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Part. 1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루의 두 번째 6시 정각이 되면 퇴근을 한다. 퇴근길에 조우하는 길거리에는 갖가지 유혹들이 점철된 충동으로 나를 이끈다. 가령 저녁시간이 가까운 그즈음에는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음식들의 내음이 나를 유혹한다. 오래된 단골집 근처가 가까워질수록 짙게 깔려오는 갓 튀긴 통닭 냄새는 오늘 저녁 식단을 미리 정해주듯 참을 수가 없다. 그것들은 마치 ‘네가 이 냄새를 맡고도 못 배겨?’라든가 ‘네가 갓 튀겨낸 통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기어이 외면하겠다고?’라든가 하는 호객행위들로 ‘오늘 저녁에는 통닭이나 사갈까.’싶은 마음을 건드린다. 그러니 결국 나는 통닭을 사러 들어가고 만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통닭집의 통닭이란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어요. 밀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고는 기름에 온전히 몸을 내던지면서 말이죠. 이 작은 곳에서 오늘 당신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라고 말하는 그 정도의 통닭이다. 요즘에는 닭들이 켄터키 치킨과 같은 조각난 형태로 많이들 나오지만 사실 그건 닭을 통으로 튀겨낸 통닭의 맛을 눈으로 느끼지 못해서 일거다. 혹은 그 유혹의 충동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다. 이것은 보는 맛이다. 닭이 통으로 튀겨져 엎어있는 그런 것을 보는 맛. 가끔은 꼬챙이에 꽂혀서 가로로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닭들을 바라보며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가 고파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배고픔에 사들인 통닭은 기대가 컸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사들인 통닭에 반드시 실망했다.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살점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통으로 바싹 튀겨진 통닭들을 보면 다른 음식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질 정도로 충동에 휩싸인다. 그래 오늘은 맛있겠지. 살보다 튀김옷이 더 두꺼운 닭이라 할지라도. 어둑해지는 퇴근길에 오랜 시간 허름한 귀퉁이 작은 점포에서 나를 기다린 그 통닭을 사 가면, 그 생각을 하면 맛이 없다 하더라도 맛이 있을 거라 느껴지겠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만날지 모르는 구석진 공간에서 나를 기다린 그 무언가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면, 설령 내가 잊혔다 하더라도, 결국 조우하는 그 순간이 나름 의미 있을 거라 느껴지겠지.
[홍콩 뉴웨이브]
“아빠, 주말에 영화나 보러 가실래요?”
영화? 영화 참 오랜만이다. 그래, 주말에 영화나 보러 가자. 어떤 영화를 볼 건데? 요즘에 나오는 영화들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말이야. 요새 젊은 친구들은 어떤 영화를 주로 보나? 아무래도 잘생긴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들이 재밌겠지?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을 테니까 말이야. 아니면 SF영화같이 판타지컬한 영화가 좋으려나? 아니면 화려한 액션? 영화는 자고로 보는 맛이 있어야 하니까.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저번에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감독의 신작을 보러 갈까? 예전엔 영화를 자주 봤었는데 말야...
“아빠, 1994년에도 극장에서 영화 자주 봤어요?”
94년? 그때는 왜? 거의 30년 가까이 된 이야기인데. 그땐 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봤지. 아니, 그땐 극장에서밖에 영화를 볼 수 없었지. 지금처럼 집에서 영화를 보는 건, TV에서 틀어주는 ‘주말의 명화’ 같은 것이 전부였으니까. 젊을 때는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즐거움 중에 하나였지. 휴가이자 오락이라고. 인기 있는 영화라도 나오는 날에는 극장에 사람들이 먼지처럼 모여들어 여기가 극장인지 시장인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영화관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곳이었어. 어떤 곳에선 극장 앞에서 솜사탕도 팔고 번데기도 팔고 포장마차도 있었으니까. 놀러 가는 개념이었지. 데이트하러 갈 때도 영화를 보러 가고 가족들이랑 주말에도 영화를 보러 가고 때론 혼자 조용히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어. 음, 근데 1994년 도라... 그때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갔으니... 무슨 영화가 나왔을까 기억도 잘 나질 않네... 그때면 내가 20대였으니까.
