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의 감정 읽기
남자에게 40대는 어중간한 나이다. 젊다고 하기에는 아쉽고 늙었다고 하기에는 모자란 그런 나이다. 20대, 30대가 보기에는 이미 중늙은이고 50대, 60대가 보기에는 아직은 청년이다. 그러다보니 어디에도 끼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어중간함은 40대 남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 사회는 각 세대에 적용하는 담론으로서의 키워드가 있다. 10대는 입시, 20대는 취업, 30대는 결혼, 50대는 퇴직, 60대는 노후준비 이런 식이다. 그런데 40대 남자들에게는 별다른 키워드가 없다. 그저 ‘꼰대’, ‘아저씨’ 같은 표면적 이미지로 인식되는 게 보통이다.
생각해보면 40대 남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줄곧 그랬었다. 사회라는 큰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직장 같은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기껏해야 '불혹不惑'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치켜세워주고, 갱년기라는 말로 적당히 걱정해주는 게 전부다. 이런 인식은 40대 남자들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많은 40대 남자들이 20대, 30대의 ‘남자다움’과 50대, 60대의 ‘어른스러움’의 경계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남들의 무감한 시선과 그 시선에 적응해버린 40대 남자들은 존재는 하고 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투명인간 같은 세대인 것이다.
40대 남자들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심이 피상적일 뿐이다. 40대 남자들은 가장 소득이 많은 연령대, 탄탄한 소비층, 경제의 허리층으로 불린다. 언뜻 듣기에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통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통계 안에서 표본집단으로만 소비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의도적으로 40대 남자들을 무시하거나 망각하지는 않았음을 안다. 하지만 40대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무심한 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사회는 40대 남자들을 향해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 따르고 싶은 상사, 본받고 싶은 선배가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40대 남자들에게 관심은 별로 없지만 공동체를 위해서 좋은 구성원이 되어 달라는 얘기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남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욕구들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결핍이 생긴다. 결핍은 사람을 주눅들게 하고, 열등감을 키우며,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40대 남자들은 인정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일터에서는 발상이 다른 후배들과 고루한 선배들 사이에서 치이고, 가족들 틈에서는 외톨이가 되기 일쑤며,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들도 얼마 되지 않는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안좋은 곳이 하나씩 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가 없는 안갯속이다. 많은 40대 남자들이 이미 주눅들어 있고 열등감에 시달리며 낮은 자존감에 괴로워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경이다. 이렇게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 따르고 싶은 상사, 본받고 싶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40대 남자들이 훌륭한 공동체 구성원이 되기를 원한다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욕구를 채울 수 있다면 문제가 쉽게 풀리겠지만 아무래도 인정은 타인으로부터 획득되는 부분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자존감을 북돋우며,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가지 필수적인 것은 반드시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에 주눅이 들고, 열등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낮아지는지 알지 못한 채 상대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난관이 있다. 심리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이상, 어쩌면 심리학자나 철학자라고 할 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낼 수는 없다. 더구나 40대 남자들은 여간해서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잘 드러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속내를 감추는 데 익숙할 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괴롭고 힘들어도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열등함이나 나약함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40대 남자들의 일반적인 태도다. 그러기에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도 40대 남자들 역시 ‘감정의 동물’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외부의 자극에 대해 마음이 반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인정 받고 싶은 그들의 욕구에는 감정의 공유와 소통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공감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이해되고 공유되길 원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 한다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충족되지 못한 채 결핍으로 남게 된다. 반대로 감정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달성되면 인정 받고 싶은 욕구도 채워진다. 40대 남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행위도 그들이 결핍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 된다.
40대 남자들에 대한 이해는 주변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다. 40대 남자들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솟아나는 감정 앞에서 당황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 남자는 40대에 들어 자신의 감정 상태에 당혹해 할 때가 잦아진다. 40대 초반에는 그럭저럭 30대 같은 기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전에 없던 감정 기복을 겪는 일이 많아진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쉽게 피로해지는 데다가 우울함, 짜증, 분노 같은 감정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감정을 감추는 버릇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그렇게 찾아오는 감정들은 처치곤란이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가 되면 원래 그래”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유지했던 ‘남자다움’과 ‘어른스러움’이라는 틀 안에 그대로 머물기를 강요한다. 눈물과 우울함 같은 감정은 호르몬 탓으로 돌려 40대 남자의 구성물에서 제외 시키는 것이다. 지독하게 이성적이고 가부장적인 그 틀 안에서 40대 남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게 된다.
40대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외면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그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으려 애써봤자 소용이 없다. 감정을 드러내 공감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는 노력 대신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를 스스로 거세하게 되면 결핍은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에 빠지면 결핍투성이로 늙어가는 것 말고 남는 것은 없다. 40대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주고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왕이면 괜찮은 사람으로 늙어가기 위함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40대 남자들의 감정을 헤아려 그들과 공감하고 연대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40대 남자들도 자신의 감정에 당황하거나 낯설어 하지 않길 응원한다. ‘나쁜 감정’은 있을지언정 ‘틀린 감정’은 없다. 40대 남자들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그들을 좋은 50대, 60대로 성장시킬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멋진 중년 남자를 곁에 두는 기쁨을 느끼게 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40대에 들어선 내가, 그리고 내 옆의 40대 남자가 그저 그런 남편, 아빠, 상사, 선배라면 나, 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기 위해 첫걸음을 성큼 내딛자.
앞으로 써갈 글들이 40대 남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에서 작은 지도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