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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Sep 21. 2021

(3) 어른은 어린이가 아니니까요


Bar, 탐정 진구지 사부로, 택시 드라이버


 어린 시절, 제가 부모님 차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Mou'라는 이름의 바(bar)였는데요, 푸른색 직사각형의 간판에 'Mou'라고 적힌 그곳은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았고,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느낌을 주었습니다.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들었죠.


 시간이 지나고, 중학생쯤 되었을 땐 '탐정 진구지 사부로'라는 게임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이 게임은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는 탐정 진구지 사부로가 의뢰받은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엔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 보면 꽤 심각한 사연이 담긴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는 이 게임은 아직 어렸던 저에겐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2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란 믿음을 가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그렇겠지만 소위 '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찾아서 보기 마련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라는 영화는 제가 이 무렵에 처음으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주인공 트레비스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훌륭한 연기를 멋지게 담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빠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영화의 ost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과거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저는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서 고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사람이야말로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재즈음악은 어른으로서 살아가며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와 고통을 위로해줄 수단이자 어른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였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확실히 철이 없었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어린이가 되고 싶은 어른들


 최근에는 어떤 분야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에 대해 '~린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식 초보자에겐 주린이, 부동산 초보자에겐 부린이라고 부르며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도서들에도 이런 식을 '~린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들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린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어린이'라고 부르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어진 이러한 사회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비록 어른이라 할지라도, 이 분야에 대해선 어린이가 가진 경험치와 다를 바가 없으니, 선생님이 학생에게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처럼 초심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매체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어린이처럼 대우받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나 지금까지 모아 왔던 자산을 투자하는 일에 있어서 '어린이'대우를 원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선 '난 이 분야에 대해선 어린이와 다를 바가 없는 상태이니 실수해도 괜찮아'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린이라면 다소간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도 다들 관대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니까요.


 달리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이들에게 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기 때문에 자신을 어린이처럼 이해해주길 원하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른으로서 행동하길 강요받는 지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냉혹한 사회에 내던져지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엔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린이'현상은 아직 충분한 경험과 준비가 쌓여있지 않은 어른들에게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와 위안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엔 어른이니까


 사실 저는 '~린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저라는 사람은 '~린이'라는 식으로 불리게 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군가가 조금만 저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마음이 놓이고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즉, 저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을 동경해왔지만, 정작 어른으로서 홀로서기를 하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린이'라고 불리기보단, 삶에 고민이 있을 땐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 bar에 앉아 술을 마시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보고 싶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어른이 되기엔 멀었다는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웃고 넘어가서 자세히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지만, 추측컨데 제가 '어른이라면 고민이 있을 땐 혼자서 bar에 앉아 독한 술이나 마시며 사색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풋내기 같아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아직 어른에 대한 환상과 동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죠.


 어쩌면 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어린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망가고 싶고, 큰 책임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데다가 다른 사람이 제게 조언을 구해오면 어설프게 주워들은 것들을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인 양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나같이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린이보단 어른에 가까운 나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어른스럽게 될 수 있도록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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