“그럼 주말에 영화나 보러 가요.”
그래, 그럼 아무거나 좋은 걸로 예약해봐. 나는 어떤 영화든 딱히 상관은 없으니까.
[주말의 명화]
“부장님, 요즘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그런 일 없는데? 왜? 좋은 일 있어 보여? 이대리야 말로 좋은 일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 셔서요. 뭔가 기다리시는 게 있으신가 싶은데.”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기분 좋은 일이 뭐가 있을까. 적어도 오늘은 없고, 내일도 딱히 없는데. 일하는 거야 언제나 스트레스가 ‘팍팍’ 있으니 좋은 일이라 할 순 없을 테고.
“부장님, 일하는 거야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가 없죠. 아니면 주말에 가족들이랑 어디 놀러라도 가시나 봐요?”
아, 그러고 보니 주말에 딸내미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었어. 무슨 영화를 볼 진 딸내미 보고 알아서 정하라고 했지. 아마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영화로 선택하겠지? 영화를 극장에서 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말이야. 젊은 친구들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요즘은 어떤 배우가 제일 인기가 많아? 우리나라 배우들 참 많아.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봐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니까. 내가 젊을 때는 홍콩배우들이 인기가 정말 많았지. 특히 임청하나 왕조현은 남자끼리 있으면 매번 나오는 배우들이었어. 남자 배우들은 가만 보자, 유덕화나 장국영, 양조위 이런 배우들이 있었지. 아, 맞아, 금성무도 있었어. 나는 금성무가 홍콩 사람인 줄 알았더니만 사실 일본계 대만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놀랍지? 아, 금성무가 누군지 잘 모를 수도 있겠구만. 엄청 잘생겼었지. 그때 나왔던 영화에서 유명한 영화들엔 내가 말한 배우들이 거의 다 나왔어. 나는 개인적으론 장만옥을 좋아했지. 지금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꽤나 나이를 먹었더라고. 장만옥은 뭔가 묘한 매력이 있었지. 특히 젊었을 때는 말이야. 대부분 그땐 여자 하면 임청하, 왕조현이 제일이라고 했었지만 나는 장만옥이 이상하게 끌리더라고. 그렇다고 다른 배우들을 싫어했던 건 아니야. 다들 좋아는 했지. 그땐 워낙 홍콩 영화들이 유명한 게 많았어서 말이야. 그 누구지, 엄청 유명한 감독들도 많았는데... 자네 혹시...
“부장님, 요즘 배우들 중에는 수지가 제일 인기가 많습니다.”
아, 그렇구만. 아, 내가 말이 길었네. 미안하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부장님.”
[중경삼림]
가끔은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할 때가 있다. 그건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이다. 나이를 먹으면 이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충동이 들 때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점점 시간이 없어지는 느낌.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앞으로 다시는 그 순간을 놓칠 것만 같은 느낌. 때로는 그런 충동이 이런 생각을 낳기도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지금을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중경삼림 티켓 두 장 끊었어요.”
딸아이가 내민 영화 티켓에는 중경삼림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극장에서 왜 이 영화를 상영하지? 이건 내가 젊은 시절 보았던 영화인데. 너, 중경삼림 이 영화 알아? 어떻게 알았어? 요새도 이런 영화 보니?
“아빠, 전 이미 중경삼림 3번이나 넘게 봤어요. 근데 극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구요. 이 영화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 영화 잘 모를 텐데. 옛날 영화를 아직도 극장에서 상영을 해주는구나.
“아니에요. 요즘엔 레트로가 유행하잖아요. 옛날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상영해주는 게 유행이에요. 전 마침 잘 맞아떨어진 거고.”
