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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20. 2019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치킨집

고용불안 - 세상은 넓고 내가 할 일은 적다 II

은퇴할 시기가 가까워진 40대 중후반 직장인은 더욱 불안해진다. 그러다 보면 직장생활이 아니라 장사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자영업자는 '피고용 상태의 지속'에 대한 불안은 없을 테고, 잘만 하면 수입이나 일자리의 유지 측면에서도 직장생활보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쉽게 든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은퇴 후의 계획에 한정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자진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자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고려되는 자영업 중에서도 처음 떠오르는 것이 '치킨집'이다. 문과 출신이든 이과 출신이든 직장생활의 끝은 결국 치킨집 밖에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치킨집은 대표적인 자영업의 하나다. ‘직장생활의 끝은 결국 치킨집’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치킨 장사라도 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따져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문과 출신이든 이과 출신이든, 직장생활을 접고 치킨을 팔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만 5천여 개이며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매장까지 더하면 치킨집은 4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주변에 치킨집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러려니 생각이 들겠지만 전 세계 맥도널드 점포 수가 3만 6천 개라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숫자임에 틀림이 없다. 글자 그대로 치킨집은 '한 집 건너 한 집'인 형편이다. 치킨집의 폭발적인 증가 현상은 외국인의 눈에도 기이하게 보였는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2013년에 이에 대한 기사를 내기도 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가족들이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치킨집들은 ‘치킨버블(Chicken Bubble)’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우려와는 상반되었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 2013년 낸 기획기사에서 당시 치킨집의 수를 약 3만 여개로 추산했다. 그 수치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면 2016년까지 불과 3년여 동안 1만 개의 치킨집이 더 생긴 셈이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로 이루어진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구매자가 많을수록 판매자도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가장 기본적인 시장의 논리로 치킨집의 증가를 설명하면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튀기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닭고기 소비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치킨집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은 장사가 무한정 잘 되기 때문이 아니다. 치킨집이 많은 이유는 낮은 진입장벽 때문이다. 은퇴 후 재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배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왕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로서 자주 접하던 치킨집은 더 없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치킨집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배달 어플에 치킨집을 검색해보면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치킨집들이 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지도를 검색해보니 10분 안에 걸어갈만한 거리 안에 20개 정도의 치킨집이 있을 정도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몇 몇 가게는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았다.


업계는 우리나라의 닭고기 소비량이 선진국의 절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치킨집이 더 늘어나도 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과잉 공급'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논리는 문을 닫는 치킨집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경우 2016년 한 해 4천 개의 점포가 개업을 했으며 2천8백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2016년 기준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수는 대략 2만 9천 개이므로 2천 8백 개는 약 10%에 해당한다. 프랜차이즈가 영세한 개인 점포에 비해 브랜드 파워와 영업 노하우를 갖춘 것을 감안했을 때, 폐점율 10%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위 10% 안에만 들지 않으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일단 열 명 중에 아홉 명 안에만 들면 살아남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1년 평균 영업이익은 2,360만 원이다. 재료비와 판매관리비를 뺀 영업이익은 장사해서 손에 쥐게 되는 수익이다. 그 수익이 중소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 수준밖에 안 되는 게 치킨집의 현실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들러붙어 인건비를 아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을 거드는 가족들의 노동력 또한 기회비용 차원에서 계산을 해야 한다. 알바를 쓰지 않는 대신 아내와 아들이 일을 했다고 해서 수익을 늘렸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내와 아들이 같은 수준의 노동을 다른 곳에서 했을 때 분명 수입이 있었을 것이다. 포기한 그 수입(마이너스)도 수익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가족들의 무임금 노동은 수익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그래도 까먹지 않은 게 어디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까먹지 않거나 '똔똔'을 만드는 것이 장사의 목적일 수는 없다. 더구나 퇴직금을 털어 넣고 하나 밖에 없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시작한 장사가 망하지 않은 것을, 까먹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면 치킨집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아이템이 분명하다.


