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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May 10. 2016

디자인은 기능도 아름다움도 아닌 것

바야흐로 디자인 전성시대다. 애플, 에어비앤비 등등 디자이너들이 큰 역할을 하는 몇몇 기업들의 성공으로 일류 기업들이 너도나도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디자인과 디자인 사고 Design Thinking는 좀 더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작년 SXSW에서 존 마에다 John Maeda가 Design in Tech Report 2015에서 밝힌 것처럼우리의 생활양식과 니즈가 변함에 따라 비즈니스에서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디자인은 산업기술 영역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됐다. 많은 기업들은 이제 디자인을 옵션이 아닌 필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수용하고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해결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디자인이란 여전히 '예쁘고 아니고'의 문제로 남아있다디자인은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아쉽고, 그러나 포기할 수 있는 영역이며 기능과 대립구도에 있다어떤 물건을 살 때 현명한 소비자는 기능과 아름다움을 고려할 것이며 이왕 같은 가격이라면 기능을 위해 디자인(아름다움)을 희생하는 게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스펙에 비싼 가격을 주고 맥북을 구매하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라!)     


하지만 디자이너로서디자인에 대해 간과되는 부분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디자인을 마주할 때, ‘예쁘고 못생기고’의 일차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디자인은 겉모습보다도 본질적으로 그 내부에 존재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디어가 표현되는 주체로서의 디자인을 바라보면, 우리가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겉모습 아래 가려진 디자이너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제목 이미지로 쓰인 사진은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디자인 회사 넨도’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전시한 '50개의 망가 의자'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본적인 의자의 형태를 만화에서 보일법한 재밌는 제스처들을 이용해 변형시킨다.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이 의자들을 보며 우린 엉뚱함에 피식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비록 전시목적으로 만들어져 실용적이지 못하지만 이 의자들은 우리에게 의자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준다. 우린 이 의자들을 통해 디자이너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는 거다. 넨도를 이끌고 있는 오키 사토는 저서 문제해결연구소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디자이너라 불리는 까닭은 새로운 시점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형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다. 형태를 만드는 까닭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이란 결국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반응/생각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을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면디자이너들은 그에 상응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거다.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개념이나 문제에 대해 형태적인 답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공예나 미술과도 다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린 디자인이 제시하는 답안을 기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사실 디자인의 기능과 그 형태는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기능이 형태를 낳고형태가 기능을 낳는 얽히고설킨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능과 형태 중 어느 것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난 오히려 디자인은 그 둘 사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기능과 형태 사이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는 로맨스가 바로 디자인이다. 세상 남녀의 사랑이 다 특별하듯이 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 또한 달라서 우린 수만 가지 종류의 의자에 앉아볼 수 있고, 각기 다른 지붕 아래서 살기로 마음먹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에겐 디자인이라는 게 단지 예쁘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호기심으로 무장한 이들에겐 한 단계 더 깊이 내려가면 디자이너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좋은 디자인들은 세세한 디테일까지도 고려된 흔적이 남아있고그 흔적들은 디자이너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된다잠시나마 디자이너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며 디자인 과정을 다시 한 번 밟아볼 기회다디자이너가 하나하나 결정을 내리는 그 과정이 디자인 이야기가 되며 우리는 완성품에서 디자인 아이디어가 시작된 첫 페이지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고전 소설들이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도 독자는 매번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고 작가가 숨겨둔 비밀들을 밝혀내는 것처럼, 좋은 디자인도 그 자체로서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에 시간을 거스르는 힘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다디자인에 기능이 있다면 이런 문화적 기능이자 소통의 기능이 아닐까? 이런 기능은 돈으로는 살 수 없고 개인의 지극한 호기심과 관심을 지불해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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