중경삼림은 94년에 나온 영화였어. 한국에서는 95년에 개봉했지. 그땐 내가 20대였고. 그때 한창 홍콩영화가 유행을 할 때였어.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임청하와 왕조현을 빼고는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좋은 안주거리였지. 그때는 지금처럼 조각난 치킨보다 가게에서 파는 통으로 튀겨낸 통닭이 인기 있었어. 퇴근하고 그 통닭에 맥주를 먹으면서 어떤 배우가 더 예쁜지 어떤 배우가 자신의 스타일인지 언성을 높이곤 했지. 휴일에 멋이라도 부리려고 치면 다들 청자켓에 머리는 올백으로 올리고 가운데 머리카락 몇 가닥만 내리는 스타일을 따라 하곤 했어. 장국영이나 유덕화가 그런 스타일로 영화에 자주 나왔었거든. 홍콩영화는 이소룡이나 제키찬의 영화같이 무술이나 액션이 들어간 영화가 주를 이뤘지만 가끔 진가신이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 같이 서정적인 스타일의 영화들도 많이 나왔었지. 물론 호불호는 많이 갈렸어. 영화는 일단 재미가 우선이라는 시선들이 우세했으니까.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사랑이야기 따위가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래도 좋아할 사람들을 다들 좋아했어. 특히 중경삼림이 처음 나왔을 땐 정말 인기가 많았지. 원래 다음에 나온 타락천사가 중경삼림의 세 번째 에피소드였지만 영화가 너무 길어질까 봐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 내가 처음 중경삼림을 보러 갔을 땐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어. 그러니까 20대 중반이 되겠다. 누구랑 보러 갔는지 기억이 나.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엄마 아니에요?”
엄마?
“엄마가 오늘 아빠랑 영화 잘 보고 오래요. 엄만 대학교 동창 친구들 만나고 온댔어요. 그래서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고 했어요.”
영화가 끝나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날까. 그 사람 말야. 그 사람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임청하와 장만옥]
그 당시 임청하는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였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임청하가 인기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이가 마흔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인기가 있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중경삼림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금성무와 함께 연기를 펼쳤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담이지만 그녀가 피는 담배는 비흡연자들도 흡연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섹시하고 매혹적이었다.-물론 왕가위의 영화에서 담배는 빼놓을 수 없는 미장센이지만- 그녀의 아련한 듯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여운을 남겼다. 대부분 중경삼림에선 두 번째 옴니버스의 왕페이와 양조위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나는 금성무가 했던 대사 두 마디에 꽂혔기에 첫 번째 옴니버스를 더 좋아했다.
‘나는 바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해두고 싶다.’
술자리에서 남자들은 임청하가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무리 갑부랑 결혼을 했다고는 하다만, 그래도 영화계의 은퇴라니. 마침 그때부턴 한국에서 홍콩영화에 대한 인기도 끝물에 이르렀을 때라 이후 영화판에서 홍콩영화는 급속도로 사장되어갔다.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홍콩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자리 잡았다. 꼭 홍콩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홍콩이 좋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유로움과 화려함을 쫓아 홍콩 여행을 가겠다고 말씨름을 놓았고 남자들은 장국영이나 유덕화의 영향을 받아 멋 좀 부린다면 홍콩에 가봐야 한다고 입씨름을 놓았다. 내가 장만옥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건 그 무렵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말 그대로 홍콩에 대한 로망만이 남은 채 영화판에서는 대부분 사라져 버린 그즈음. 그때부턴 한국영화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주로 홍콩영화에서 따온 클리셰들을 모방한 영화들과 일본 영화에서 따온 클리셰들을 모방한 영화들이 양산하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걸출한 한국 배우들이 홍콩 배우들과 함께 합작 영화를 추진하기도 했었다. 내가 장만옥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취향이 독특하다고 말했다.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요염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그래도 임청하를 이길 수는 없다고 입을 뻥긋하기 바빴다. 