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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Aug 16. 2019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을까?

일을 놀이처럼 - 직장인의 로망

직장인을 위한 조언 중에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즈음에도 들었던 말이니 역사와 전통이 꽤나 깊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직장인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다. 현실에서 '일'이란 생계를 이어가는 데 쓸 재화를 얻기 위한 노동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피고용인이며, 고용인이 정한 형태와 형식, 목적에 따라 일을 한다. 쉽게 말해 돈을 받고 남이 시킨 대로 하는 것이 직장인이 하는 일이다. 당연히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재미는커녕 일이 주는 압박과 스트레스만 없어도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직장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말은 꽤나 혁신적인 발상이다. 일은 재미없지만 놀이는 재미있다. 그렇다면 재미가 넘치는 놀이의 속성을 일에 적용하면 일도 재미있어지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그런데 일을 놀이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잘 없다.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원론은 여전히 설파되고 있지만 일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일을 놀이처럼 하라고 권하면서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무슨 속셈일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일을 놀이처럼 할 공산이 큰데, 자신이 일을 놀이로 만든 방법은 왜 말하지 않을까? 설마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빡세게' 일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일을 놀이처럼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미 나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직장인들이 모를 수 있을까? 그런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리도 없고 직장인 당사자들이 그냥 놔둘 리도 없다. 구체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을 놀이처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에 부풀고, 놀이 같은 일의 재미에 빠져서 야근을 불사할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의 현실은 정확히 정반대다. 결국 결론은 '그런 거 없다'로 귀결된다.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은 직장인들의 신화화된 로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놀이의 성격

일에 놀이의 성격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일과 놀이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루덴스>에서 놀이의 특징을 이렇게 규정한다. 먼저, 놀이는 자발적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다. 놀이는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놀이는 비현실적이다. 현실을 염두한 효용이나 실용, 필요 같은 목적성이 없다. 실제로 놀이를 해서 얻는 것은 별로 없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놀이를 한다면 그때부터는 놀이가 아니라 일이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하시는 점에 10원짜리 고스톱은 놀이다. 10원도 돈이긴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재미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담배연기 가득한 하우스에 틀어박혀서 1만 원짜리 박카스를 마시면서 하는, 한 판에 수 십, 수백만 원짜리 '섰다'나 '훌라'는 놀이가 아니다. 승리가 목적이라면 놀이가 되겠지만 승리를 해서 판돈을 쓸어 담는 것이 목적이면 결코 놀이라고 할 수 없다.


놀이는 놀이만을 위한 규칙과 시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규칙과 시공간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요소다. 다만 놀이의 규칙은 현실 세계의 규칙과 달리 특별한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놀이에서의 규칙은 그저 놀이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끝내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여기에 놀이를 위한 가상의 시공간이 더해지면 비로소 놀이가 실현된다. 앞서 말한 놀이의 비현실성을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놀이만을 위한 가상의 시공간이다.


일의 성격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을 놀이와 비교해 보자. 일의 자발성에서부터 한숨이 나온다. 보통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단편적으로 볼 때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가끔 있다. 하지만 남이 시킨 일을 돈 받고 하는 것이 바로 일(노동)의 본질이다. 일은 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을 때 말 수도 없다. 일의 시작과 끝도 일의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이란 전적으로 조건과 약속에 의해 우리에게 강제되는 것이며 그 강제성이 클수록 자발성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놀이가 비현실적인 것과는 달리 일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일은 그 일을 함으로써 반드시 얻어내거나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 대부분의 목표들은 매출, 이익, 생산율, ROI처럼 정량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우연히 정량적으로 분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분석할 수 있도록 목표가 수립된다. 일의 성과를 눈에 보이게 한다는 것만큼 일이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일의 목표가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한 일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규칙과 시공간은 일에도 적용되는 요소다. 다만 그 속성은 놀이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일의 규칙은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만들어진다. 놀이의 규칙이 단지 놀이의 시작과 진행, 종료를 위해 존재하는 데 반해 일의 규칙은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존재한다. 시공간도 일에 적용된다. 하지만 놀이의 시공간이 가상인 것과는 달리 일의 시공간은 현실과 연동한다. 일의 목표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실의 시공간과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규칙과 시공간은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놀이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놀이는 그렇지 않다. 일에는 목표 달성의 책임이 항상 따라다닌다. 당장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값이 월급이고 연봉이다. 하지만 놀이에는 책임질 일이 없다. 친구들과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하는 데는 어떤 책임도 따르지 않는다. 만약 어떤 형태라도 책임을 부여한다면 그때부터 물놀이는 놀이가 아니게 된다. 놀이에는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 


일을 놀이처럼 하자는 사람들은 몇몇 기업의 사례를 들곤 한다. 구글의 구글플렉스, NHN의 플레이뮤지엄처럼 직원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구비하고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기업들을 '일을 놀이처럼 하는' 기업으로 소개된다. 언뜻 보면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는 듯도 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을 놀이처럼 한다기보다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에 가깝다. 쉽게 말해 좀 더 즐겁고 여유롭게 일을 하는 업무 환경을 만든 것이다. 업무 환경이 그렇다고 해도 일이 놀이가 되기는 어렵다. 일을 잠시 멈추고 VR 게임을 즐기고, 수영을 하고, 보드 게임을 한다고 해서 그 놀이들이 하던 일의 연장일 수는 없다. 그저 노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으로 쳐주는 것뿐이다. 


일을 놀이처럼 하자는 말의 속뜻은 일을 즐겁게 하자는 것이다. 즐겁게 일하자는 말에는 그 누구도 반대할 리 없다. 하지만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이 즐겁게 일하기 위한 현실의 방법으로 적절한 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더 큰 염려는 구체적인 실현 방법이 없다시피 한 이런 말이 조직의 강제 속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희망이 아닌 환상을 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환상과 현실을 비교하면 환상이 이기기 마련이다. 덕분에 현실은 더 비루하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결국 실현 여부가 보장이 안 되는 일과 놀이의 일치는 현실의 팍팍함만 도드라지도록 만들 뿐이다. 일은 그냥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게다가 일은 우리의 삶에서 충분한 가치와 의미마저 지니고 있다. 일을 즐겁게 하면 더없이 좋지만 일이 놀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불행한 것도 아니다. 일도 놀이도 목적에 맞게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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