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내가 아니듯, 나도 남처럼 될 수는 없다. 세상에 나는 하나뿐.
출처가 불확실한 생각을 정리하다
백수 생활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모든 생각의 흐름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매 순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과 이루고자 하는 것을 꾸준히 생각하고 이를 글로 옮겨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과연 내가 언제부터 '남들처럼'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근원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어딘가에서 직간접적인 경험을 했거나 믿을만한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믿게 되었을 것인데, 문제는 언제부터, 그리고 누구의 영향으로부터 그 믿음이 생긴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게 이 문제는 중요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한 번 '억지로 참고' 노력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첫 직장을 공공기관으로 결정해서 근무했는데, 직장을 고를 때 부끄럽게도 별 고민이 없었습니다. 그냥 '남들이', 또 '주변에서' 공공기관에 어떻게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들어가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는 그럴듯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제가 믿었던 가장 확실한 근거는 '설마 남들이 괜히 그러겠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경제학의 첫 번째 가정이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는 명제와 같이, 사람들이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공공기관, 공무원이 되는 것을 선호할 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다들 나보다 똑똑하고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저는 대다수가 내린 고민의 결론을 그저 따라만 가면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상상했던 것처럼 오래 근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도대체 왜 취업준비를 할 때 그토록 남들이 하는 생각이 다 맞을 것이라고 믿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참 오랫동안 제게는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사실은 제일 먼저 확실하게 정리를 했어야 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도 저의 경우처럼 자신이 맞다고 믿고 있는 것들 중에 의외로 생각의 근거나 출처가 모호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삶에 대한 무지함과 게으름
도대체 왜 저는 진지하게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진로와 미래의 직업선택에 있어서 충분히 알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 부분을 단순하게 결론 내렸습니다. 그것은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심지어 게으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이 외의 설명은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저도 솔직히 이 생각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남들이 선호하는 것에 대해 '그런가 보다', 남들이 바보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그 선택이 제게 잘 맞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보는 것을 하지 않았던 데는 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과정 자체가 번거롭고 귀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보태면 만약 남들이 다들 선호하는 선택을 하다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변명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별로 생각 없었는데 남들이 하라고 하니까 한 번 해본 거라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참 비겁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선호하는 어떤 것에 대해 그 선택이 자신에게 적합한지의 판단보다 더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것은 남들이 선호하는 그 선택이 과연 나에게도 반드시 잘 맞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 이외에 우린 모두 남
앞서 언급한 질문, 즉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어떤 것들이 과연 자신에게도 적합하다고 믿어도 되는가에 대한 답을 생각해봅시다. 결론은 '모른다'입니다. 여기서 좀 김이 빠진 분들이 있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저 '모른다'는 대답이 꽤 중요합니다. 핵심은 '잘 맞을 거다'가 아니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에게도 그런 부분들이 꽤 긍정적으로 느껴질 가능성은 분명 높을 것입니다. 사람은 공통점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결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남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가족은요?라고 되묻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입니다. 내가 아니니까요. 수학으로 비유를 하면 나는 하나의 집합이고, 다른 사람은 나의 여집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쉬울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부모 자신 간의 유전형질의 일치성을 근거로 들며 가족은 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나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가족이 남이기에 더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남이라는 것은 곧 나의 존재만큼이나 부모님, 형제자매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그분들의 자아 역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은 자신의 욕망과 인생을 희생하기도 하며 가족을 위해 삶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가족을 나와 다른 남, 나와 동등한 입장의 또 다른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족 간에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아 찾기의 과정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앞서 가족의 예를 통해 우리는 나 이외엔 모두 남이라는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나만의 무언가'가 나에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만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마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결론 내리는 것도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환경, 성격, 기질과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만약 이런 자신만의 기질과 특성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분과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처럼'사는 것이 그들에겐 상당한 만족감과 성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대로 살더라도, 그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게 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좀 골치 아파집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게 나를 즐겁게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나의 생각을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나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각에 따를 것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제가 백수로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꼽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자신에게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보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즐겁게 느끼며 어떤 가치를 좋아하는지, 또 반대로 싫어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하나씩 알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이어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이 정말 나의 감각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남들의 생각을 답습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것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결국 이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기질을 파악하게 되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의 근원과 연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도덕 교과서에서 '자아 찾기'라고 배운 적도 있을 것입니다. 중학교 때는 글로만 읽었던 이 자아 찾기를 백수가 되어서야 해볼 수 있었네요.
와 좋겠다! 거기서 끝
이와 같이 '자아 찾기'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는 자신만의 기질이 뭔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확실하지 않아도 됩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남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구나,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을 내가 꼭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정도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저는 백수로 살아가는 이 시기 동안 '자아 찾기'과정을 꼭 거쳐가길 권해드리곤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전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며, 더 큰 장점은 예전과 달리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지나친 부러움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후자의 이유 때문만 에라도 자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실 것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주야장천 드리는 말이 '나'는 남과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내가 부럽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삶은 나의 삶과는 아예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영선수가 달리기 선수의 금메달을 부러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영선수인 내가 달리기로 금메달을 딸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든, 멋진 직업을 가졌든, 훌륭한 업적을 내든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일 뿐입니다. 당연히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그 삶을 내가 그대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라는 말이 성립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고요? 나는 저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걸 글자로 보면 다들 이해를 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의 '빛나는 모습'만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에 슬픔과 숨기고 싶은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sns에 자신의 어둡고 부끄러운 사실만 게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그 반대의 경우는 많이 봤지요? 하지만 한쪽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쪽짜리 사람을 보고 자신의 삶 전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약 저 사람의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면을 종합적으로 다 보게 된 다음에도 지금과 같은 박탈감을 느끼게 될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요. 다 떠나서 지금 하고 있는 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것처럼, 저는 지금 달리기 경기의 메달을 따지 못해 박탈감을 느끼는 수영선수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멋진 삶을 보고 '와 부럽다' , '멋지네' 정도만 느끼면 됩니다. 그런 다음엔 빨리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집중해야죠.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기에도 하루는 결코 길지 않거든요. 이렇게 살다 보면 결국 하루의 모든 시간이 오직 자신을 위하여 사용되는 시점이 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자신으로 하여금 한 가지 선물을 가져다주는데요,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멋과 매력'이라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꽃, 나 자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만의 멋과 매력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처럼 살아가지 않으니까요. 물론 그 삶의 방식에 대해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향수도 그 향기를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듯, 자신의 매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매력만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언젠가는 만나게 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너도나도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길 포기한 채, 남들과 비슷한 형태로만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도 매력이 됩니다.
그래서 한 때 유행했던 노래 가사처럼, 앞으로의 시대는 '넘버 원보다는 [온리 원]'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나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요즘은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은 직장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그 매력을 표현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을 자주 경험하고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시대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게 한 때의 유행으로 결국 사그라들게 될까요 하니면 앞으로는 이와 같이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 능력을 다방면으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가 될까요? 저는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같은 생각을 백수로 지내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씩 알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고민하면서 제가 가진 장점도, 단점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처럼 사는 것을 포기하고 나니까, 저의 단점을 꼭 고쳐야만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단점을 가진 모습도 제 모습이니까요. 그럼 글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제 단점 하나만 소개해드릴까요? 저는요, 술만 마시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하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네요. 아마 회사 다니면서 부장님한테 이랬으면 큰일한번은 났을 텐데, 지금은 추억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