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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Jun 18. 2019

다음 역은 노후입니다.
내리실 분은 '돈'을 준비하세요

노후 불안 - 준비되지 않은 노년은 재앙이다 II

노후 준비가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은 소득에 여유가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당장 돈을 더 벌거나, 큰 목돈을 장만하거나, 노후에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어느 정도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해결 방법은 해법만큼 단순하지 않다. 


노후 준비는 결국 '돈'이다

당장 수입을 더 얻기 위해서는 일을 더 해야 한다.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얘기는 지금 돈벌이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을 늘리거나 더 많이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갑자기 월급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가게 문을 더 오래 열어둔다고 해서 매출이 쑥쑥 늘진 않는다.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투잡(Two Job)이다. 실제로 투잡은 소득을 보충하거나 늘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인터넷 구인 사이트인 잡코리아와 알바몬에 따르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18.6%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장인 중 5명에 1명은 월급 이외에 수입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투잡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두 가지 일에 쏟아붓는 것은 웬만한 동기 부여 없이는 쉽지 않다. 사람은 그리 멀리 보지 않는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금세 긴장이 풀리고 안도하고 행복해한다. 이미 직장이나 가게에서 진을 다 빼버린 상태에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에 눕는 것이 먼저다. 아직은 미래의 일인 노후가 투잡의 동기가 되기는 쉽지 않다.


목돈을 모으는 데는 인내, 또는 위험의 감수가 필요하다. 예금이나 적금, 사기업의 연금보험 같은 것들은 인내가 필요한 방법이다. 더 쓰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그만 넣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래야 목돈이 된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도 이것들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현실적으로 실용성이 떨어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소 노후생활 비용이 183만 원이다. 1년에 2천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쓸 수 있으면 노후를 살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 금액은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비용이다. 여가생활비용 등을 포함한 적정 생활 비용 수준은 283만 원이다. 반면에 국민연금의 1인당 평균 수령액은 월 38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019년 현재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 중 합산액이 월 100만 원이 되지 않는 경우가 79%다. '용돈 연금'이라는 조소 섞인 말이 무색한 금액이다. 국민연금의 고갈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노후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고소득 전문직이나 공무원, 성공한 사업가나 자영업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국민연금만 믿고 노후를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쪼개고 아끼고 참아가면서 적금을 붓고 사기업의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인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이긴 하다. 동시에 현재의 풍요와 행복을 덜어내서 미래의 불행을 예방한다는 점에서 서글픈 방법이기도 하다.


위험을 감수해서 목돈을 모으는 방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식투자다. 투자한 금액과 주식 가치의 상승 정도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금액은 달라지겠지만 제대로만 터져준다면 목돈을 모으는 데 이만한 것도 없다. 문제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적금이나 사기업의 연금보험은 물가 상승 때문에 금액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질 수는 있어도 원금을 까먹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주식투자는 원금을 얼마든지 까먹을 수 있다. 주식투자를 종용하는 사람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로 주식투자의 ‘특수성’과 ‘매력’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 말을 잘 곱씹어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투자의 위험도가 높다는 말은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런 불확실성이 클수록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리스크가 클수록 이익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손실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or 하이 로스(High Risk, High Return or High Loss)’에서 손실 얘기를 빼버린 말이다. 결국 손실의 가능성은 뒤로 숨겨버린 이 말에 사활을 건 숱한 ‘개미’들이 나가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40대쯤 되면 한 다리나 두 다리 건너에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식에 손댔다가 망한 사람 한두 명은 굳이 다리 건너에서 찾을 것도 없다. 그래서 주식 투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 노후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까지 날려먹을 ‘리스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투자 분야에서는 그나마 부동산 투자가 안전성과 수익성이 높다. ‘부동산 불패'라는 미신 아닌 미신이 견고한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서민에게도 가장 각광받는 자산 불리기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저기서 대출을 끌어다 건물과 땅을 사서 시세 차익을 노리다가 이익은커녕 있던 재산마저 털어먹는 수도 있다. 요즘에는 전세를 끼고 적은 비용으로 집을 여러 채 사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갭 투자'가 성행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투자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높여서 이익을 얻지만 투기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파고들어 차익만을 목적으로 삼는다. 대부분의 서민들의 부동산 투자는 이런 투기와는 거리가 멀다. 대출을 끼고 한두 채 집을 사서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차익을 남기거나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정도다. 사실 이런 방법도 상습적으로 하면 투기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누구는 어디로 이사했는데 프리미엄이 얼마 붙어서 대박을 쳤다는 얘기는 평범한 일상의 얘기가 된 지 오래다. 마치 나만 세상물정 몰라서 돈을 못 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나 의견들은 욕망의 부채질 덕분에 생긴 착시에 가깝다. 2017년 기준 40대 가구주의 주택 소유율은 57.9%다. 아직 자기 집을 갖지 않은 40대가 10명 중 4명이다. 이들은 사고팔고 할 집도 없다. 집이 있는 사람들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집은 생활의 동선을 정하는 기준점이다. 40대에 들어서면 직장이나 자녀의 학교에 맞추는 것이 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조건이다. 살기 바쁜 와중에 미래에 발생할 (지도 모를) 이익을 위해 집을 사고팔고 이사를 가고 하는 일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후 대비 차원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보험개발원의 <2018 KDI 은퇴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40대의 71.6%가 노후 대비를 위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방법으로 예금을 꼽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어렵게 장만한 집이 노후에 활용할 수 있는 듬직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적당한 시세나 유지해주길 바라는 것이 전부다. 


