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Dec 31. 2022

아Q정전 /독후감226

아Q는 결코 신선도 아니고, 동족인지 아닌지 조차 모른다.

아Q는 집이 없어 미장의 사당 안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고작 날품팔이로 보리를 베라면 보리를 베고, 쌀을 찧으라면 쌀을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저었다. 일이 오래 걸릴 때에는 잠시 주인집에서 묵었으나 일이 끝나면 곧 돌아갔다.

 열전, 자전, 내전, 외전, 별전, 가전, 소전 등등 가운데 제목의 ‘정전’을 고르기 위해 글의 머리말을 할애했다. 삼교 구류 축에도 못 끼이는 소설가들의 이른바 ‘한담은 그만두고 정전으로 돌아가서’라는 문구 속에서, ‘정전正傳 ’의 두 글자를 취해내어 제목으로 하기로 한다.




 작가 루 쉰은 아Q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아Quei라고 불렀다. 부득이 서양문자를 써서 영국류의 철자법으로 아Quei라 쓰고, 약해서 아Q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읽기 전에는 엄청 대단한 위인인 줄로만 알았던 아Q는 단순히 직업 없는 농민일 뿐이었다.

[아Q정전]이외 그의 다른 소설들도 주인공 캐릭터 맥락은 비슷하다. [공을기]라는 소설에서 공을기는 성이 공孔이므로 사람들은 습자책에 써 있는 ‘상대인 공을기 上大人 孔乙己’라는 뜻 없는 문구에서 별명을 따붙여 그를 ‘공을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막벌이꾼들이 점심때나 저녁나절 일손이 끝나는 대로 제각기 동전 네 푼을 털어 술을 한 잔 사서 술청에 기대 선 채 따끈한 술을 마시는 선술집에 드나드는 공을기는 선술 먹는 축으로선 긴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키는 훤칠했으며, 창백하면서 주름진 얼굴에는 언제나 상처가 가실 줄 몰랐다. 턱에는 희끗희끗한 반백의 수염이 텁수룩했다. 입은 옷은 그래도 긴 두루마기였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은 기워 본 일도, 빨아 본 일도 없는 것 같았다.

 한국에 ‘공을기 객잔’이란 술집이름도 있어 엄청 무언가 대단한 유명인 줄로만 알았는데 책을 훔치다가 들켜서 매 맞아 얼굴에 상처가 가실 줄 모르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일 뿐이다.


 루 쉰의 처녀작인 [광인일기]의 주인공은 일종의 ‘피해망상증’을 가지고 있는 주변의 다른 이들이 자신을 먹고 싶다고, 사람을 잡아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환자이다.

누구 하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왜 루 쉰의 작품들은 중국 근대 문학의 초기 걸작으로서 많은 외국어로 번역까지 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모든 작품을 살리는 것은 ‘통렬한 풍자’때문이다. 풍자諷刺없는 루 쉰의 글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아Q정전과 루 쉰의 이름정도만 알고 그의 글을 읽는 것과 그의 작품 세계와 소설에 대한 설명과 조합하여 글을 읽는 것은 진정으로 천지차이다.


 아Q는 단순히 직업 없는 농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놀림을 받아도 손찌검을 당해도 움츠려 들지 않는다. 그는 영원히 우쭐해한다.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는 아Q의 정신구조를 희화함으로써 당시 중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통렬히 풍자한다. ‘예전엔 훌륭했다’고 자랑하며 남에게 얻어맞고도 자기 아들에게 맞았다고 하는 태도는 자존심만 비대한 청 왕조 혹은 한漢민족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혁명당원으로 자처하지만 도독으로 몰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아Q의 운명을 지배 세력인 지주와 대조함으로써 신해혁명의 좌절 또한 나타내고 있다.


 공을기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가난한 선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궁지에 몰려 소외되고 탈락되고 짓눌린 자신의 모습을 집요하게 그려낸 것이다. 공을기는 변혁기 지식인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표현한다.


 광인은 피해망상증 환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광인의 심리를 빌어 가족제도와 그것을 밑받침하는 유교 사상의 봉건적 모순을 폭로했다. 자유에 대한 갈구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은 민족 고난의 표현이라 평가된다. 

풍자만큼 사람들에게 동감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루 쉰의 풍자는 그 시절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미 /독후감22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