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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y 21. 2020

직장인은 왜 책임감에 부담을 갖는가?

책임과 책임감

'책임'이라는 말은 직장생활에서 영원한 화두이자 전통적으로 중요 취급을 받는 키워드 중 하나다. 직장생활에서는 능력, 열정, 성실 같은 항목들이 출중해도 책임감이 부족하면 전체 평판이 가라앉는다. '일 잘하는 사람', '훌륭한 직장인(직원)'을 이루는 중요 포인트가 바로 책임감이다. 이런 분위기는 직장인들로 하여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감을 필수 덕목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덕분에 자신의 장점을 책임감이라고 말하는 입사지원자가 열에 아홉이고 책임감 있는 직원을 우수한 직원으로 손꼽는 상사도 열에 아홉이다. 상사는 책임감 있는 직원을 선호하고 부하직원은 책임 회피하는 상사를 싫어한다.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나 육중한가 하면 퇴사하려는 사람의 발목을 붙들 정도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2,982명을 한 설문 조사에서 퇴사를 결심한 직장인 중 64.8%가 퇴사 결심을 번복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퇴사 결심을 번복한 이유의 29.9%가 '맡고 있던 일의 책임감 때문에'였다. 사표 쓰고 뒤돌아서면 그만인데도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직장인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독단적인 권리'인 퇴사마저도 흔들 정도로 책임감은 힘이 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이 불필요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며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 업무라는 형태의 의무를 갖게 되고 그 의무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심지어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겠노라 계약서까지 쓴다. 그런데 직장생활에서는 그 당연한 책임감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잡코리아의 설문 조사를 보면 업무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와 관련한 고민, 부담을 계속 가지는 이유로 '내 일, 자리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응답이 56.8%나 되었다. 직장인은 왜 당연한 책임감에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임이라는 말이 갖는 이중성이 구별되지 않은 채 사용되기 때문이다. 


책임의 두 가지 의미

책임(責任)'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뜻한다. 그리고 책임감(責任感)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자기가 맡은 일을 스스로 중히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렇게 큰 부담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임에는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라는 뜻도 있다. 이 차원에서 느끼는 책임감은 맡은 일에 대한 부담감과는 무게가 다르다. 아무래도 '일의 결과'에 대한 부담이 '맡은 일'에 대한 부담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맡은 일에 대한 부담감은 의욕이나 열심, 성실함 같은 에너지로 변환하기가 쉽다. 어차피 주어진 일이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부담감'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단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그리 쉽게 벗어던질 수가 없다. 결과가 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그 불확실함으로 인해 의욕이 꺾이기 쉽다. 특히 직장생활에서처럼 책임이 반강제로 부여되는 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원하는 만큼만 책임을 질 수 없는 노릇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평가에 연결된다. 그 정도면 부담감이 아니라 압박감이다.


이렇듯 책임은 부담의 정도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 반면에 사람들은 특별한 구분 없이 책임이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 책임을 요구당하는 사람이 혼란에 빠진다. "이번 기획은 김대리가 책임지고 해 봐"라는 상사의 지시에 대해 맡아서 할 일이 생겼다고 여기면 부담이 좀 덜 하다. 하지만 그 책임이라는 말을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 여기면 그 중압감은 이만저만이 아닌 게 된다. 거꾸로 상사 입장에서는 그저 일을 맡긴 것뿐인데 부담감에 괴로워하면 당황스러울 것이고, 결과에 대한 부담을 지운 것인데 단순히 일을 맡은 것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황당해할 것이다.


또 다시 커뮤니케이션

갖지 말아야 할 부담을 갖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고 당연히 가져야 할 부담을 모른 채 하거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런 간극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부정확성 때문에 생긴다. 책임을 떠안은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책임을 부여하는 사람에게도 그 책임이 일을 맡는 것인지 결과에 대해 책임까지 지는 일인지 정확히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구분이 없으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업무 처리에 비효율성이 생긴다.


직제나 업무분장 따위는 신경도 안 쓴 채 밑도 끝도 없이 일을 맡기거나, '책임'이라고 했으면 눈치껏 알아들어야지 추가 질문을 왜 하냐고 핀잔을 주는 몹쓸 상사를 둔 직장인들에게는 그다지 쓸모 있는 의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영양가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없음에 가슴은 아프지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뀌니 말이다. 다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미약한 직장인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윗사람이 될 것이다. 그때는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충분히 인지하고 발언했으면 한다. 원래 세상은 바뀌기로 작정한 그 누군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법이다. 고단한 지금을 거름으로 삼아 천천히 미래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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