지금 당장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면 노후에도 계속 일을 해 돈을 버는 것도 지난하지 않은 노년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다만, 노후에 든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노후대비 자격증이다. 노년에 할 일을 일찌감치 마련해 놓는다는 취지다.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분야라 범위는 무척 좁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한국어교원,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빌딩 관리사, 부동산자산관리사, 공인중개사 정도가 인생 2막을 여는 자격증으로 열심히 홍보되고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이 자격증들이 얼마나 쓰임새가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활용 사례보다는 홍보성 정보만 넘쳐난다. 활용성이 담보되지 않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일은 한창 바쁘고 피곤한 40대 남자들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자식은 더 이상 노후 대책이 아니다

이외에 노후를 대비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자녀를 잘 키워 노후를 기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효도라는 이름으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요즘은 부모와 자녀는 별개의 존재로 살아가는 추세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중장년층 가족의 이중부양 부담 구조 변화와 대응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이 부모를 부양할 책임이 있냐는 질문에 26.7%가 그렇다고 답했다. 2002년 조사에서 70.7%였던 것에 비하면 글자 그대로 급감한 수치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약해졌거나 염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각자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다. 가까운 미래에 노후를 맞이할 40대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의 의식 변화는 용인할 수 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자식에게 기대고 싶지 않은 자존감을 아직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40대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노후를 자녀에게 기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자녀와 부모를 이중으로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중년에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더 문제다. 앞서 소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45세에서 54세 사이의 중장년 중 46.1%가 25살 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이중으로 부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인 연령의 상승과 평균수명의 연장이 빚어낸 서글픈 광경이다. 이 상황은 노후 대비의 여력을 앗아간다. 자녀의 독립이 늦을수록 일정한 비용이 소모는 피할 수 없다. 자녀만이 아니라 부모 역시 그런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 결국 이중 부양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후를 대비하는 일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40대가 이중부양을 하고 있거나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이중부양 여부를 떠나서 40대에게 자녀는 노후의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노후를 걱정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현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단지 노후 자금을 마련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던 NH투자증권의 <2016 대한민국 직장인 보고서>를 보면, 가장 큰 걱정거리를 묻는 질문에 노후불안이라는 답변이 34.9%로 제일 많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40대의 경우 노후불안을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답한 비율이 31.2%로 평균보다도 낮았다는 점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다른 연령대들에 비해 노후를 덜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40대에게는 노후불안만 걱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40대에게는 자녀교육(16.4%), 주택(15.9%), 건강(13.5%), 고용불안(9.3%) 등도 충분히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들이 워낙 많다 보니 노후에 신경을 덜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다.


노후불안의 뒤를 잇는 이런 걱정거리들은 미래가 아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것들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인데 노후불안이 35%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은 자녀교육, 집, 건강, 고용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40대 남자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삶이 발등의 불이다. 그러니 노후준비는 '내 집 불구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6년 <한경비즈니스>의 설문조사를 보면 40대가 왜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4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52.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74.3%가 '자금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4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못 벌지는 않지만 쓰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월 지출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항목을 묻는 질문을 보면 이해가 된다. 생활비가 55.4%, 자녀 교육비 25.7%, 대출금 상환이 12.7% 라는 답이 나온다. 이미 수입의 90% 이상이 묶여 있는 판국이다. 가처분 소득이 있어야 가능한 재테크나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도 사회보장 대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노후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49.1%나 됐다. 국민 중 절반은 노후 준비에 손을 못 대고 있다는 얘기다. 40대의 경우는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이 63.9%로 평균을 웃돈다. 하지만 준비 방법을 보면 암울하다. 40대 응답자의 66.3%가 국민연금을 노후 준비의 주된 방법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국민연금은 아직 노후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질 만큼의 수준이 안된다. 예금, 적금, 보험, 부동산 같은 다른 자산으로 부족분을 충당해야겠지만 평범한 서민들의 자산 규모는 20년이 넘어가는 노후 생활을 감당하기에는 빠듯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 세대나 그렇겠지만 40대 역시 당장 눈 앞에 있는 걱정거리가 먼저다. 40대는 고정된 소득에 비해 주택, 의료, 자녀교육, 부모 부양 등 지출이 크다는 세대적 특징이 있다. 당장이 팍팍한 마당에 20년, 30년 후를 내다볼 여유가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노후에 대한 불안은 항상 마음속 한편에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늙음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삶의 단계인 데다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일한 시간보다 앞으로 일할 시간이 훨씬 더 적은 40대 중반 이상의 남자들에게 노후는 코 앞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말이 100세 시대지 돈 없는 100세가 얼마나 비참한지는 굳이 체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길을 가다 폐지를 줍느라 허리를 숙인 어르신을 볼라치면 남 일이 아닌 듯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광경이 가라앉아 있던 불안을 자극한다. 동정심, 안쓰러움 같은 본능적인 감정과 함께 자신의 미래 모습이 투사되어 불안이 더 커진다. 눈에 보이는 미래지만 당장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더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40대 남자의 현실들은 참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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