가들의 붓질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햇빛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그 찰나적 모습을 화폭에 담아두는 인상주의 미술은 산업혁명에 의한 근대 자본주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에서 빠르고 대담한 붓 터치 몇 개로 표현된 배의 그림자와 물결을 보면서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악평을 남기며, 이 그림에는 완성된 작품은 없고 제목 그대로 인상만 있으니 ‘인상주의’라고 불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네와 친구들은 이 야유 섞인 명칭이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그들의 공식 명칭인 ‘인상주의’가 됐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광고의 시대가 열렸다.

대량생산으로 제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니 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광고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와 함께 철도 등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서, 광고를 실을 만한 신문, 잡지가 넓은 지역에 배포될 수 있어서 그 발행 부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림 작품보다도 상품 광고 포스터들이 더욱 우리 삶과 가깝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인공지능, 암호화폐, 가상현실,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 버릴 지경이다. 어떤 경제 상황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그만큼 어떤 그림들이 창조될지 궁금하다. 앞으로도 경제는 분명히 예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경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림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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