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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Mar 20. 2021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독후감134

손철주의 그림 이야기

구겐하임 Guggenheim 미술관은 몇 개인가? “무슨 소리야? 당연히 한 개지.”

구겐하임 미술관은 어디 있는가? “무슨 소리야? 당연히 미국 뉴욕에 있지. 아닌가?” 

그럼 구겐하임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뭐라고? 당연히 남자 아니야!”

 미술 분야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베개처럼 두꺼운 동서양 미술사를 읽어볼 엄두는 나질 않다가 그림 동네의 자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 작가들의 덜 알려진 과거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들,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들 그리고, 미술이 거래되는 시장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니 이번 주에는 내가 좀 멋져진 기분이다.

쪽빛 모시와 조선기와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책과 함께.


 쪽빛 모시에 담긴 쪽빛을 매우 깊고 넓은 바다라 표현해야 할지 가을 하늘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쪽색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다. 쪽풀은 봄에 씨를 뿌려 여름 한 철 폭염을 먹고 꽃을 피운다. 꽃이 자양분을 독차지하기 전에 꽃대를 베어야 한다. 뿌리와 꽃을 제거한 쪽풀로 팔월과 구월에 염료를 만든다. 항아리에 깨끗한 물을 채워 쪽을 꼭꼭 눌러 담으면 며칠 후 물이 녹색을 띠는데 그때 쪽을 건져낸다. 조개껍데기로 구워 만든 석회를 항아리 속에 넣고 저으면 물은 연녹색에서 청색으로, 또 가지 색으로 변한 거품을 내는데, 이것을 꽃거품이라 부른다. 꽃거품이 일지 않으면 지금까지 기울인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하루 뒤 윗물을 쏟고 색소 앙금만 모아 쪽대나 찰볏짚, 콩대 따위를 태운 것으로 만든 잿물과 섞는다. 이때부터 고무래로 저으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면 늦게는 석 달이 지나 쪽물로 일어선다. 바로 이 물에 모시, 무명, 삼베, 명주 등을 넣고 손으로 주물러 만든 쪽빛이다.

 모양도 반듯반듯하고 매끈한 기계식 기와도 좋지만, 천 도 이상의 불꽃을 견뎌내며 기와 굴을 꽉 채운 연기에 그을리며 천연의 방수막을 형성하여 세찬 비, 찬 바람을 맞을수록 더욱 검은색을 띠며 단단해지는 옹골진 조선기와의 질박하고도 은근한 멋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조선기와 덕분에 우리네 산천이 텁텁 구수해진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어느 날 발작을 일으킨 반 고흐는 왼쪽 귀를 잘랐을까 오른쪽 귀를 잘랐을까? 그의 발작은 뜨거운 아를의 태양 아래에서 마시던 독주 압생트와 초주검에 이르는 하루 열네 시간의 그림 노동에서 비롯되어 왼쪽 귀를 잘랐다. 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한 점뿐이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작품!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하지 못해 유독 자신의 자화상이 많은 반 고흐! 오렌지색과 자주색, 불타는 진노란색과 아찔한 녹색의 풍경화는 그의 절규를 닮은 듯하다.


 미술책을 읽다 보면 ‘구스타브 쿠르베’란 이름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낭만적인 상상력으로 치장한 동시대의 작품들 사이에서 “사실과 진실만을 그리겠다”라고 리얼리즘을 선언한 쿠르베는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자태를 선호한 여인의 누드 대신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그런 쿠르베도 자신을 보호하고 지원해준 부유한 은행가 출신 브뤼아스의 행실이 고약하다고 여겨졌는지 고개를 바짝 치켜든 쿠르베와 마치 대가를 대하듯 정중한 태도로 인사하는 브뤼아스를 그린 [만남](일명,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라는 그림을 그렸다. 과연 그림에서 보인 그 둘의 사이가 그가 선언한 리얼리즘과 같았을까? 꿈과 현실은 항상 거리를 유지한다.


