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마스터 빌더를 추구하는 것이란
건축 관련 전시마다 가장 궁금한 점은, 한 스튜디오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큐레이션의 방향이다. 한 건물을 디자인하는데서 발생하는 수많은 모델, 드로잉, 스케치들만 해도 엄청난 양의 정보이기에 하나의 프로젝트만으로도 충분히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여러 해에 걸친 스튜디오의 작업들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세세한 디테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그 안에서 공통된 주제로 일괄적인 뼈대를 구성하는 게 중요한 듯싶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전시는 '만들기'라는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그간 토마스 헤더윅과 그의 팀이 이뤄낸 성과물들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일반적인 건축 전시처럼, 여러 스케일의 모델들이 중점적인 요소가 되었지만 역시나 부각되었던 부분은 도면 등 드로잉들의 부재, 그리고 1:1 스케일로 제작된 여러 목업(Mock-up)이었다. 토머스 헤더윅은 건축가 출신이 아닌 가구 디자인 전공생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업 방식 역시 일반적인 건축가들과는 다르게 치수가 그려진 도면들이 아니라 스케치와 스터디 모델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건축가가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 큼직한 움직임으로 전체적인 형태의 선부터 가다듬는다면, 헤더윅의 경우는 자재와 자재가 맞닿는 연결점 같은 디테일부터, 아니면 재료의 물성부터 탐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여러 모델들 중에서도 공정 과정을 위해 고안해낸 여러 '기구'들은 오히려 그 결과물보다 재미있었다. 르네상스의 브루넬레스키 Brunelleschi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설계하기 위한 기중기까지 설계했었다는데 마치 그런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뉴욕에서 봤던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의 전시 또한 만들기에 큰 중점을 뒀었다. 그 전시에서는 수많은 정교한 목재 모델들과 실제 건물에 쓰인듯한 1:1 스케일의 목업들이 나름 재미있었다. 하지만 피아노의 전시에서 보인 모델들과 목업은 그 자체로 굉장히 다듬어진 느낌이 강했고 하나하나가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반면에 헤더윅 스튜디오의 전시에서 보인 목업들과 공정에 쓰인 도구들은 마치 현장에서 막 가져다 온 날 것의 느낌도 강했고 즉석에서 만들어진 투박한 느낌이 강해 그 순간순간에 내린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더 묻어나왔다.
형태적 복잡함을 고려했을 때 헤더윅의 작품들은 비야케 잉겔스 Bjarke Ingels가 만들어내는 형태들의 수준과 비슷하다. 형태적인 정교함과 완성도에 집중하기보다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를 정하고 그것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한듯한 모습이다.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형태들은 그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전체를 이루는 부분 부분들의 연결점, 그리고 자재를 가공하는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낸다. 어쩌면 비 건축 전공자의 성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교육을 거치면서 가지고 나오는 수많은 '짐'들로부터 구속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헤더윅은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형태들을 추구할 수 있다. 비록 그 형태들이 매우 순진 naive 할지라도 말이다.
헤더윅은 졸업 이후에 바로 자신의 워크숍을 설립했으며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꾸준히 주목받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헤더윅의 디자인 역량을 다 떠나서 어떠한 배경과 능력으로 그렇게 일찍 독립이 가능했고 런던 시내버스, 올림픽 성화 등 걸쭉한 계약들을 따냈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전시를 보는 동안 한 가지 불편했던 부분은 스튜디오의 작업이 한 사람의 '천재성'으로 포장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헤더윅이 각 작업이 얼마만큼 참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스케일을 아우르는 작품들은 수만은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이 참여한 결과물이다. 특히나 장식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면 각 작업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팀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이름이 결국 브랜드가 되고 그렇게 돼야 이해하기 쉬운 세상이지만, 전시를 보면서 헤더윅의 '천재성'에 감탄사를 내뱉는 많은 관객들을 보며 디자인 프로세스의 협업적인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