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부족해 뭔가를 못하는 경우는 없다.
다시 한번 시간 이야기를
오늘부터는 우리 '하얀 손'들이 살아가는 인생이 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시작부터 살짝 아쉬움이 드는데요. 그건 10개의 글로 백수의 매력을 설명하기엔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예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지키던 미국의 모 냉동인간 출신의 대위가 했던 대사가 떠오르네요. "나 이거 하루 종일 할 수 있어" 저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제게 '저기요, 도대체 백수가 뭐가 그렇게 좋길래 매일 표정이 밝으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루 종일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서로가 지칠 테니까, 일단은 한 가지만 확실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백수의 매력 그 첫 번째는 역시 '시간'입니다.
제가 이미 앞에서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좀 지겨움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의외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처음의 자유로움과,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이 시간의 의미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흔치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냥 직장 출근 안 해도 되고, 특별히 해야 하는 일 없으니까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 아닌가? 정도로 생각을 하는 것이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이 정도 가지고 백수의 매력을 느끼기엔 역시 설명이 부족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눈을 뜨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분명 시간의 자유가 많았습니다. 의식이 많은 시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으니까요. 물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부모님을 포함한 나의 주변에 계신 많은 분들의 보살핌 덕분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됩니다.
속박되는 인생의 시간
우리의 시간적 자유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제한받기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과 학교는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요, 일단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서 누군가가 내가 그렇게 행동해주기를 기대하는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시간의 자유를 제한당하며 살아가는 기간이 물리적으로도 엄청나게 길 뿐더러 그 시기가 인간이 성장하는 구간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며, 또 회사에 들어가 퇴직하고, 나중에는 몸이 아파오게 되면 병원을 가기도 하는 시간을 전부 더해봅시다. 학교가 최소 15년, 회사 생활이 약 15년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병원의 신세도 한 3년은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전체 인생 중 33년을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제한받으며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한 90살까지는 산다고 하더라도 3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이네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3분의 1을 투자할 수밖에 없긴 해도, 그 기간이 무조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학교와 회사생활에서도 나는 인생의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덕분에 나머지 3분의 2의 인생을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이걸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저는 사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굉장히 설득력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수면시간'입니다.
보통 하루에 7~8시간은 주무시죠? 안 그렇다고 해도 건강을 위해선 이 정도는 주무셔야 합니다. 게다가 루시드 드림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자는 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수면시간까지 고려하게 되면 우린 인생의 3분의 2가 시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지금 대략적으로 계산했지만 사실 출퇴근 이동시간,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행정처리 업무, 그리고 남자의 경우 군대, 여성의 경우 신체활동에 제한이 오는 임신기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다 고려해본다면,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됩니다.
순도 100의 시간적 자유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온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시간은 전체 인생에서 3분의 1이 채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남아있는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마도 평범하게 학교와 직장을 다녔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자유는 은퇴 이후일 것입니다. 그때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욕도 젊은 시절과는 다를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은 자유롭게 보이는 이 시간도, 경우에 따라선 병원에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난 뒤에야,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이 미래의 같은 시간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지금 1시간에 버는 돈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1시간을 회사에서 근무하며 받는 돈을 계산해보면, 약 16만 원 정도였습니다. 정말 큰돈입니다. 제가 어딜 가서 1시간 동안 16만 원을 받겠습니까. 그것도 일이 없을 때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가만히 있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이 같은 시간과 돈의 저울질을 저도 꽤 오랫동안 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했던 시간 계산법과 마찬가지로, 제가 퇴근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해야 했던 시간을 포함해서 다시 1시간의 가치를 계산했습니다. 저는 어떤 날은 주말에 집에서 쉬면서도 하루 종일 회사에 남겨둔 업무 생각만 한 적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1시간의 가치가 10만 원이 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아직 직급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제가 나이가 많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의 1시간은 노년의 1시간보다 분명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더해지자, 저의 마음속 저울은 시간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막연하게 퇴사한 것 같아도, 사실은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도 이 즈음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덕분에, 저는 퇴사하고 난 뒤에는 전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까지, 백수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순도 100%의 시간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창업자인 우리 자신
이 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은, 제가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을 제가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때나 먹고 노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생활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저는 직장 생활할 때마다 훨씬 계획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데요, 다만 그 직장의 주인이 제가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혹시 회사의 창업자나 사장님의 직장생활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웬만한 사원들보다 훨씬 빨리 출근하시는 것을 종종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역시 사장은 아무 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고요. 또 바쁠 때는 한없이 바쁘기도 하고, 경기가 좋지 않거나 사업 진척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두진 않죠?
왜 그렇게 힘든대도 사장님들은 그동안 벌어둔 돈이나 쓰며 여유롭게 살지 않으실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모 사장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회사생활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말을 바로 이해했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지시에 따르고, 떼로는 호통도 치며 짜증도 내지만 그걸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직장엔 있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면 존경도 받고 또 돈도 벌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내 일만 열심히 한 것뿐인데 밖에선 건실한 기업인이라며 상도 주고 존중해줍니다.
그러니 사장님은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없는 것이죠. 저는 우리 백수들도 이처럼 사장님의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인생의 주인이자 인생이라는 회사를 건실하게 꾸려나 갸야 하는 창업주이며, 동시에 사장님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자신의 삶이라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면 세상은 우리에게 돈도 줄 것이며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게 됩니다. 결국 회사나 우리 개개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인생의 대표이사로서,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 하루의 시간을 굉장히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통제도 많이 하는데요, 가령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7시 전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주말이나 연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에는 반드시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 등, 제 인생에는 굉장히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언젠가 하나씩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를 괴롭거나 구속받는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 제약사항은 제가 저 자신, ㈜내 인생의 위대한 창업자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괴롭기는커녕 즐겁기만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문득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다들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간 전부를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있으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백수가 되어서야 잘 지내고 있냐는 타인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저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