 어느 날 쿠르베가 사실주의를 선언했다고 해서 유행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갑론을박 와중에도 자신만의 중도를 선택하여 고전주의와 사실주의의 화해를 주선한 밀레는 이상화되고 규범화된 고전주의의 탈현실주의에서 빠져나와 휴머니즘을 간직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그림들은 [씨 뿌리는 사람], [이삭줍기], [만종]등이 있다.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과 난관 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꾸려 나가는 삶의 애환을 느끼게 해 주어서 그런지 그의 그림들은 제목만 들어도 눈에 선하다.


 흘러내리는 시계를 그렸던 달리가 이 정도로 괴팍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나 초현실주의 화가가 될 수 없는 듯하다. 다섯 살 달리는 개미가 득실대는 썩은 박쥐를 입속에 집어넣은 괴물 소년이었다. 커서는 고슴도치, 도마뱀, 거미, 생쥐가 들어 있는 닭장 속에서 한나절 같이 지낸 적도 있었다. 구혼 장면마저 비정상적이다. 먼저 깃을 자른 와이셔츠를 레이스처럼 모양내고 가슴털과 젖꼭지가 보이게끔 구멍을 뚫었다. 그다음 수영 팬티를 뒤집어 입고 겨드랑이 털은 말끔히 밀어낸 다음 그곳에 푸른 물감을 칠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 짓은 생략한다. 도가 지나친 광기가 그의 예술을 만들었을까?


 동양화나 수묵화, 산수화는 인기가 없다. 

현대미술, 서양화가, 팝아트, 모던아트,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단어들로 대체된 요즈음에도 내가 동양사람이라 그런지 먹선과 붓의 자취들이 느껴지는 종이에 그린 수묵화는 차분함과 편안함, 조금 더 나아가면 여유까지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와중에 19세기 수묵화가 아닌 1997년에 그린 중국 현대화가 자유푸의 수묵화를 보았다. 제목이 [무제]라 무어라 설명할 수 없지만 좋았다. 흥건한 먹이 종이를 적실 듯하고, 바짝 마른 먹의 색과 축축한 먹의 색, 진하고 옅은 먹의 색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참 좋았다!! (다행히 NAVER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독후감이 길어져도 피카소를 스킵할 순 없다.

공식적인 연인이 7명이었던 만큼 왕성한 정력을 자랑하듯 피카소 주변엔 화제도 작품도 풍성하다. 그가 평생토록 남긴 작품이 회화와 데생을 합쳐 13,000여 점, 판화가 100,000점, 삽화가 34,000점, 조각과 도자기가 300여 점이다.

1900년에 초만 해도 피카소는 몽마르트르의 다락방에서 한 손에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작업하는 궁상맞은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성공 행진곡은 유명한 유태계 화상 칸바일러를 만나고 시작되었다. (칸바일러는 워낙 유명해서 [낙원의 캔버스]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독후감94) 1918년 피카소는 인생 최대의 전기를 맞게 된다. 바로 러시아 발레단이 런던에서 공연할 때, 그 무대 장식을 맡게 된 일이다. 공연은 요란스러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탔다. 우리를 감동시킨 것이 피카소였는지 아니면 피카소 작품이었는지 혼동되곤 할 만큼 피카소는 죽어서 가죽과 이름을 한꺼번에 남겼다.




 피카소의 대화로 독후감을 마쳐야겠다.

사람들은 피카소에게 곧잘 물었다. “무얼 그린 건지, 어디가 아름다운 건지 통 모르겠어요.” 피카소는 엉뚱하게 “그러면 산새 울음소리는 곱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야 아름답지요.” 피카소 왈 ”그런데 우는 소리에 무슨 뜻이 있는지 압니까?” 대답은 물론 “글쎄요”였다. “바로 그거죠. 새소리가 아무 의미 없이 아름답듯이 미술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랍니다.”


 처음에 이야기 꺼냈던 구겐하임 미술관은 모두 3개나 있다. 하나는 뉴욕에, 다른 하나는 스페인에, 마지막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의 솔로몬 구겐하임은 남자고, 베네치아 구겐하임 박물관의 페기 구겐하임은 그의 조카딸이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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