그때 나의 취향을 조금은 이해한다며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처럼 장만옥을 열렬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청하 보단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딱히 나의 편을 들어달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편을 들어주니 들어주지 않은 것보단 마음이 좋았다. 극장가에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SF영화들이나 판타지 영화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혹시 장만옥을 좋아하면 집으로 와서 같이 장만옥이 나온 영화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날 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캔맥주에 통닭을 사들고 집으로 와서 그동안 방 한쪽 선반 한편에 쌓아두었던 비디오를 비디오 플레이어에 연속으로 틀어보았다. 유덕화와 공중전화 키스신이 유명한 ‘열혈남아’와 유덕화, 장국영, 유가령과 함께 나온 ‘아비정전’, 그 외에도 제키찬의 어시스턴트 역할로 나온 폴리스 스토리와 여명과 함께 홍콩 생활의 애환을 그린 ‘첨밀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디오들을 망라해서 일종의 장만옥 시네마를 출품하듯 내 세워 보였다. 그 사람은 밤새도록 쉬지 않고 영화를 송출하는 브라운관 앞에서 지치거나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나와 함께 영화들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건 영상이 비추는 브라운관에 눈을 명멸한 채로 가만히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모습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밤새 불평 한마디 없이 나와 장만옥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밤을 지새운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 새벽이 지나고 동이 트자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이제는 너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역시 임청하보단 장만옥이야.”
나는 그제야 내 취향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마음 한쪽에서 욱신거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뒤 나는 그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보통은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경우가 없다. 아마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보는 자그마한 브라운관이 아닌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손끝부터 찌릿하게 전율하였다. 아니, 사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미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은 많았다. 그래,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것이 나를 전율케 하는 감정이었다. 나는 상영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에 전동 추를 매달아놓은 듯이 요동쳤다. 저 멀리서 그 사람이 보였다. 마른 몸이 다 덮일 정도로 박시한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고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 사람은 오후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를 듣고 우산을 하나 들고 나왔다. 나는 그 사람을 웃으며 맞이하였다. 오늘 영화 기대해도 좋을 거야. 요즘 인기 있는 영화니까. 그때 봤던 영화가 뭐였더라, 아, 심은하가 나오는 영화였어. 그래, 8월의 크리스마스. 그 사람과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영화가 재미가 없나? 아니면 영화가 너무 재미있나? 차라리 조용히 있다 보니 영화에는 더욱 몰입이 되었다. 영화의 중반부가 넘어갔을 때쯤 나는 팔짱을 끼던 손을 가만히 의자 옆 팔걸이에 내려놓았다. 그러길 잠시 후 손등 위로 무언가 따뜻한 온도가 느껴졌다. 그 사람은 나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살며시 올려놓았다. 나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빨갛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영관이 어두워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손등 위에 놓여 진 그 사람의 손바닥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온기를 가만히, 아주 가만히 음미하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은 내 손에서 자신의 손을 떼지 않았다.
심은하 정말 예쁘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심은하 얼굴만 들어오더라구.
“전에는 그렇게 장만옥이 좋다고 하더니만 뭐야, 이제는 심은하?”
