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멈추게 되는 것이 인생. 나를 되돌아보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인생
우리는 살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 신기한 게 이 경험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머리로는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이유도 없이 이런 순간이 온다는 것이 저도 신기했습니다.
보통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우선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실은 주말엔 아무것도 안 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일 내내 열심히 일하며 에너지를 소비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니까요. 가만히 누워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일단은 에너지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죠. 이 또한 잠시 멈춰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평일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 주말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미 결혼을 하신 선배님들은 나는 사실 쉬고 싶은데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는 말도 하시더라고요. 어떤 이유가 되었던, 우리는 쉬어야만 하는 주말에 쉬지 못함으로써 잠시 멈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말씀드렸죠? 결국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황이 온다고 말입니다. 마음이 이 상태가 왔을 때는 몸이 자동으로 휴식할 수 있는 기회만 찾게 됩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몸의 반사적인 행동일 수도 있어요. 이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원래 하던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잘 아시다시피 몸과 정신의 탈진 상태, 즉 번아웃 상태가 찾아옵니다.
내가 경험했던 번아웃
번아웃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긴 합니다. 해야 하는 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무리하다가 결국 정신의 탈진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요, 저도 인생을 살면서 번아웃을 경험했던 적이 2번 있습니다.
저의 번아웃은 각각 다른 직장에서 근무할 때 발생했습니다. 둘 다 업무량으론 만만치 않았던 데다 특히 첫 번째로 경험했던 번아웃은 이미 벌어진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2억 원이 넘는 금전손실이 발생하는 상황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제가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당시 벌어졌던 저 금전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1주일 넘게 제대로 퇴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관련 부서, 타 기관의 담당자로부터 수도 없이 욕을 들어야 했고, 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던 그 사람은 오리발을 내밀며 정시 퇴근했습니다. 심지어 그다음 날 휴가를 냈는데, 퇴근하고 했던 테니스 시합 후에 손목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사고 수습 당시에는 저런 일 하나하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진급은커녕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무사히 수습을 마치고 원래대로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저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머릿속이 꺼진 TV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귀에선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이명이 울렸습니다. 분명 혼자 있는 사무실인데 귀를 찢을 듯한 '삐-'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웠습니다. 몸이 고장 난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저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몸이 빨갛게 익을 정도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습니다. 몸에 긴장이 풀리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했던 행동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해서 그런지 왠지 심장도 빠르게 뛰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저는 방에 있던 브랜디 양주를 꺼내 물컵에 절반이 넘도록 술을 채웠고, 그대로 들어 한 입에 다 마셨습니다. 하지만 평소엔 소주잔에 2잔만 마셔도 한껏 취기가 올라오던 것과 달리 10분이 지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몸이 고장 난 것인가? 싶은 생각에 공포감이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저는 브랜디를 한잔, 아니 한 컵을 더 따라 마셨고, 눈에 보이는 음식은 전부 다 입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양을 먹었는데도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브랜디를 거의 1컵을 넘게 마시다 보니 취한 듯한 기분과, 샤워로 따뜻해진 몸의 기운이 더해져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일요일 밤 11시쯤에 잠에 들 수 있었고, 다음날 12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휴대폰에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10 통도 넘게 와 있었습니다.
멈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보고 저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어제 보내 둔 보고서 덕분에 부서장님꼐도 큰 질책 없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출근하지 말고 쉬어라는 배려의 말씀 덕분에 저는 월요일 오후를 평소와는 달리 제 방의 침대에 누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노가 1번이었고, 어제 처음으로 경험했던 그 이해할 수 없는 감정상태에 대한 재발의 공포가 2번째 이유였습니다. 물론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제가 믿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0순위였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저의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노를 제가 밖으로 표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상대는 저보다 선배이며, 상급자입니다. 결국 저는 내일도 웃으며 그분에게 인사해야만 합니다. 그분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수고했다는 격려보다는 그러게 왜 일을 그렇게 만들었냐는 질책을 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더라도 반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직은 제가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뒤, 저는 후배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바빠 평소보다 많이 서먹서먹해졌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같이 식사하기를 망설이는 후배들의 모습에 저도 당황했지만, 그 이유를 이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너무 불편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후배들이 가져온 결재서류를 받거나 할 때 눈빛이 굉장히 날카롭게 변해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고 수습기간 내내 저는 몰랐는데, 사무실 분위기 자체도 엄청나게 무거웠다는 말을 전해줬습니다. 저는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 줘서 정말 고맙고, 또 많이 부족해서 제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날 이후 저는 '잠시 멈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것
지금 제 글을 읽는 분들은 모르실 것 같아서 살짝 고백하나 만 하겠습니다. 저는 앞선 문단의 글을 적고 나서 잠시간 눈물이 났습니다. 스스로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힘들게 고생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눈물이 난 듯합니다. 또 지금의 삶에 감사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지만, 백수로 사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얼마든지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이나 자신의 목표 이외의 다른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특히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점을 반드시 인지하셔야 합니다. 공무원은 다른 사람의 삶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바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현재는 제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습니다. 가령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저는 창문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자전거를 타러 나갑니다. 밖으로 나가 맑은 하늘 아래서 30분쯤 자전거를 타고나면 글감도 떠오르고 기분도 상쾌해지니까요. 꽤 장기간 지속되었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바다 근처에 살고 있어서, 바닷가에 가면 약간의 비용으로 배를 타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배를 타고 바다를 한 바퀴 돌아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가 멈추고 싶을 때는 멈추며, 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잠시 멈추고, 다시 출발한다.
제가 말씀드리는 '잠시 멈춤'의 의미는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잠시 항구에 정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는 이유는 그동안 항해하며 관리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치고, 또 다음 출항을 준비하며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거나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저희가 사는 삶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의 항구 정박과 출항을 인생으로 비춰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지금 백수로 지내는 것은 다음 목적지로의 출항을 위해 잠시 동안 항구에 배를 정박해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박기간 동안 해야 할 일도 대략 감이 잠 히지 않나요? 다음번의 출항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서 지금 준비해야 할 것, 또 갖춰야 할 것을 생각해보며 착실히 계획을 세워 나는 것이겠죠. 우리의 백수기간이 바로 이와 같아야만 합니다. 준비가 잘 갖춰질수록 우리 인생의 두 번째 출발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