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매출 1등, 메가 프랜차이지 김용수 대표를 만나다
‘답은 현장에 있다’는 지론으로 전국의 장사의 신을 찾아다닌 지 어느덧 4년,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메가 프랜차이지 김용수 대표이다. 원할머니보쌈, 미스터보쌈, 노랑통닭, 강정구의 피자생각 등 4개 브랜드를 운영 중인데 총 5개점 중 4개점이 전국 매출 1~2등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 광명 지역에서 이뤄 낸 결과다. 그는 원할머니 직영점 직원으로 시작해 본사 메뉴바이저가 되었고, 장사가 너무 하고 싶어 직장동료와 동업으로 시작한 첫 장사가 성공하여 지금껏 달려왔다. 그가 말하는 다섯 개의 기둥, 점장들과 함께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짜장면 배달, 술집, 설거지, 일식집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정신 못 차리고 놀 때가 있었는데 내 돈 벌어 내가 쓰겠다는 마음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군 제대 후 우울증이 왔어요. 뭐든 잘 하고 싶은데 일이 안 풀리니까… 사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배달하다가 좋아하던 여자와 마주친 일도 있었고, 아저씨가 학생들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싸움을 말리려고 갔는데 아저씨가 저를 먼저 때려서 일이 커졌습니다. 사고 쳤으니 합의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 키울 만큼 다 키웠으니 그냥 감방 가라. 나는 합의금 안 해주겠다” 그때 심적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합의금을 해주셨지만요. 그 일을 계기로 우울증이 왔고 제가 밥도 안 먹으니까 어머니가 벼룩시장을 가져오셔서 제가 취업할만한 곳에 빨간 줄을 쳐 주셨습니다. 그게 방에 한 가득 쌓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국가를 보는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성화 봉송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에 눈물이 왈칵 났어요. 저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는데 사지 멀쩡한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제가 왜 일해야 하는지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벼룩시장을 보다가 원할머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 원할머니였냐고요? 사실 근무 조건이 좋았거든요. 직영점이라서 4대 보험, 주 1회 휴무 등 그 당시로는 최고였습니다.
제가 근무한 곳은 철산명가 직영점으로 점주님의 현장 교육 장소였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제가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점주님에게 고기 써는 것을 가르칠 때면 저 사람이 고기를 정말 잘 썰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점장님이 저를 좋게 봐주셨고, 최초의 현장 출신 메뉴바이저를 만들겠다며 계속해서 본사에 품의를 올려주셨습니다. 직영점 직원이 메뉴바이저로 승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전 공고 출신이었습니다. “너 거기 가면 공부도 해야 하고 컴퓨터도 다뤄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 점장님이 물으셨습니다. 저는 자신 있었습니다. 사무직 직원들이 사슴처럼 보였거든요. “저 사람들은 보쌈을 썰어도 나보다 못 썰고 점주 교육도 나보다 못하는데… 나는 현장의 일을 많이 알고 있으니 교육을 해도 이야깃거리가 많고 파이팅이 넘치는데 저 사람들은 조용히 말로만 떠드는 사슴 같구나!"
원할머니 본사 들어가서 1년 동안 쥐 죽은 듯 지냈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니 눈치 보며 배우기 바빴습니다. 당시 교육팀 대리님이 “용수님은 조리사로 들어오신 것 같은데 어느 학교 나오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이 저를 너무나 창피하고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출근하려면 저희 집인 개봉역에서 성수역까지 23 정거장을 지나가는데 정거장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자격지심에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넥타이 매고 첫 출근한다고 직영점에 인사하러 갔을 때 “형 파이팅하세요”라고 말했던 직원들이 생각났고 아들이 회사 첫 출근한다고 양복 사주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차마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집에만 오면 얼굴 표정이 싸늘해져 아무도 말을 못 걸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 누굴까? 자격지심 이란 건 왜 들까?” 어느 날 새벽, 출근길에 청소하는 분을 봤습니다. 인상도 좋으셨고 웃으며 청소하고 계셨습니다. 꽤나 힘든 일인데 즐겁게 청소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 사람보다 젊고 더 편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내 가슴속에 어둠이 꽉 차 있구나, 그 정체는 바로 자격지심이다!’ 그때부터 전 출근길에 항상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 누구? 김용수
이 세상에서 무조건 배워야 할 사람 누구? 김용수
이런 생각을 계속하니까 인생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니 마음이 백지장이 되었습니다. 계속 웃음이 나고 혼나더라도 ‘오늘도 하나 배웠다 아싸’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는데 내 생각이 바뀌니까 사람들이 날 아끼고 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나한테 이렇게나 따뜻한 눈빛을 보냈는데 내가 못 받아들였구나.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구나.’ 그때부터 성장이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당시 원할머니에서 독서경영과 휴넷 사이버 교육을 했습니다. 제가 깨달음 얻고 2~3개월 후에 교육을 받았는데 휴넷 변화와 혁신 과정 필기시험 + 리포트 합산 결과 1등을 했습니다. 아!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생각을 바꾸니 칭찬받을 일이 생기고 뭐든 잘 풀리고 잘 되는 경험, 그런 경험이 제게도 시작되었습니다.
본사에서 2년 간 근무할 때 저는 장사하고 싶은 것에 미쳐있었습니다. 처음에 회사를 들어가서 사무직, 경력직들이 쓰는 엑셀 배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1년 간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지내다가 점주님을 만나면 호랑이처럼 날아다녔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교육시킨 매장이지만 내가 저 점주님보다 장사를 훨씬 더 잘하겠다. 교육을 할 때도 이게 내 장사다 생각하고 교육하니까 교육을 더 잘했습니다. 장사 얘기만 나오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고, 당시 원할머니 점포 개발하던 대리님과 동업으로 원할머니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창업하려면 2억이 필요했는데 저는 3천만 원 밖에 없어서 창업지원 대출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장소에는 김용수 대표 외에 3개 매장의 지점장 역할을 하는 김지환 이사가 참석했다. 그와 10년 이상 함께한 직원인데 어떻게 만났냐는 내 질문에 김용수 대표가 말했다.
“제가 2002년에 철산 명가 직영점 주방 직원으로 입사 당시 김지환 이사는 주방 설거지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장사를 하면 저런 친구들을 데려와야겠다라고요”
설거지하는 아르바이트인데 뭐가 그렇게 달랐냐는 내 질문에 그가 말했다.
‘확실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똑같은 설거지를 해도 파이팅 넘치게 했습니다. 설거지 속도가 다르고 야무지게 했지요” 그렇게 모은 동료들이 6명이 되었고 우리는 원할머니로 첫 창업을 함께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 -
#서비스컨트롤러 #현검사 #현성운이만난장사의신 #김용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