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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12. 2020

예스맨(Yes Man)을 위한 변명

I Say Yes!

직장에서 상사에게 가장 자주 하는 대답이 무엇일까? 아마 '예'가 아닐까 싶다. 영어로 하면 'Yes'다. 꼭 '예'일 필요는 없다. '네', '넵', '옙' 같은 말도 '예'와 같이 수긍과 순응의 뜻으로 쓰인다. 물론 정확한 통계나 연구에 기반한 분석은 아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다. 대신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예'라는 대답을 제일 많이 하지는 않을지언정 '아니오'라는 말을 '예' 보다 더 많이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 어느 증권사의 TV 광고를 기억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친구가 좋다. 예스도 노도 소신 있게." 당시 잘 나가던 배우 유오성이 광고 모델이었다. Yes든 No든 자신 있게, 소신 있게 하자는 메시지가 직장인 초년생 딱지를 덜 뗀 나의 눈에 꽤나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때도 시궁창이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벤처 계열의 기업에서 주로 일했던 나였지만 소신 있게 No라고 한 적은 별로 없다. 굳이 딱 잘라서 말하자면 나는 노맨(No Man) 보다는 예스맨(Yes Man)에 가까웠다.


No라는 대답이 옳은 상황에서도, 혹은 No라는 답의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Yes를 말하는, 혹은 거의 기계적으로 Yes만을 답하는 사람을 예스맨(Yes Man)이라고 한다. 예스맨의 'Yes'에는 복종과 순응의 의미만 담겨 있을 뿐 주체적인 판단은 빠져 있다. 한마디로 영혼 없는 대답이고 비굴한 추임새다. 조직의 효율을 생각하면 무조건 Yes라고 답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객관적 판단을 상실한 Yes는 다양한 판단의 싹을 자르고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에 의해 조직이 굴러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예스맨이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예스맨 대신 노맨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No라고 얘기해야 할 때는 No라고 해야 조직도 제대로 굴러가고 사람도 발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현실의 직장세계에서 윗사람의 말에, 혹은 집단의 말에 No를 강단 있게 말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시카고 대학교 캐니스 프렌더개스트(Canice Prendergast) 경제학과 교수는 <예스맨에 관한 이론(A Theory Of Yes Men)>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대리인이 주인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주인이 평소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상사는 평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부하직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하직원은 No 보다는 Yes라는 대답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다. 적어도 직장에서는, 소신 있는 No 보다 건조한 Yes가 많이 쓰이는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You Say No?

괜한 미움받는다. 모두가 Yes를 말하는데 혼자서 No를 외치는 것은 튀어 보이는 일이다. 조직에서 튀는 사람은 미움받기 쉽다. Yes라고 하면 그냥 넘어갈 것을 괜히 No라고 해서 일 복잡하게 만드느냐는 뾰족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No라고 하면 부정적이다 패배주의에 쩔어있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Yes라고 하면 긍정적이다 자신감이 넘친다 같은 소리를 듣는다. 행여 No라는 대답이 옳았다고 해도 문제다. 능력과 감각을 인정받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료들에게 미움받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상급자의 미움을 살 수도 있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직장생활이 아닌데 피곤하게 살 필요 없지 않은가?  


100%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No라는 말이 객관적으로 확신할 수 판단의 결과라면 질러볼 만하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직장인도 사람인지라 그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100% 확신할 수 있는 판단은 그리 흔하지 않다. 때론 1%의 불확실성이 No라는 대답을 삼키게 만든다. 물론 상사의 판단도 100%의 확신을 담보하진 않는다. 다만, 상사의 판단이 100% 확신을 보장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의 No라는 대답의 확신을 100%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No의 결과가 잘못되거나 틀렸다면 질책과 탓이 따르기도 한다. 소신을 지키기에는 세상일이 너무 불확실한 것이다.


대부분 업무의 최종 책임은 본인에게 있지 않다. 비율로 따진다면 주로 상급자 신분인 리더가 가장 큰 비율로 책임을 진다. 물론 Yes라고 대답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비겁한 리더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리더는 시스템이 부여하는 리더의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리더를 따르는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최종 책임의 면책이다. 덕분에 Yes와 No 사이에서 자유롭긴 하다. 어떻게 대답하든 최종 책임은 리더에게 있으니 대답에 부담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No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굳이 No라고 대답해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리더의 몫

이 정도만 해도 No라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No를 말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충고들은 건재하다. 그렇게 소신껏 굴다가 직장생활이 망가지면 책임을 대신 져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가늘더라도 길게 가야 하는 것이 직장인들의 현실 아닌가? 마음속으로야 No를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외치는 게 직장인이다.  그것도 그냥 "No"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고 멍청아!!"를 외친다. 하지만 강력한 위계질서, 상명하복의 전통, 객관을 벗어난 평가, 편향이 충만한 평판의 문화가 도사리고 있는 직장에서는 쉽게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직장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리더다. 캐니스 프렌더개스트 교수 말대로 예스맨은 리더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No라는 말을 듣고 싶으면 Yes라는 대답이 무작정 반갑지만은 않다는 티라도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No라고 말하면 인상부터 쓰고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리더 앞에서 누가 No를 말하겠는가? 그런 분위기에서 어떤 직원들이 No라는 대답을 반기겠는가? 직원들이 원래 그런 성향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성향마저도 누그러뜨리고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리더 아닌가?


예스맨을 위한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정한다.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 맞다. 하지만 변명을 늘어놓아 구차해지는 것이 소신껏 굴다가 눈 밖에 나고 고달파지는 것보다 낫다. 그런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 듣기 싫으면 No라고 얘기해도 아무런 손해가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Yes나 No나 의견 중에 하나일 뿐이다. No라는 대답을 두고 상사에 대한 반항이라는, 혼자 튀고 싶어서 안달 난 것이라는 생각이 더 구차하다. 반기를 든 건지 혼자 잘난 척 튄 건지는 결과가 나온 후에 판단해도 전혀 늦지않다. 


하나 더 보태자면, 약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바람에 No를 쉽게 말할 수 없는 무력한 직장인 붙들고 당당함이나 소신 따위를 요구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실 그런 요구조차도 윗사람으로부터 나왔다면 아무 말 못 하고 Yes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직장인이다. 대기업 회장이 분위기 쇄신이랍시고 '앞으로 아닌 것에는 No라고 당당하게 답하라'고 하면 Yes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No라는 말이 듣고 싶으면 위에서부터 No를 실천하고 No라는 말에 편견이나 감정을 달지 않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No가 일상의 말이 될 수 있다. No가 일상의 언어가 되지 않는 한, 예스맨을 위한 변명은 지겹도록 유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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