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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07. 2023

예수 /독후감227

 세례자 요한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고향 나사렛에서 출가하기 전의 예수는 요셉의 아들 예수로서 오랫동안 목수 일을 하며 부탁을 받은 대로 이 집 저 집 찾아가서 창문을 수리해 주고 문틀을 고쳐 주었던 목수 예수였을 따름이다. 그러던 예수가 홀연히 집을 나간 것이다. 생계를 위한 계획도 세워주지 않았고, 무슨 목적이라는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는 걱정스러웠고, 동생들은 형이 이전과 같이 목수 일을 계속해 줄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출가한 30대 전후의 예수가 요르단 강변을 따라 유대 광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종교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통해 예수 일생의 단편들에 대해 알고 있다. [예수]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어렵지 않게 성경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목적으로, 그래서 ‘예수가 누구인지’, ‘우리와 상관이 있는지’ 묻는다면 이에 답해줄 수 있는 책이지만, 나는 예수 부활하기까지 지역의 이동 경로에 따른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다.




 오랫동안 목수 일을 하면서 정들었던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을 떠나 영혼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유다 지방의 세례자 요한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큰 소리로 가르친다. 그 교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익숙히 들어온 구약의 교훈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믿으려는 바가 다가올 하늘나라의 뜻이 요한을 거쳐야 하겠으나 요한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곧 발견한다. 

요한은 구약적인 교훈은 완성시켜 주었으나, 하늘나라는 과거를 계승하는 데 있지 않고 미래에 있어야 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다음 가야 하는 곳은 어디였는가.

그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아니었다. 이제는 예수 홀로 하느님과 대면하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예수는 홀연히 광야에서 요단강 서쪽에 있는 높은 산속으로 깊숙이 몸을 숨겼다. 예수는 40일간을 몸부림쳤다.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가 먼저 나타났다.’


 마귀에게 세 가지 문제를 시험받은 예수는 요한의 집단을 떠나 고향인 갈릴리 지방으로 향했다. 예수가 처음 찾아갔던 곳은 이스라엘 동북부에 있는 갈릴리의 호반지역인 가버나움이다. 목수 일을 했던 곳은 갈릴리 산간 지방이었고, 가버나움은 호반지역이다.

 이곳이 예수의 소박한 전도 생활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이 호반지역이 베드로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물고기가 잡힌 기적을 보인 지역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이곳에서 예수의 처음 제자가 되었다.


 갈릴리 호반지역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나 극히 소수의 부유층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예수가 사랑의 왕국을 선포하고 나타난 것이다. 이때 누구보다도 인간적 기대를 안고 예수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환자들이었다. 예수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모여드는 환자도 많아졌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고뇌를 접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중요한 것은 환자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이다. 

환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도 복음에 대한 정열은 타오를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고민에 빠졌을 때 예수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고향인 나사렛에 다녀오는 편이 어떨까 하는 착상이었다.


 예수를 키워 준 고향 나사렛은 초라했던 목수 예수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상념들이 회당에 모인 사람들과 나사렛 사람들의 공통된 의문과 불안으로 번져 나갔다. 기대심이 의아심으로 변했고, 의아심은 경계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뜻밖의 배반과 배척을 받은 예수는 태연히 그들 사이를 빠져나와 고향을 떠난다.

 환자들을 돌보아 주는 일과 복음을 가르치는 일 사이에서 여전히 예수의 고뇌는 남아있다.

사람들은 환자들을 치유하는 것을 기적의 대명사로 선전했고, 예수의 진심과 어긋나는 결과를 만들곤 했다. 그 때문에 더 소중한 복음의 말씀은 빛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영구히 남을 것은 말씀이기 때문에 복음에 더 많은 정성과 뜻을 모으자는 결심으로 고향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는 가까운 무리들 속에서 12명을 따로 뽑아 제자로 삼기로 했다.


 예수는 오랫동안 정들었고 전도의 근거로 삼았던 호반지역을 떠나기로 한다.

마가와 마태는 예수가 제자들만 이끌고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부 지방이 유다, 중부 지방이 사마리아, 북부 지방이 갈릴리에 해당한다면 두로와 시돈 지방은 만주 지방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북방을 여행하고 있던 어느 날, 예수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 나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장로들, 대제사장들, 율법 학자들에 의해 많은 고난을 겪은 뒤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예수의 생애 중 마지막인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은 고향 지역이면서 많은 활동을 했던 갈릴리로 들어왔고, 얼마 뒤 예수는 요단강 동쪽을 거쳐 여리고 성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한다. 대부분의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그곳에 있는 성전을 찾을 때는 요단강 동쪽 연안을 따라 남하했고,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곤 했다.

 여리고는 유다 지방에서는 큰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도 여리고 성에서 만나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여리고를 떠난 예수의 일행은 산길을 굽이돌아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리고는 해면보다 깊은 계곡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경사진 산길이다. 이 날은 4월을 맞는 첫 일요일. 예수의 일행이 산등성이에 있는 베다니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내리막길을 택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예수의 일행도 여기까지 와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늦게 예수의 일행은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했다. 유월절 맞이에 분주한 예루살렘과 성전은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성전 안으로 들어선 예수가 환전소와 제사를 위한 양과 비둘기를 사고파는 모습에 매우 분노했던 날이 월요일 오후이다. 이 일을 시켰던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를 죽여 없애는 방도를 강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예수는 다시 베다니 마을로 돌아갔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제자들과 더불어 식객이 될 만한 마음 편한 장소가 달리 없었던 것 같다. 또 될 수 있으면 예수를 해치려는 사람들의 소굴인 예루살렘 성 안에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베다니 마을은 성전에서 약간 먼 산책길에 해당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화요일은 베다니와 성전을 오갔으며, 수요일은 베다니에서 하루를 제자들과 함께 쉰 것으로 되어 있다.

 토요일이 유월절이고,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날은 금요일이다.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되었다. 그날 낮까지 예수는 베다니에 머문 것 같다. 벌써 5일째 예루살렘에 내왕하고 있는 것이다. 목요일 오후 베다니를 떠나는 예수의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이제 베다니를 떠나면 다시는 베다니로 돌아올 길이 없음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마가의 다락방에서 12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갖는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되었거나, 아니면 금요일로 접어든 시각일지 모른다. 마가의 다락방을 나온 제자들은 잠들 곳을 찾아 나선 후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한다.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부른 것은, 올리브 산 밑 높지 않은 평지이어서 자주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후 예수는 체포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제각기 겟세마네를 떠나 도망친 것으로 추측된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종교재판 이후 사형집행권이 있는 빌라도에게 예수를 보냈고 사형 언도를 받는다. 사형 판결을 받은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이 있는 골고다의 언덕까지 가야 한다.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고, 예수는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든 절차가 끝났을 때는 오전 9시경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금요일 오후 3시 경의 일이다. 예수는 6시간을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다.

 네 복음서는 예수가 육체와 더불어 부활해 제자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열한 번 나타났고, 부활한 상태로 승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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