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열 Nov 03. 2022

뒷담화의 위험성

뒷담화를 멀리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직장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근로소득세와 뒷담화다. 이 둘은 차이가 있다. 근로소득세는 대상자의 의지와 무관하다. 좁게는 국세청 소관인 행정업무이고 넓게는 국가운영의 핵심이 되는 강제력 중 하나다. 반면에 뒷담화는 전적으로 입을 여는 당사자의 의지에 달렸다. 거부할 수 없는 것과 거부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둘의 차이다. 


의지에 맡겨졌음에도 불구하고 뒷담화는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평판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욕망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게다가 없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대감과 결속력을 높이기도 한다. 함께 뒷담화를 한 사람끼리는 같은 그룹에 속하거나 그룹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심리학자 콜린 질(Colin Gill)에 따르면 뒷담화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세로토닌 같은 긍정적인 호르몬 수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뉴욕주립대 인류학 교수인 데이빗 슬로안 윌슨(David Sloan Wilson)의 경우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뒷담화는 그룹을 견고하게 하는 의식의 일종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 긍정적 쾌락(에피쿠로스는 험담을 자연스러운 쾌락이라고 했다)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담화의 은근한 쾌감은 피하는 것이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서 좋다. 뒷담화가 가진 긍정적 측면의 반대급부가 꽤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그룹의 결속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뒷담화 대상인) 누군가는 '배제'되어야 한다. 배제되는 당사자는 적대감을 갖게 되고, 그 적대감을 객관적인 평가와 평판에 대한 (뒷담화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평가를 객관적이라고 믿기 마련이다) 부적절한 저항이라고 여기는 '뒷담러'들은 또다른 뒷담화로 대응을 하게 된다. 결국 '니편내편'이 생기고 각각은 뒷담화를 재생산하고 소비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서로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어른들의 세계인 직장에서 어린아이들의 기싸움 같은 것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보기 좋지 않은 것도 문제고, 효율을 첫째로 하는 직장이라는 조직의 역량을 좀먹는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그래도 조직은 굴러가고 월급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직원들의 뒷담화 공방 따위에 무너질 조직은 많지 않다. 다만, 조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뒷담화에는 개인에게 미치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첫째는 내가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뒷담화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할 때는 좋지만 당하면 기분 더러운 걸로는 뒷담화만한 게 없다. 직장에서는 뒷담화의 공방에 끼지 않는 사람도 뒷담화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뒷담화의 공방에 속해 있다면 하이에나 같은 뒷담러들의 타깃이 될 확률은 치솟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감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불쾌한 감정은 그 감정을 일으킨 대상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고 복수를 꿈꾸게 한다. 그저 얕은 쾌감을 얻기 위해 던졌던 몇 마디 뒷담화 때문에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는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안 그래도 힘겨운 직장생활에 감정싸움까지 더해지는 건 최악 중의 최악이다.


둘째는 신뢰의 상실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내가 가진 누군가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누군가의 신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뒷담화에는 암묵적 룰이 있다. '우리끼리 얘기한 것이니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룰이 없으면 뒷담화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룰은 어디까지나 뒷담화를 하는 그 당시에만 적용된다. 그래서 뒷담화가 새 나가는 일은 아주 흔하다.


말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믿었던 누군가가 발설했다는 것이다. 말을 옮긴 특정인을 지정할 수 없더라도, 그 당시에 있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더구나 나의 입에서 나온 뒷담화가 떠돈다면 누군가가 가졌던 나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특히 뒷담화의 대상이 된 당사자가 평소 나에 대해 신뢰와 호감을 갖고 있었다면, 신뢰의 붕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적'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당해도 직장생활은 지옥이 된다. 지옥의 악마가 되어서 상대를 물어뜯고 영혼을 짓이겨버릴 자신이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력과 재능을 지녔는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나쁜 감정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아무런 이유 없이 뒷담화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항변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뒷담화를 한 자에게 따지는 게 정당하다. 하지만 직접 뒷담화에 가담한 경우라면 정당성의 인정은 커녕 그저 잡스러운 싸움질을 일삼는 트러블메이커로 인식될 뿐이다.


뒷담화를 통해 얻는 얄팍한 우월감, 신뢰를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친밀감 따위에서 가치를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얘기가 나오면 자리를 피하자. 피할 수 없다면 담담히 듣기만 하자.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고 눈을 마주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는 순간 동의하는 게 되고 그러면 같은 편이 된다. 입술 한번 떼지 않고도 뒷담화를 한 사람이 된다. 그러길 원하는가?


뒷담화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뒷담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현명한 직장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은 왜 책임감에 부담을 갖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