은퇴 후 사업으로 많이 고려하는 거피 전문점이나 편의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커피전문점이나 생과일주스 전문점 같이 흔히 말하는 ‘카페’의 점포 수는 프랜차이즈와 개인 사업을 합해 9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점포 수가 많다는 것은 진입장벽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커피 전문점을 하려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도 있지만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자격증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사실 에스프레소머신은 한나절만 다뤄봐도 손에 익는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사실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장사를 시작하기 수월한 만큼 경쟁자들도 쉽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꾸준히 장사가 되는가 하는 것도 문제다. 9만 개의 카페들 중에 개업 2년 미만 업체가 41.1%이고 5년 이상 되는 업체는 29.8% 밖에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카페의 70%가 5년 안에 망한다는 얘기다. 서울시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흔히 ‘카페’라고 하는 커피음료점의 경우 3년 이내 폐업률이 36%에 이른다. 서울이라는 지역에 한정한 통계이므로 전체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생존율이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망할 확률이 높더라도 수익이 괜찮다면 도전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카페는 그렇게 벌이가 좋은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1년 평균 영업이익은 2,110만 원이다. 점포의 위치나 프랜차이즈의 특성 같은 것들이 변수가 되긴 하겠지만, 한창 벌어야 할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수입이다.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데다가 거대한 사업 차원에서 시장에 접근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데,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한 카페의 상황은 더 어려울 것이 뻔하다. 이해타산을 따져보자면 커피전문점 같은 카페 장사도 망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다. 


편의점도 은퇴자들이 많이 몰리는 자영업 중에 하나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수는 2018년에 이미 4만 개를 넘어섰다. 편의점 시장은 2017년 한 해에만 5천 개가 늘 정도로 커지고 있으며 전체 시장 규모는 20조 원이 넘는다. 매출 증가율도 2014년 7.8%, 2015년 24.6%, 2016년 18.6%로 상승세에 있다. 이런 수치들을 보고 있노라면 편의점 시장은 불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편의점 전체 시장의 분위기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편의점 시장 전체의 매출은 8년 동안 4배 성장했지만 가맹점주의 매출액은 거의 늘지 않았다고 한다. 목 좋은 곳에 편의점 점포를 몇 개씩이나 가진 사람이 아닌, 동네 어귀에 편의점 열고 동네 슈퍼마켓과 경쟁하는 많은 점주들은 일한 만큼도 벌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재계약을 해가며 버티는 이유는 이미 벌여놓은 일을 접고 다시 취직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든 대한민국에서는 ‘밑지는 장사’를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자영업에 뛰어드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자영업이라는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게 된다. 여기에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이 더해지면 자영업은 인생 2막을 여는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선택된다. 생존 편향은 생존한 사람들의 사례에만 집중하다가 생존을 일반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는 편향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분야의 성공 사례를 계속 접하다 보면 그 분야의 성공을 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가맹점을 모으는 가장 기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생존 편향을 머릿속에 심는 일이다. 성공한 가맹점들의 사례를 잔뜩 늘어놓아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 편향만으로는 자영업에 뛰어들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 아무리 성공이 쉽다고 해도 실패의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영업의 실패는 금전의 손실을 불러온다. 한 번에 쏟아부은 퇴직금과 겨우 장만한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날리게 된다. 같은 값의 이득과 손해 중에서도 손해를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성향’ 덕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낙관주의 편향(optimism bias)’으로 떨쳐낸다. 낙관주의 편향은 글자 그대로 ‘나는 잘 될 것이다’라는 자기 최면적인 오류다. 감정으로 치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의 감정인 ‘자만’의 일종이다. 


많은 중년 남자들이 무언가는 해야 먹고살 수 있는 현실과 생존 편향, 낙관주의 편향에 이끌려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거대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꿈꾸지도, 일확천금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면 만족한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꿈도 자영업의 현실 앞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체 인구에 비해서 자영업자는 너무 많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만큼 신규 자영업자도 끝없이 몰려든다. 낙관적 전망의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상,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들도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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