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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Nov 14. 2016

필요없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Dalai Lama: Behind Our Anxiety, the Fear of Being Unneeded를 번역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변을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우린 가장 살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엔 폭력으로 병든 지역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독재 정권 아래 생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여러 믿음들은 사랑, 자비, 그리고 인내를 가르치지만, 상상하기도 어려운 폭력이 종교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의 숫자는 줄고 있고, 더 적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도 줄고, 이전에 비해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구는 크게 늘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인권자들에 대한 존중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희망과 진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선 분노와 불만이 팽배합니다. 미국, 영국, 그리고 유럽 대륙 전반의 사람들은 정치적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안전하고 부유한 이 나라들에 살 기회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이미 약속된 땅에 사는 이들은 자신의 절망스러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무슨 연유일까요?


사람의 만족도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놀라운 실험에서 연구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다고 느끼지 못한 장년층이 그렇다고 느낀 이들보다 일찍 죽을 확률이 세배가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결과는 더 보편적인 진리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길 열망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이기적인 자존심이나 다른 이들로부터 세상적인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 이들을 돕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갈망으로부터 나옵니다. 13세기의 불교 승려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 누가 다른 이들을 위해 불을 밝히면, 그 자신의 길도 밝힐 것이라."


세상의 대표적인 종교들은 다른 이들에 대한 헌신이 삶을 드높이는 일이며 행복한 삶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과학적 연구 결과들도 종교적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선행을 우선순위로 두는 미국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굉장히 만족한다고 할 확률이 두배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사회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행복하다고 할 확률이 다섯 배나 된다고 합니다. 이타심과 즐거움은 얽혀있습니다. 인류가 더 가까워짐을 느낄 때, 우린 더 행복합니다.


이제 왜 고통과 분열이 부유한 국가에 퍼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의 부족이 아닙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유용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하기에, 사회와 단절됐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세배에 가까운 근로연령대의 인구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에 두루 나타나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히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잉여의 느낌은 영혼에게 치명적입니다. 이는 사회적 고립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이어지며, 부정적인 기운이 뿌리내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이 현상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답은 우리 개개인에게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오늘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까?" 인류는 한 가족이라고 보는 것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 실천하는 의식적인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이 행위를 습관으로 키울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가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포용성을 키우고, 모두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사회를 만들 특별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관용사회란 의미 있는 일자리들을 많이 창조하여 그 누구든지 기여할 능력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는 사회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관용사회는 아이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할 교육과 수련과정을 제공하여, 경제적 안정,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실용적 기술과  도덕적 이해를 키워줘야 합니다. 관용사회는 약자를 보호하는 한편 그 정책들이 그들을 고난에 빠뜨리거나 의존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편에서 나오는 비뚤어진 생각들은 사회적 배제로 이어지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모두가 합심해서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을 싹 틔우고 협동하도록 하는 건 공통된 정치관도 종교도 아닙니다. 그보다 단순합니다: 관용, 존엄성, 더 낫고 의미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에 대한 공통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일반적인 편 가르기를 초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대화와 관계 또한 그리하여야 합니다.


역사적 안정과 번영을 누려왔던 사회에 분노와 좌절이 산불처럼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육체적, 물질적 풍요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엔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욕구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갈망을 채워줄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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