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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미 Jan 30. 2024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 같아서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까.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일기를 돌려 쓰는 것이 꽤 유행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숙제로 쓰던 일기 공책보다는 작지만, 훨씬 두껍고 예쁜 다이어리를 각자 500원씩 모아서 사고, 요일을 정해 한 사람씩 일기, 시 등 각종 생각과 감상을 써서 바꿔가며 읽는 것이었다. (물론 이곳저곳에 그림도 그렸다.) 선생님이 검사하시는 일기는 주말마다 몰아 쓰기 일쑤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썼던 이 돌림 일기는 밀릴 새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매일 누군가로부터의 편지를 기대했다. 


2024년 또 이렇게 한 해가 밝았고, 1991년 7월생인 나는 어느덧 만 32살이 되었다. 상상화 속 2020년,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시대를 4년이나 훌쩍 넘겨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글을 안 쓴지는 벌써 2년이 넘었다. 물론 인스타 스토리에 자주 내 일상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 한 꼬집을 주제로 삼아 늘어뜨려도 보고, 꼬아도 보고, 당겨도 보는 호흡을 가진 글을 쓰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사실 글을 안 쓰니 편했다. 하루에 적어도 3번, 많게는 5번도 더 글을 토해내듯 쓰다가, 이제는 마치 침을 넘기듯 터져 나오는 글도 꿀꺽 삼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도 더 많아졌다. 물론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 삶의 다른 부분으로 흘려 보냈지만 말이다. 


마음의 여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글을 안 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겪는 애달픔은 종종 있었으나, 그럼에도 지난 2년 반의 삶은 진정한 심적 평안을 누린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각기 다른 사람들과 매순간 휘말려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했다. 솔직히 일상 속에서 글 쓸 거리가 없었다. 미약한 글 솜씨 탓도 있으나, ‘행복’이라는 상태는 너무나도 강하고 넓게, 포근하게 내 마음 속 모든 감정을 다독이고 아우르는 것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아 결국 하늘과 하나가 되어 버리는 바다의 얼굴을 한 ‘행복’에 압도되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행복하다’였다. 슬픔과 고난은 막을 새도 없이 나를 뚫고 나와 버리기 때문에 그 아픔에 이를 악물고 기록했지만, 행복은 한겨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처럼 내 몸을 녹이고 적시며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오히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권위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냥 눈을 감고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 같아서, 항상 그리운 것이었다. 어릴 때, ‘내일은 돌림 일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읽게 될까’ 기대하며 잠에 들던 것처럼,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궁금해하고 또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참 보고 싶었다. 시간을 뛰어 넘어 나와 또 다른 내가 글을 통해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손도 잡고, 안아주기도 했던 시절들이 아련하게 떠오를 때가 있었다. 물론 글을 통해 만나게 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들도!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화성 이민을 준비한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절대절대 잃어 버리고 싶지 않은, 잊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들이 있다. 나를 웃게 해준 사람들이 있다.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그때와 지금의 내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듯 하나하나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때 그 순간들이 어떻게 나를 빚어왔고, 지금도 빚어가는 지를 말이다. 사실 나는 내게 일어난 나쁜 일은 쉽게 잊어 버리고 좋았던 것만 오래오래 기억하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어떤 면으로는 복 받은 성격을 타고 났기 때문에, 이거 말고는 쓸 내용이 별로 없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부터 꾸준히 다시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미래의 내가 나에게서 온 편지를 다시금 기대할 수 있도록. 보고 싶었어, 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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