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열 Aug 19. 2019

뒷담화의 동기와 목적

뒷담화

'뒷담화'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 사람의 험담을 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원래 당구에서 쓰던 '뒷다마'에서 나온 말이다. 뒷다마는 노린 공의 앞을 맞추지 않고 뒤로 돌아가 뒷면에 맞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공의 뒤를 노렸을 때는 뒷다마라고 하지 않는다. 보통은 앞을 노렸지만 빗나간 공이 우연찮게 뒤로 돌아와 맞았을 때 뒷다마라고 한다. 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굴러간 공이 우연찮게 맞았으니 점수를 내줘야 하는 상대편의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속상한 일이다. 뒤를 친다(혹은 때린다)는 뒷다마의 속성은 정면에서는 아무 말 없다가 뒤에서 험담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어 '뒷다마 까다'라는 식으로 쓰였다. 그 후 원래 당구공을 뜻하던 '다마(일본말로 구슬)'가 '이야기하다'라는 뜻의 '담화'로 대체되면서 '뒷담화'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뒷담화를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직장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뒷담화를 할 때도 있고, 다른 이의 뒷담화에 동조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직장이라는 곳이 뒷담화를 하기 쉬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면 뒷담화는 어김없이 생겨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게 되니 뒷담화도 직장에서 제일 많이 접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뒷담화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해도 뒷담화를 좋게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뒷담화를 할 때는 즐거움을 느낄지 몰라도 뒷담화가 끝이 나면 죄책감, 불안 같은 감정에 속이 좋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의 교류, 정서적 교감과 유대감의 증대 같은 뒷담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한다. 뒷담화를 단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하는 말'이라고 넓게 해석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업부 이 과장님 사표 쓰셨대", "영업 1팀 2팀 통합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아침에 김 부장님이 지난달 실적 때문에 사장님한테 엄청 깨졌대" 같은 말들은 직장 안에서 벌어진 상황이나 상태를 공유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떠나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는 '정보'다. 정보의 공유는 조직 구성원들의 정보 취득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끼리의 연대감을 북돋울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상'이나 '사실'에 관한 이야기까지 뒷담화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뒷담화는 애초부터 정보 공유 차원의 대화가 아니다. 뒷담화는 어디까지나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이다. 자리에 없는 사람의 흠을 들추어내고 헐뜯는 일은 정보 공유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끼리 정서적 교감과 연대감이 커질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감과 정서적 교감을 키우는 것을 반길 조직이 있겠는가? 뒷담화의 동기와 목적을 알게 되면 뒷담화의 긍정적 효과 따위의 말은 쏙 들어가게 된다.


뒷담화의 동기와 목적

뒷담화는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행위를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이런 험담의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대상자를 깎아내리기 위함이고 좋지 않은 평판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상처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사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 행위다. 사람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데는 반드시 심리적 동기가 있다. 주로 복수심, 분노, 증오, 질투, 시기 같은 감정들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뒷담화라는 엄연한 공격 행위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복수심'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자극하는 욕망'이다. 쉽게 말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상처로 되갚으려 하는 욕망의 감정이 복수심이다. 직원들 앞에서 면박을 준 상사, 나의 의견에 빈정거린 동료,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는 부하직원은 마음에 상처를 준다. 마음의 상처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일으킨다. 그 분노와 증오가 복수심을 발동하게 만들어 나 역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사에게 면박을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동료에게 똑같이 빈정거렸다간 싸움이 되기 십상이고, 부하직원을 갈구다가는 속 좁은 상사로 찍힌다. 직접적인 공격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격인 뒷담화라는 전략을 선택하면 반격의 위험이 훨씬 적다. 그런 점에서 뒷담화는 복수의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설마 하겠지만 의외로 뒷담화의 동기가 복수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험담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72.7%'그 사람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라고 답할 정도다. 


질투, 시기도 뒷담화의 동기로서 충분하다. 질투는 누군가가 내가 가지 못한 것을 갖고 있거나, 나의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전자의 상황에서 질투는 열등감을 자극하게 되고, 후자의 상황에서는 불안감이 커진다. 그 열등감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뒷담화가 무기로 쓰이곤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은 그 사람을 비방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우월감으로 바꾸고, 나의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은 경쟁자의 평판을 깎아내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되는 뒷담화는 노력과 공정한 경쟁 대신 인신공격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온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질투는 시기의 감정을 낳는다. 시기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 당사자를 미워하는 감정이다. 스피노자가 질투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며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도록 자극하는 미움'이라고 정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기의 감정은 질투처럼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단지 상대가 상처 받고 불행해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다. 시기심이 동기가 되는 뒷담화는 일종의 무차별 공격 양상을 띤다. 내가 얻는 것이 없더라도 상대가 아프기만 하면 된다. 쉽게 말해 나보다 잘나 보이는 게 싫으니 실컷 괴롭혀 주겠다는 의미다.


뒷담화의 동기가 반드시 감정에 있다고만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이 경우에 속한다. 뒷담화를 하는 이유를 묻는 설문의 답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로받을 것 같아서', '남들이 하니까'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이유들을 풀어서 해석하면 뒷담화는 대부분 심리적 공격 행위임이 드러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뒷담화의 타깃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준 사람일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뒷담화는 나를 공격한 사람을 공격하는 보복 행위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은 공격성을 공익성으로 포장하기 위한 수사(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뒷담화는 문제를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탕비실에 앉아서 팀장 험담을 하는 것이 팀장의 리더십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냥 마음에 안드니 험담하는 것 뿐이다.


위로받기 위해서라는 답은 스트레스 해소라는 답과 다를 바 없다. 없는 사람을 험담해서 괴로움을 덜고 슬픔을 달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받은 상처만큼 상처를 줘서 아픔을 보상받겠다는 얘기다. 험담의 대상은 당연히 나로 하여금 위로를 받고 싶게 만든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보복하고 싶은 것뿐이다. 남들이 하니까 같이 한다는 말은 가장 비겁한 답이다. 명색이 성인이면 남이 누군가를 험담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서 욕하지는 않는다. "김대리 왜 날 욕했어?"라는 질문에 "이 과장이 욕하길래 저도..."라고 대답한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결국 자신도 그런 생각이 있으니 험담을 한 것이다. 다만 험담을 하는 비루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서 남 핑계를 대는 것뿐이다.


뒷담화를 고자질 하는 사람

끝으로 뒷담화의 대상자에게 뒷담화의 내용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맺을까 한다. 단언컨대, 이런 부류가 뒷담화를 가장 악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남의 뒷담화를 가져와 당사자 앞에서 풀어놓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상처 입은 모습, 괴로워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것이고 서로 헐뜯고 싸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같은 편인 것처럼 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같은 편이라면 내 편이 뒷담화 당할 때 싸워주고 변호해줘야 한다. 만약 싸우고 변호했다면 전할 말은 '대판 싸웠다'지 뒷담화가 아니다. 뒷담화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뒷담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그야말로 박쥐 같은 존재이며 남의 아픔을 눈 앞에서 즐기는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인간들이다. 이들은 감정 때문에 특정한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는 누군가가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긴다. 때문에 자신이 직접 뒷담화를 하지 않고 남의 뒷담화를 가져와 상처를 주는 교활함을 발휘한다. 필요하면 뒷담화를 유발하는 적당한 미끼를 던져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물고 뜯으면 그 광경을 당사자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정말 드물지만 습관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뒷담화의 판을 까는 사람이 있다.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손절하기 바란다. 같은 편인 듯 굴지만 언젠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신이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고 즐길 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