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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ul 23. 2022

공무도하 /독후감205

‘저녁에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다 보면 ‘점심에 무엇을 먹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근래에 먹었던 음식들을 순차적으로 되새긴다. 먹지 않았던 음식들을 상기시킨다.

회를 먹을까? 고기를 먹을까? 치킨과 피자를 먹을까? 아님 스파게티는 어떨까? 결국 머리에 떠오르는 몇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순서로 근래에 못 먹었던 음식들 중 당기는 음식으로 저녁 메뉴를 정하게 된다.

책도 읽다 보니 한동안 읽지 않았던 작가의 글이 때가 되면 생각난다.

펼쳐 읽는 순간 김훈의 글이 느껴진다. ‘김훈 작가의 글이구나!’




글의 주요 배경은 해망이라는 곳이다.

등장인물들의 관계 정리가 마무리되는 장소가 해망이다.

장마로 댐이 터지고 저수지 뚝방이 터져서 마을이 싹 쓸려가도, 후처가 데리고 온 열다섯 살짜리 딸을 상습적으로 강간한 오십 대 가장을 이십 대 아들이 쇠절구로 쳐 죽여도, 공장 5층 옥상에서 보름째 천막을 치고 농성이던 생산직 노동자 한 명이 추락사를 해도, 외곽의 주거형 비닐하우스 밀집지역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기르던 잡종견에 물려 죽었어도, 소방서 인명구조특공조장이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빼돌렸어도 모든 사건을 결국은 품어주는 곳이 해망이다.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 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이제 옛 노래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울음만 전해오는데,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백수광부가 건너지 못한 강의 저편이 아닌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품어주는 곳이 해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 

책 뒤표지 상단에 적힌 김훈 작가의 말이다.

이 말을 책 읽기 전에 읽었다면 나는 독후감을 다르게 적었을 것이다. 

이 말은 책 읽은 후 지금에 와서 나에게 읽혔고 나의 독후감은 이미 재미있는 상상을 만들었다.

 글쓰기 전 작가 본인은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같이 엮어 지기 힘든 단어들을 무작위로 선택하기도 하고, 무심코 마주친 단어들을 추린다.

행글라이더, 모터사이클, 베트남, 신문기자, 염전, 투석, 낙타, 무좀, 원효대사, 포탄 등등

그리고 챕터로 가르지 않는 한숨에 끝나는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정말로 위에 적힌 단어들을 엮어서 중간 챕터도 없는 장편소설이 지어졌다. [공무도하]

SF소설도 아니고, 메타버스가 소재인 소설도 아니다. 현실의 모든 사고와 고민들을 품고 있고, ‘고민할 것들을 찾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사고와 재해를 요리조리 다행히 비껴가며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가는 글을 통한다면 언제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억지 같은 단어와 상황들을 쥐어 준다고 해도 그는 만들어낼 것이며, 써낼 것이다.


 작가가 만든 ‘해망’이란 장소를 읽으며 오버랩되어 떠오른 장소가 있다.

글 덕분에 그곳에 오랜만에 다녀와야겠다. 작가 덕분에 그곳에 연락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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