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직장살이
직장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그게 맞는 것 같고, 그랬으면 하고, 그럴 것 같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일들이 많다. 그제야 "내가 잘못 알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게 맞다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연함을 앞세워 끝내 판단을 고집한다. 가벼운 착각이다. 연차가 좀 쌓이기 전까지,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게 착각하며 직장생활을 한다. 그런 착각들 중에 흔한 것들 10가지를 묶어보았다.
1.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
이 착각은 수준에 따라 하수, 중수, 고수로 나눌 수 있다. 하수는 자신이 맡은 업무가 자기 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수는 우리 팀은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고수는 나 없으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쌩쌩이든 꾸역꾸역이든, 사람 하나쯤 없어도 어떻게든 돌아간다. 그 일 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밖에 없는 경우는 드물고 사람 하나 빠졌다고 멈춰버리는 조직은 잘 없다.
2. 일만 잘하면 된다
성과가 제일 중요하다. 직장인은 성과에 의해 평가받고, 그 평가를 기반으로 커나간다. 하지만 그게 평가의 전부는 아니다. 평가는 정량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성적인 것들도 평가에 영향을 많이 준다. 평판이나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 바로 정성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을 제쳐두고서는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덧붙이자면 평가체계가 세밀하지 않을수록 (소기업들이 특히 그렇다) 정성적인 것들이 평가에 있어 더 많은 영향력을 갖는다.
3. 나는 호감이 가는 상사다
팀장님과 눈이 마주칠 때 짓는 미소, 과장님의 아재개그에 즉시 튀어나오는 박장대소, 부장님의 의견에 대한 공감의 끄덕거림은 호감보다 직급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가울 수도, 웃길 수도,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두를 호감의 증거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조직을 떠나보면 안다. 그렇게 호감을 표현하던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연락하고 만나게 될까?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4. 상사는 불편부당해야 한다
조직과 조직이 하는 일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 효율을 최대화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의견이나 생각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떼어놓고 하는 게 좋다. 특히 일과 사람을 리드하는 상사는 더 그래야 한다. 문제는 상사도 사람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으니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의 의견은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지 않는가? 상사도 마찬가지다. 이유야 어쨌든 사람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보다는 마음에 드는 사람 편을 들게 마련이다.
5.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쉽고 섭섭한 얘기지만,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관심 대상이 못 된다. 일의 과정은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요소만 없으면 그만이다. 결과를 통해 과정의 가치를 유추하게 되고, 과정이 좋았으니 결과도 좋았다고 사후 판단을 하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과정이 시원찮아도 결과가 좋으면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쉽게 말해 애초에 과정은 결과와 그 중요성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질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과보고서는 있어도 과정보고서는 없다.
6. 성실히,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준다
잘해야 알아준다. 성실과 열심은 결과를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일반적인 경우 수단은 평가대상이 아니다. 성실이나 열심 같은 태도는 인턴을 평가할 때나 고려 대상이다. 이미 실전을 뛰고 있는 직장인에게는 잘하는 게 최선이다. 덧붙이자면,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라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운이 좋아서 나온 결과와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가 비슷하다면 평가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관심을 쏟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7.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자리는 그 사람을 보여준다. 진급해서 윗자리로 간 사람이 전과 다르게 행동하면 자리가 바뀌더니 사람이 변했다고 평가한다. 그건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속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전에는 왜 안 드러났을까? 드러낼 만한 자리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로버트 그린 잉거솔이라는 작가가 링컨을 평하면서 한 말이다.
8. 존버가 승리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존버도 요령껏 해야 한다. 적당한 성과, 적당한 태도, 그에 따른 적당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존버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그냥 효율이 낮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승리란 존버를 통한 승리가 아니라 그냥 존버하는 데 승리하는 것이다. 직장은 일하는 곳이고 직장인은 성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일에는 관심 없고 자기 자리 지키는 데만 열중한 사람은 티가 나게 된다. 끝내는 밀려나거나 도태하기 마련이다.
9. 지금 퇴사해도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대부분 그렇지 않다. 퇴사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경우는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한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그게 아니면 성과에 매달리고 일에 집착해서 눈에 띈 경우다. 일단 노를 젓다 보면 안락한 육지를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연에 기대는 것이다. 안락한 땅을 목적으로 노를 젓는 사람과 비교할 게 못 된다. 이도 저도 아니게, 그저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해서는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어렵다.
10. 그래도 나는 80점 정도는 되는 직장인이다
자신을 80점 정도로 평가하는 직장인은 잘해야 50~60점 맞는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자기객관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기도 하고, 남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박하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스스로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직장생활 15년, 20년씩 한 부장님이나 이사님한테 스스로에게 몇 점 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 그리 후하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자란 점수를 채우다 보니 위로 올라온 것이다.
때로는 착각이 힘을 되기도 한다. 백이면 백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야 어디 힘이 나겠는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때는 현실보다는 가능성과 희망에 무게를 두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를 알고 적당히 나를 다독이는 착각과 현실을 외면한 채 혼자 생각을 고집하며 버티는 착각은 다르다. 착각도 착각 나름이라는 얘기다. 진중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착각에서 벗어나 실체를 봐야 한다. 그때는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아는 게 기본이다. 위에서 말한 것들이라도 미리 알아두자. 언젠가 현실을 바로 봐야 할 때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