그거야 당연히 심은하가 예쁘지. 장만옥도 좋기는 하지만, 이제는 심은하가 더 낫지 않겠어? 요즘 홍콩 영화들도 잘 안 나오고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영화가 끝나고 나와 저녁을 같이 먹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영화를 보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그 사람에게서 볼 수 없었던 꽤나 불편한 표정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녁을 먹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그 사람의 손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단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볼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연락처로 받았던 번호로는 더 이상 그 사람과 연락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사람과 처음 만난 곳도 연락을 기대하고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단지 술집이었고, 그 사람과 나는 각자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뿐이었으며, 술이 오르다 보니 함께 술을 마신 것뿐이었다. 그리고 술이 다해서 우리 집에서 밤새도록 영화를 본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때 그 순간에서 그 사람과 관계를 끝내버렸어야 했다. 하루를 기대하고 간 곳에서 만난 사람을 하루로 끝내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넘겨버린 그 사람과의 비정상적인 만남에서도 갑작스런 두절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때 그 손을 잡아볼걸. 그때 그 손을 잡지 않아도 곧 다시 잡을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 나는 그 손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던 거였는데. 그 순간을 붙잡았어야만 했는데. 그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와 중경삼림을 보고 와서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모조리 보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딸에게 인터넷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내가 가진 조그만 휴대폰을 이용해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나는 침대 맡에 누워서 저녁부터 밤새도록 나의 젊은 시절을 풍미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열혈남아, 아비정전,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밤사이 시간은 길지 않았기에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장면들을 돌려보았다. 열혈남아의 공중전화 키스신, 아비정전의 맘보춤신과 가로수신, 중경삼림에서 임청하와 금성무의 술집신과 파인애플신과 양조위가 등장하며 흘러나오는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왕페이의 몽중얀, 동사서독에서 임청하의 수중 무도신과 양조위의 무협신, 타락천사의 총격신과 오토바이신,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의 오열신과 이과수 폭포신,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양조위의 위태로운 계단신... 새벽은 짧았고 나는 다음날 아침 동이 터오는 것을 오랜만에 눈으로 지켜보았다. 동창회에 나갔던 아내는 아침이 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새벽을 지새운 채로 출근 준비를 했다. 딸아이는 기껏 차려놓은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양복을 갖춰 입었다.
[화양연화]
“주말에 따님이랑 영화는 잘 보고 오셨어요?”
중경삼림 보고 왔어. 요즘 애들 답지 않게 옛날 영화를 좋아하더군. 그 영화 벌써 30년 가까이 된 영화인데 말이야. 요새는 옛날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게 유행이라면서?
“아, 중경삼림 보고 오셨구나. 저도 그 영화 알죠. 유명하잖아요.”
유명하기야 유명하지. 근데 요즘 애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내가 젊을 때 보던 영화인데 말이야. 그래도 오랜만에 그때 영화를 보니까 기분은 좋더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들도 떠오르고 말이야. 그때 한창 홍콩영화들이 유행할 땐 사람들이 너 나할 것 없이 홍콩 배우들이 입고 나왔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는 했었는데. 물론 그 당시 젊었던 나도 다들 따라 하는 유행 정도는 조금 따라가는 편이었지. 멋쟁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어디 가서 못났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자네는 젊었을 때 뭐하고 놀았나? 유치하게 영화나 보며 놀지는 않았을 테고.
“에이 부장님. 저도 부장님이랑 비슷해요.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뭐 그러면서 놀았죠. 젊을 때 노는 게 다 별거 있나요. 거기서 거기죠.”
꽤나 점잖았나 보구만. 술은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게 제일 좋지. 뭐, 술이 있으면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되니까 말이야.
“그러게요 술 때문에 실수했다니까요. 지금 제 와이프 처음 만난 게 술자리였어요. 친구랑 술 먹다가 괜시리 꽂혀서... 아무튼 그렇게 만나서 연애하다가 결혼한 거죠. 술이 아주 지독한 녀석입니다.”
가끔은 이때가 타이밍이다 싶을 때가 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런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가장 중요한 순간은 왠지 모르게 금방 다시 같은 순간이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느껴져도 금세 또 이런 순간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후회를 한다. 역시나 그때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이런 충동적인 감정이 들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놓쳐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얻어내고 나면, 그다음엔 후회를 하지 않게 될까? 아니면, 그 무언가를 얻었어도 나는 또 다른 이유로 결국 후회를 하였을까.
