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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Dec 24. 2022

호미 /독후감225

이번 주에는 산문散文과 함께 했다.

산문에 대한 정의를 모르더라도 가끔 무작정 산문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에 몇 편의 산문을 읽고 있으니 문득 산문이 무엇인지 궁금해져 의미를 찾아본다. 율격과 같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 소설, 수필 따위이다.

‘혹시 산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문’에서 변화된 단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에 산문의 의미가 갑자기 궁금해졌을 것이다. 삶의 문장이기 때문에 삶문이고 발음이 어려워 점차 산문으로 진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올해 90살이셨을 박완서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신 줄로만 알았다.

지난번 당신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만 해도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구나’ 했는데 그냥 내 마음에는 아직 살아 계신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녀의 산문집 덕분에 이번 주에는 사시사철 백 가지 종류의 꽃들이 피는 마당이 있는 서울 근교의 집에서 머물렀다. 마당에서 흙 주무르기를 좋아하는 작가 덕분에 한파가 닥친 이 추운 겨울에 생명을 읽었다.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 감정들도 되찾는다.

 ‘꽃이 피면 어머머, 예쁘다고 소리 내어 인사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힘든 지. 

깊은 마음속만 아는 그렇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모르겠다고 한마디로 퉁 치며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메말라 그렇겠지.


 70 넘어 쓴 글들을 모아 산문집을 냈다는 사실과 평생 김매듯이 살아왔다는 작가가 본인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는 박완서 님의 문장은 조금씩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나에게 잔잔히 다가온다.

 꾸준히 글을 쓰며, 꽃과 나무에게 소통하고, 자신의 몸이 편안한 음식을 취하는 삶을 적은 산문들은 내가 50대에 영위할 삶을 조금씩 내다보게 한다. 

노년의 지혜를 엿듣기도 하고, 모두가 똑같은 유한한 삶 앞에서의 비슷한 감정에 동감하기도 한다. 육체적인 노쇠함을 제외하고 여전히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한 노년도 내년에 따스이 다가올 봄의 기쁨을 꿈꾼다.

 여전히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맛없는 건 절대로 먹지 않는다.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어 정확한 근원도 찾기 어려운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고 더듬어 찾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와중에도 인생은 시간과 경험을 통해 우리를 다듬는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 작고 미미한 것들이 땅속으로부터 지상으로 길을 내자 사방에서 아우성치듯 푸른 것들이 돋아나고 있다. 작은 것들은 위에서 내려앉은 것처럼 사뿐히 돋아나지만 큰 잎들은 제법 고투의 흔적이 보인다. 

 무리하지 않고 내 몸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유지되어 계속 변하지 않는 것들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새로 느끼고 정착되는 것들이 중년을 채워 공존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그러움과 어른 다움은 계속 정진해야 채워지는 것들로 시간과 함께 누적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우아했으면 좋겠다. 좁은 마음과 쉬이 삐치는 마음 대신 넓게 품어줄 수 있는 모습으로 한 살 더 나이 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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