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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r 16. 2020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의 속내

사후확신 편향 Hindsight Bias

<NO 거리두기, NO 마스크 "구로 콜센터, 예고된 문제였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기사 제목이다. 예고된 인재, 예고된 사건, 예고된 재앙. 기사들에 '예고된 무엇 무엇'이라는 말이 워낙 자주 쓰이다 보니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예고가 되어 있었다면 진작 방역당국에 얘기를 했었어야지, 일 터지고 나서야 예고되었던 거라고 하면 진짜 예고되었던 일이라고 믿을 수가 있나?" 기사에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 표현은 더도 덜도 아닌, 일이 터진 다음에 이미 나와있는 결과를 분석해 마치 결과를 예상했던 것처럼 구는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다. 


학자들이 말하는 사후확신 편향은 일종의 착각이다. 사후확신 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기억이나 판단에서 사건의 결과와 부합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한다. 그 대신 사건의 결과를 분석한 후 자신의 인지를 그러한 분석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라고 살짝 거만을 떨어주는 것이 사후확신 편향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표현방법도 거기가 거기인지 영어권에서는 Knew it all along effect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얘기를 듣는 일은 흔하다. 재미있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이 말이 주로 들린다는 사실이다. 일이 항상 잘 되라는 법은 없으니 실패나 실수도 있기 마련인데, 특히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유독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연구에 따르면 사후확신 편향은 상황이 긍정적일 때보다 부정적일 때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이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가 경쟁 입찰에서 떨어졌는데 어느 임원이 '떨어질 줄 알았다'라며 별 것 아닌 듯이 반응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임원은 입찰을 담당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부서의 직원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준비하고 관련한 업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남기려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해 가면서 고생한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떨어질 줄 알았다면 애초에 입찰에 참여한 이유는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면전에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말이다.


의도된 편향

부정적인 결과에 '그럴 줄 알았다'로 반응하는 사람의 속내는 학자들의 연구처럼 '인지적 착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의 대부분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업팀이 사업 수주에 실패했는데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라고 영업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은 서로가 불편해지는 일이다. 처음부터 실패를 확신하고 말리거나 대안을 내놓았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도) 있다. 


"고생했는데 안타깝게 되었네." 정도의 말로 충분한 상황에서 하지 않아도 그만인 말을 하는 것은 의도가 있어서라고 봐야 한다. 가령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다들 긍정적 결과를 예측하고 일을 진행했지만 자신은 부정적 결과를 예측했으니 관련한 책임이 덜 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가 나온 다음 상황을 해석하고 처음부터 그렇게 예측한 듯이 구는 것이지만, 책임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직장생활에서 흔하다. 일을 시작할 때 몇 마디 염려나 걱정, 잠시 부정적인 예측을 했던 것을 앞세워 "내가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앞서 얘기한 임원처럼,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책임을 피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부정적 결과의 당사자가 "이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얘기를 안 했을 뿐이다."라는 뜻이다. 결국 자신은 부정적 결과를 예측했지만 분위기나 권위 따위에 눌려 일을 진행한 것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책임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것임은 당연하다. 더불어 자신이 예측하지 못했던 부정적 결과를 사후확신 편향을 동원해 예측했던 것으로 만들어 실패로 인한 열등감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제삼자가 부정적 결과의 당사자를 앞에 두고 사후확신 편향을 시전 하면 비꼬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들리면 비꼬는 게 맞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들어줘서 비꼬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남의 불행 앞에서 나는 알고 있었네, 이럴 줄 알았네 말하는 것은 정말 그럴 줄 알고 있었다고 한들 위로를 위한 말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단지 자신을 결과를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자신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실패에 직면해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 앞에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맛보려는 의도일 뿐이다.


굳이 필요 없는 말

'그럴 줄 알았다' 같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사후확신 편향은 책임에서 벗어나고 열등감을 회복하고 우월감을 맛보기 위한 방법으로 적절하지도 않다. 자신의 일은 자신에게 책임이 당연히 있다. 이상한 방법으로 책임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그다지 효과도 없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면책 특권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사후확신 편향은 열등감을 회복하기 위한 자기 주문으로서도 가치는 낮다. 결과가 나온 뒤의 분석을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분석으로 위장해서야 열등감 회복이 될 리가 없다. 억지 끼워 맞추기인 것은 당사자가 더 잘 알 테니 말이다.


남의 불행 앞에 그럴듯한 사후 해석을 들고 와서 자신의 우월감을 만끽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최악이다. 얼마나 우월감을 느낄 일이 없으면 남의 불행에, 그것도 작위적이고 편향된 해석을 자신의 것으로 위장해서 우월의 수단으로 삼겠는가? 차라리 상대가 너무 밉고 싫어서 약을 올리고 싶다는 확고한 목적이라면 말리진 않는다. 싸움에 신사다움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월감을 획득하기 위한 사후확신 편향의 사용은 너무 치졸하고 없어 보인다. 그런 방식으로 얻은 우월감은 자존감을 세워주지도 못할뿐더러 의도가 쉽게 간파되어서 당사자 찌질함을 드러내는 손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한마디로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사후확신 편향이 순수한 착각의 결과라면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문제다.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거나, 인지를 위장해서 열등감을 극복하거나, 남의 불행을 거름으로 우월감을 확보하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하찮게 만드는 일이다. 정말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럴 줄 알았어." 따위의 굳이 안 해도 될 말은 하지 말자. 정말로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한다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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