퇴근할 시점이 다가오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오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나?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TV를 보지 못했다. 오후까지만 해도 날씨가 꽤 화창했는데. 하필 오늘은 차도 끌고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비를 쫄딱 맞아야 하나. 근처의 편의점에서 싸구려 우산이라도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아침에 예보를 제대로 듣지 못해 저녁에 사 오는 싸구려 우산이 집에 수십 개가 된다. 매번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깜빡하고 우산을 사 가지고 들어온다. 비 올 때마다 느껴지는 한심스런 루틴이다. 오늘도 그런 한심한 날이다. 그래도 좋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퇴근하고 비 오는 거리를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원래 비 오는 날에는 밖에서 서성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곧장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야 한다. 머릿속에는 당장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빗물이 어깨와 바짓단을 적시고 온몸이 습기로 가득 차 축축해지면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이 들뿐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분들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한다. 전동차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내다보는 비 내리는 풍경은 나름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의 우산과 몸에 달라붙어 밖에서부터 밀려들어온 물기들로 인해 전동차 바닥엔 빗물들이 미끄럽게 깔렸지만 빗물이 직접적으로 몸에 닿는 것은 아니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비 오는 날은 따뜻한 공간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쳤다. 나는 저녁에 먹을 음식을 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을 할 때 자주 마주치는 역 앞의 허름한 만두가게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역사 밖을 나와 만두가게로 들어간 뒤에 고기만두 한판과 김치만두 한판을 샀다. 집에 가면 나 말고도 먹을 사람들이 있으니까, 조금은 많이 사가는 것이 좋다. 만두를 포장한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인도를 걷고 있을 때 육교 가까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침이면 자주 보았던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익숙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다만 오늘 아침에는 볼 수 없었던 뒷모습이었다. 영락없이 내 예상이 맞았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그녀 옆에 있는 처음 보는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남자였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였다. 나는 곧장 방향을 반대쪽으로 틀어 동네를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오늘 아침에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밖에서 한 시간을 서성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나를 맞이했다. 나는 웃었다. 한 손에는 한심한 우산이 들려있었고 다른 쪽 손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만두가 들려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을 먹지 않았다. 갑자기 내가 지새운 어젯밤이 떠올랐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춘광사설]
시간은 무심하게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잊혀진 기억이 문득 떠오를 때는 더욱 그렇다. 오랜 시간 동안 묵혀두어 기억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숙성되어버린 순간이 어느 날 갑자기 생각 위로 떠올랐을 때 그 무기력함은 누구라도 참을 수 없다. 충동은 강력해진다. 좋은 추억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은 잘 지낼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얼굴은 그대로일까? 결혼은 했을까? 나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던 이후로 그 역시 나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대로 묻어두었을까? 항상 추억은 지나가버린 후에야 후회가 된다. 그 사람과 헤어진 그날 이후로 나는 평범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갔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도 가끔씩은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숙성되지 않은 추억이었다. 아직 마지막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추억은 아직 후회스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으며 신입으로 들어갔던 회사에서 이젠 부장이 되었다. 내가 일에 나머지 시간을 쏟아붓고 있을 때 딸아이는 벌써 열아홉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아쉽다고 느껴지는 순간 한없이 아쉬워지기만 할 것 같았다. 외면하고 살아가는 법도 일종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회사에 출근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진 아침에는 레인 코트와 목도리를 여미어 입는다. 직장에 도착하면 이십여 년이 가깝게 같은 종류의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타서 마신다. 다른 커피들도 많이 마셔보았지만 이만한 맛이 없었다.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화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대화를 한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수화기에 대고 떠들어댄다. 만약 무성영화로 나의 이런 모습을 찍는다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수화기에 입을 대고 혼잣말을 떠들어대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오전의 업무가 끝나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은 너무 무겁지 않은 것이 좋다. 예전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점심만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먹었다. 위장이 늘어질 정도로 많이 먹고 나면 오후에 잠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눈이 조금씩 감긴다. 이런 문제로 주변에서 따가운 눈초리를 네댓 번 받고 나면 오후에 잠드는 것이 무서워진다. 점심을 무겁지 않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 이곳에 일을 하며 얻어진 자연스러운 습관 같은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엔 커피를 또 마신다. 커피는 많이 마셔도 질리지가 않는다. 오전에만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입에 닥치는 대로 마셨다. 중간에 여유가 생기면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즐겁다. 아직 세상에 대해 완숙하지 못한 신선한 발상들에서 생기가 넘친다. 같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 역시 잠시 동안은 젊어지는 것 같다. 그들은 아직 내가 그다지 늙은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믿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퍼포먼스의 한계가 있다. 보여주고 싶은 게 더 많지만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나이 먹는 괴로움이라고나 할까.
