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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un 10. 2023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독후감249

나영석 피디

 예능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손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켠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TV를 즐기진 않지만) 요즘은 [지락실 2] (‘뿅뿅 지구오락실 2’의 약자로 미미도 나오고, 이영지도 나오는 tvN 예능프로)가 그렇게 재미있다. 낄낄대고 보다 보면 PD란 양반이 잊을 만하면 TV에 얼굴을 비춘다. ‘저 양반 아직도 그대로네~~’

 피디인데도 엄청 유명한 나영석 피디! 그러고 보니 10년 전에도 그 사람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즐겨본 기억이 있다. ‘10년 넘게 승승장구하니 대단한 양반일세!’




 피디지만 이름이 아닌 얼굴까지 유명해진 것은 [1박 2일] 덕분이다.

프로그램이 안정기에 접어들어 모든 멤버들이 고른 활약을 보이게 되자 호동이 형은 멤버들에게서 눈을 돌려 다른 누군가 웃길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의 잠자리 복불복은 ‘돌림판 돌려 이상한 음식 먹기 대결’이었는데 레몬에서부터 매운 어묵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까나리액젓 같은 이상한 음식들.

 복불복이 끝나갈 무렵, 호동이 형이 그 당시 메인 피디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냈다. 매운 어묵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건 매워서 아무도 못 먹는다. 피디 당신이라면 먹을 수 있겠느냐. 차라리 당신과 내가 매운 어묵 먹기 대결을 하자. 당신이 이기면 다음부터는 당신이 제시하는 모든 일에 토를 달지 않겠다. 대신 내가 이기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를 퇴근시켜 다오. 집이 코앞인데 왜 여기서 자야 하느냐. 집에 가고 싶다.


 승패를 떠나 이후로 피디와 연기자의 대결이 처음으로 시도된 터라 그 상황 자체가 매우 재미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그렇다면 검증은 끝난 것이다. 이후 메인 피디는 사령탑을 후배인 나영석에게 넘겨주고 프로그램을 떠나게 된다.

 이후로 나영석 피디는 잊을 만하면 연기자와 대결 구도를 펼치기 위해 화면에 나타난다. 그래서 지나가다 우연이라도 만나면 너무나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 오래 봐왔기 때문에 무심코 인사하고 말을 걸게 될 수도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나저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무리 열흘동안 스무 개의 인터뷰를 소화하더라도 인터뷰어 interviewer로 나온 기자에게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리라.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인터뷰 자리에 나온 것이다. 뭐라도 들려 보내지 않으면 그들도, 그 위의 데스크도 난감할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책상은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소품이나 [1박 2일] 팬들의 선물이 한가득 책상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정돈 따위와는 거리가 먼 성격인 사람이기도 하다.

후배 피디에게 프로그램을 물려주고 5년 동안의 [1박 2일]을 하차한 후 오로라를 보기 위해 홀로 떠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위해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는 데 꼬박 사흘이 걸리고, 호텔과 민박집 예약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네, 맘껏 비웃어주세요. 저란 놈은 이런 놈입니다요.’ 하는 사람.

사람들은 일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고민을 안고 산다. 그리고 살면서 자연스레 그 균형점을 맞춰 나간다. 5:5냐 7:3이냐 6:4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이 좋아서도 하지만 해야만 하니까 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도 있지만 꼭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

생방송에서 최악의 방송 사고를 내고 용서를 제대로 받아본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걸 용서한다. 서울로 올라와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든 편견 없이 배울 건 배운다’는 걸 실천하는 사람인가 보다. 인간에 가려 그 빛을 무시해 버리면 배울 기회를 한 번 놓지는 것과도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 됨됨이도 지금의 나영석을 만들었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철학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세 가지를 만족시킬 때에야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첫째, 새로울 것. 둘째, 재미가 있을 것. 셋째, 의미가 있을 것. 뭔가 새로운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시청자들은 비로소 관심을 갖는다. 그 새로움 속에서 창조된 재미와 의미만이 소구력을 가진다.

99퍼센트 완벽한 촬영이 이루어져도 1퍼센트의 디테일이 삐거덕거리면 촬영은 ‘서서히’ 죽어간다. 이 마지막 1퍼센트의 디테일은 결국 ‘주인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에서 판가름 난다.

마지막으로 대학 연극반부터 방송국까지 ‘과정은 재미있고 결과물은 올바른’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 두 마리 토끼를 처음부터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이 안정기에 들어서고 재미있어지자 올바른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을 접지 않고 노력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울컥할 줄은 몰랐다.

‘올바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외국인 노동자 특집’의 준비 과정을 읽는 와중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섯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떠나는 1박 2일 여행이 콘셉트이다. 그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었던 제작진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초대하는데 까르끼네 아이들은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었던 일부터 어머니와 동행해야 하는 칸의 동생은 불법체류의 위험이 있으니 경호 겸 감시 팀을 붙이는 조건으로 입국을 허가받고, 예양의 어머님은 작년에 돌아가셔서 아버님을 모셔 오기로 결정한 일 등등등.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차오른다. 마지막 떠나는 날엔 가족들도 울고 제작직도 울고 불법체류 방지를 위해 붙여 놓았던 경호팀들마저 그들과 정이 들어 공항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감동과 교훈을 얻자고 이 책을 펴든 것은 아니지만 울기도 울고 배우기도 배우고 무언가 느끼기도 느끼면서 재미있게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여전히 나영석은 나의 저녁 음주 시간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사람 딸도 중2일 텐데 이 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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