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모아가기
요즘은 큰 일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하나쯤은 사소하지만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곤 합니다. 가령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예전에 봐두었던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셔보고,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저에겐 작지만 특별한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전철로 출근과 퇴근할 때 우연히 걸었던 길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평범한 길인데도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짧은 순간, 평범했던 출퇴근길이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곳처럼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이 저에겐 참 좋게 느껴졌습니다.
개학을 해서 그런가 자동차보다는 전철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요즘, 제가 다니는 길엔 왠지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우아한 건물이 있습니다. 그곳은 카페였고, 그러고 보면 몇 년 전엔 부모님이랑 갔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는 분명 집에서 먼 곳인데 여기까지 올 일이 다시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이곳이 직장 근처가 되었네요. 사람일은 역시 모를 일인가 봐요
아직 한적한 카페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책상과 테이블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갖춰진 것이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QR코드가 표시된 장식에 카메라를 가져다 놓으니 메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메뉴가 있었고 원두를 고르는 것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고소하다고 적혀있으면 고소하는구나, 플로럴이라고 적혀있다면 향이 좋은가보다 정도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우선 커피를 주문합니다.
드립커피라서 그런지 커피가 나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바쁜 일은 없으니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쳐다보기도 하고, 언젠가 꼭 읽겠다고 생각해 주문했던 달리기에 관한 책도 펼쳐보았습니다. 달리기에 관심이 많은 요즘, 지난달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달 동안 50킬로의 달리기 마일리지를 적립하기도 했었죠. 별 것 아닌 기록에 얼마나 뿌듯하던지, 책을 읽으면서도 오늘은 몇 킬로를 달릴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난생처음 들어본 '탄산수를 먼저 마시고 커피를 마셔보세요'라는 직원분의 말씀을 착실하게 이행합니다. 음...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탄산수를 마시고 나면 커피가 더 산뜻하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그냥 커피 만으로도 맛있었거든요. 커피를 절반쯤 마셨을 무렵, 이제 해는 저물었고 카페에도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조용할 것만 같은 분위기지만, 옆에선 아저씨 두 분이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내용까진 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방해되지는 않습니다. 혼자 있기엔 너무 적적하니까요. 딱 적당한 인원수, 습한 밖과 대비되는 선선한 에어컨 바람.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어 테블릿을 열고 저는 9월의 첫 번째 글을 적고 있습니다.
가창한 내용이라곤 없는 글인데, 저는 평일 저녁에 제가 이렇게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머리에 담긴 생각을 이렇게 글씨로 풀어낼 수 있는 순간을 제가 경험하고 있다는 것에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좋은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별 것 없는 평온한 나날일지라도 하루 속에서 이 순간을 잠시마나 가져볼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분 좋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20대, 혹은 서른 살 무렵의 제가 지금의 저를 만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해집니다. 가슴이 뜨거웠을 시절엔 뭐라도 해야 하고 해내야만 한다는 조급함에 지금 저의 모습을 답답해하는 과거의 저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래, 내가 그동안 노력해 왔던 것은 이렇게 하루를 조금 더 평온하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이던,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제가 원했던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너무 미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앞으로는 더 솔직하게 저를 표현하고, 저의 마음의 이끄는 방향으로 하루를 채워가 보고 싶습니다. 그게 맞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