오후에는 조금씩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어느새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비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무서운 인상이 땅 아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한심스러운 날이 아니었다. 나는 아침에 TV에서 뉴스를 봤고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았다. 그리고 집에 잔뜩 쌓여있는 우산들 중에 가장 최근에 구입한 우산을 가지고 회사에 출근했다. 요즘엔 자가용을 끌고 나가지도 않고 주로 전철을 이용한다. 자가용에 진하게 배어있는 알 수 없는 땀 냄새와 그것을 지우기 위해 애써 노력한 방향제의 찐득한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요즘 자가용을 부쩍 이용하였다.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면허증을 사용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을 마치고 나는 비가 쏟아지는 도심 한복판에서 나의 몸을 겨우 덮을 수 있을만한 우산을 머리에 이며 길거리를 걸어갔다. 그리고 빗물에 옷이 젖는 것을 피해 재빨리 역사에 들어갔고, 전동차에 몸을 실은 채 빗물에 흥건히 젖은 우산을 내려놓았다. 전동차 바닥에는 밖에서 타고 들어온 빗물들로 인해 축축하게 젖었다.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그랬던가. 이 방에 감정이 생겼나?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고. 오늘 전동차 안의 감정은 너무 풍부한 것 같다. 매일 같이 느껴왔던 마른날의 바삭바삭한 전동차의 웃음이 쉽게 기억나질 않는다. 지금 나의 눈앞에는 전동차가 젖어있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역사에 도착하자 비는 그쳤다. 사람들의 옷에는 물기가 사라졌고 우산에 묻어있던 빗물은 말라있었다. 전동차 역시 조금만 지나면 다시 웃음을 되찾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나는 저녁에 먹을 음식을 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나를 유혹하는 음식들의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풍겨왔다. 보는 맛으로 먹는 통닭을 사 갈지, 아내의 뒷모습이 담긴 식어버린 만두를 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엇을 먹고 싶은 지 물어보고 싶었다. 딸내미가 먹고 싶다는 것으로 사가자. 그러면 조금은 고민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응, 아빠야. 아빠 지금 집에 거의 다 와가는 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빠가 사갈게.”
딸아이는 밖에서 저녁을 이미 먹었다고 했다.
“응, 엄마랑 먼저 밥 먹었어. 아빠 먹고 싶은 걸로 사와.”
나는 불현듯 무언가를 묻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지호야. 혹시 만약에. 지호가 좋아했던 사람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을 해오면 어떨 거 같아?”
하루에 자신이 맞이할 수 있는 정각은 두 번이다. 아침 6시가 지나면 저녁 6시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잊은 채로 다음 6시를 기다린다. 지나가버린 그날의 아침 6시는 지나가버린 것이다. 생각에 잠겨 새벽을 지새웠던 6시든, 밤새 자신의 위치를 벗어난 일탈을 꿈꿔왔던 6시든. 어찌 되었든 그 시간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저녁에 다가올 6시는 괴로워진다. 아비정전에서 잊혀진 공중전화박스의 공허함처럼.
전화의 마지막 대답은 ‘그다지’였다.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거나 그다지 싫지만도 않다거나. 때로는 잊혀진 추억들에게 여전히 뜨겁기를 바라는 것도 잔혹할 수가 있다. 단지, 기억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온기를 보존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 강한 충동은 언제나 다가온다. 길거리에 풍기는 음식들의 냄새들이 나를 괴롭게 하듯이. 잠시 바람에 다른 길로 샐 수도 있다. 춘광사설의 마지막, 양조위가 했던 대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속삭이듯 조그맣게 말한다. 나는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찾게 되면 언제라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사 가지 말아야지.
눈으로 먹는 통닭도. 차갑게 식어버린 만두도.
그럼,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