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내부 경쟁
경쟁은 근대 이후의 사회를 규정짓는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치 않더라도 경쟁 체제에 몸을 담는다. 10년을 채 살지 못한 나이에 학생이 되어 같은 반 친구를 경쟁 상대로 삼아 15년 정도를 줄기차게 경쟁한다. 그런 경쟁을 헤치고 나와 사회에 진출해서도 경쟁은 계속된다. 방식이나 룰이 바뀔 뿐이지 죽을 때까지 경쟁을 해야 한다. 좋은 무덤자리를 갖는 것도 결국은 경쟁의 결과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직장이라는 조직 자체가 경쟁의 주체다. 이익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같은 시장 안에 있는 다른 조직과 경쟁한다.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집단과 집단의 경쟁 체제 안에서 경쟁의 실질적인 행위자가 된다는 얘기다. 더불어 조직 안에서는 내부 경쟁도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연봉, 직급, 인센티브, 인정, 평판 따위를 두고 동료들과 경쟁을 한다. 물론 그 경쟁에 열과 성의를 바치지 않고 신선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정확히 말해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경쟁을 강요할 때는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데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경쟁은 생존과 성장, 생식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개체 간의 상호 작용이며 진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동력 중 하나다. 직장생활에서의 경쟁도 이와 비슷한 궤를 이룬다. 지위, 연봉, 평판 등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이는 개인 역량의 발전을 가져온다. 리더에게는 내부 경쟁을 적절히 운용해 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곧 외부에 대한 경쟁력 확보다. 물론 운용의 묘가 관건이겠지만 의도 자체는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활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수준의 상과 벌,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동반한 내부 경쟁은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을 유지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전체 구성원의 역량을 일정 수준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 경쟁은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서 내부 경쟁을 잘못 활용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 특히 공동 목표를 위해 모인 한 집단이 내부 경쟁에 치중할 때는 여러 가지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내부 경쟁의 역효과
내부 경쟁은 공동 목표의 상실을 불러올 수 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 향상을 통해 집단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치중한 결과 정작 추구해야 할 공동의 목표에는 소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의 목표 달성은 개인의 우위나 역량의 증명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의 성과는 글자 그대로 구성원 모두의 성과다. 내부 경쟁이 치열할 경우 모두에게 공이 돌아가는 공동의 성과보다는 개인의 성과에 더 집착하게 된다.
내부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연대와 협업을 통한 시너지가 급격히 줄어든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경쟁자와 연대하거나 협업을 하는 것은 나의 우월함, 또는 내가 우월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일정 수준 포기하는 행위이다. 이는 나의 우월함을 깎아먹을 수도 있고 거꾸로 경쟁 상대를 우월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 같은 크기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커 보이는 '손실회피 편향'까지 더해지면, 자칫 경쟁 상대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협업이나 연대 행위는 선택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내부 경쟁에 치중할 경우 오히려 전체 역량이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남이 나보다 못하도록 하는 것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 평가로 경쟁의 결과를 산출하는 시스템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상대 평가에서는 상대의 성과를 떨어뜨리는 전략이 유효하다. 쉽게 말해 경쟁 상대인 동료 직원이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을 주지 않거나, 심하게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도록 (물론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전체 역량 하락의 폭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눈 앞에 연봉과 인센티브와 직급이 왔다 갔다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쉽게 장담을 할 수 없다.
경쟁의 왜곡도 문제가 된다. 모든 경쟁이 그 결과를 항상 정량화할 수 있지는 않다. 평가 항목에서 정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수록 결과를 판정하는 사람의 정성적 판단이 경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 부분이 틈이 되면 결과를 판정하는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그런 정치적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실력과 실력, 능력과 능력이 맞붙는 것이 아니라 충성과 충성, 아부와 아부가 맞붙는 식으로 경쟁이 왜곡된다. 직장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충성 경쟁'은 결국 정량화할 수 없는 평가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의외로 이런 정치 경쟁을 즐기는 리더가 많다.
리더 편의주의
내부 경쟁은 집단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고 리더가 의도적으로 유도하거나 강요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두 가지 상황 모두 리더의 책임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리더는 내부 경쟁이 자생적이든,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축했든 간에 그 운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전체적인 역량을 깎아내리고, 외부 경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무색하게 만들며, 역량과 관계없는 비효율적인 충성 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리더는 내부 경쟁보다는 외부에 대한 대응이라는 집단 공동의 목표에 더 무게를 싣는다. 내부 경쟁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지만 내부 경쟁이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는다. 더 나아가 현명한 리더는 내부 경쟁을 최소화한다. 어떤 형태의 내부 경쟁도 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원하지 않는 비효율이 어느 정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현명한 리더는 전체의 역량 강화를 위해 그런 비효율을 무작정 감수하려 들기보다는 연대와 협업의 시너지를 강화해 전체 역량을 높인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그런 내부 경쟁과 자신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부 경쟁이라는 것이 항상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구체화되진 않는다. "이대리 일하는 것 좀 봐라. 같은 입사 동기인데 창피하지도 않냐?"라든가 "영업 1팀은 일을 하긴 해? 왜 항상 실적이 2팀 반타작이야?" 같은 말도 결국은 내부 경쟁을 부르는 소리다. 리더가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겠지만 '그 정도 말'의 뒤에는 리더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깔려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조직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내부 경쟁만큼 간편한 것도 없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내부 경쟁의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그런 간편함에 매몰되면 결국 역량의 재고라는 취지는 간 데 없고 성과에만 급급하게 된다. 그 결과 내부 경쟁 때문에 생기는 외부효과가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리더는 다시 내부 경쟁을 더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는다. 내부 경쟁 말고도 분발과 발전을 위한 리더십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이 내부 경쟁을 강요하는 리더가 있다면 과연 리더 본인의 역량 재고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