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예외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하여
정답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과
정답 말고도 여러 가지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
타고난 총무 기질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두드러지는 성격이 있습니다. 저도 도 마찬가지인데요,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면모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제가 총무라는 역할에 적합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친구들이나 동기들과 함께 여행을 갈 때면 자진해서 계획을 세우는 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을 제가 견디질 못한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세운 계획대로 여행이 딱 맞아떨어지게 진행되는 것 자체에서 가장 큰 즐거움과 만족을 느낍니다.
대학 시절 조별과제를 할 때도 저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조원들과 발표를 분담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별과제를 하게 되더라도 보통 제가 발표과제를 전부 작성하겠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저는 혼자 발표과제를 작성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울지라도, 혹시나 조원이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체로 회식을 하거나 모임을 하는 경우에도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단 이러한 '모임'을 계획하는 것 자체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모으고, 모인 인원에 따라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필요한 예산을 산출하는 일은 제게 일이 아닌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기획한 모임 계획에 따라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속에선 뿌듯함이 느껴지곤 했었습니다.
예외는 수용불가
하지만 이와 같은 저의 총무 성향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미 짜인 계획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걸 견디지 못했습니다. 바로 표정에 드러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갈 때도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보단 오직 제가 세워둔 계획에 따라 여행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조별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겉으로는 조원들에게 '제가 공부해보고 싶어서요', '자료 작성은 제가 할 테니 그럼 발표만 해주시겠어요?', '다음번에 또 발표가 있으면 그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어떻게든 제가 발표과제를 혼자서 작성한다는 주장을 거절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솔직한 심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단지 조원들과 일을 나눠서 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겼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혼자서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결과물이 더 잘 나올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속마음은 숨긴 채 오직 저의 편의와 만족을 위해서 겉으론 위선 가득한 말을 했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례도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개입된 상황에서는 자신이 예측했거나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나 예외가 많이 발생할 법한 일에 대해선 처음부터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언제나 모든 일에는 정답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정답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냥'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늘 계산하고 예측해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글자로만 읽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정답 이외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좁은 선택지
저는 제가 예상했던 상황과 정답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계획에 어긋나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게 있어 다른 사람과 일한다는 것은 매 순간 예외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전쟁터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이런 성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느 순간이 되자 저도 포기라는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일이 제시간에 오지 않거나 오류 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조차 '예상한 범위'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유야 어떻든 업무에 대해 약간이나마 예외를 인정하게 되었고, 마음에 여유를 두고 난 뒤로 저는 예전만큼의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인생에 정답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 위험한 것은 제가 인생에 정답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을 찾지도 못한 채 그저 '어디엔가 정답은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인생의 정답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없는 상황에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보통은 '해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보단 한 번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설령 최선의 선택지를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지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선택지일수록 그걸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을 몇 번만 생각하고 나면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선택해 실행에 옮기지만, 그러한 선택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처음부터 정답에 가까운 완벽한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것은 그 자체로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객관적인 생각을 통해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들, 그 생각은 이미 자신만의 주관이 가득한 경험에 근거에 나온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찾은 인생의 정답이라는 것은 애초에 보편적일 수 없으며 상황이 변하면 지금의 정답은 얼마든지 정답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어야 했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즐거운가
이처럼 저는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다행히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이러한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정답 없이도 주어진 순간순간을 즐겁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았으며, 정답만 추구하며 살았음에도 결과적으로 그리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정답을 쫓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답은 아닐지라도 매 순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집중력 있게 꾸준히 해나가는 데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니, 과거의 제가 정답을 찾아 해 메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기도 했었습니다.
정답을 포기하고 나자 예외상황을 싫어할 필요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답이라는 기준이 없다면 예외라고 부를 만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예외를 싫어했던 것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던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조별과제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다른 사람과 협력을 통해 훌륭한 성과를 도출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외상황이 발생할수록 저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가 노출되는 것처럼 느꼈고, 그로 인해 짜증과 예민한 감정을 드러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결심한다고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인생의 정답을 찾기보단 제가 살아있는 이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것,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을 하는 데 제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생각 같은데도 제겐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인생의 정답은 없지만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놓고 보면 누가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어떤 분께서 과거의 저처럼 인생의 정답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아무런 의심 없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저는 한 번쯤은 다른 선택지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봤는데 너무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정답은 없었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정답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 번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난 뒤부터 제 삶이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