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의 20대, 백수만 3번 경험하다
혹시 백수의 정의에 대해서 찾아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문득 이 백수라는 단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사전의 정의가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사전에선 백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원래 남의 집에 불난 이야기는 가벼운 수다거리로 다룰 수 있지만, 이게 자신의 일이 되어버리면 마냥 웃을 수가 없는 것이 우리네 본성인지라, 백수인 저는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저는 사전의 정의에 반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돈도 없었고, 직업도 없었으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기에, 정말로 사전적 의미 그대로 '백수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백수의 삶을 20대를 살아오며 총 3번 경험하였습니다. 인생은 삼세번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백수도 삼세번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제 인생의 삼세번에는 백수의 삶도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백수이긴 했지만, 이 3번의 백수생활은 각자 특징이 있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백수생활 : 수능시험 실패 후 재수 기간 (약 8개월)
두 번째 백수생활 :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기간 (약 6개월)
세 번째 백수생활 : 퇴사 후 지금까지의 삶 (1년 6개월이 넘어가는 중)
각각의 백수 생활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첫 번째 백수생활은 사실 백수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냥 남들도 어지간하면 재수 정도는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저도 큰 걱정 없이 이 기간을 보냈습니다. 저 때 역시 돈도, 직업도 없었지만 이런 것 때문에 괴롭기보다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삶을 뒤흔들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백수생활은 제 삶에서 가장 불안했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였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원하는 회사에 불합격했을 때 느꼈던 절망감과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좌절감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런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기에, 오랫동안 취업준비를 하지 못하고 붙여주는 회사에 냉큼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물론 취업준비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회사였지만, 백수의 삶에서 탈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했었던 시기입니다.
마지막 백수생활은 제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시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고,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몇 가지의 경험과 생각정리 덕분에 '백수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소득이 끊긴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한 번씩 저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3번째 백수의 삶을 살고 있는 저는 지금 의외로 꽤 만족스럽습니다. 아니요, 다시 말씀드리면 하루에 자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감으로 인하여, 저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중요한 이유는 제가 2번째 백수 시절에 경험했던 그 고통과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들이 제가 경험했던 감정을 그대로 겪고 있다면, 그 마음과 심리상태는 엉망진창일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자신의 피폐해진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저는 3번째 백수생활을 하면서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백수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과 같은 백수가 백수의 전부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제가 생각하는 백수로 지내는 기간은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시기'라고까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누구보다도 백수였던 자신을 혐오했는데, 결국 자발적 백수의 삶을 선택한 주인공이 저라는 이 사실이, 아직도 가끔은 어리둥절합니다.
그래서 저는 '왜 제가 백수의 삶을 다시 선택했는가'에 대해서 글을 통해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제가 정리한 백수는 사전의 설명처럼 게으른 건달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아직까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이 경험하는 일시적인 '잠시 멈추고 되돌아보기'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그 덕분에 저를 괴롭히던 '백수'라는 마음의 족쇄를 끊어낼 수 있었습니다.
백수의 삶은 그저 단어 그대로 맑고 하얀 손, 그리고 조금 보태서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휴식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주장의 근거를 앞으로 100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씩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리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올해가 끝나기 전까지, 이 100편의 글을 다 적어서 저의 이야기를 완결 지을 것입니다.
올해가 이제 100일 정도 남았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백수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좀 더 깊게 탐구해가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차차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프롤로그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고, 그저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 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셔도 괜찮습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