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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백수의 돈 관리:
그것, 꼭 사야 할까요?

구입하기 전에 고민할 것 두 가지는 '목적'과 '기능'

by 이도

살까 말까 망설임이 들었을 때

일단 사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 옳은 선택이었다.




백화점 산책


예전 글에서 저는 산책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보통은 야외에서 산책하는 경우가 많지만, 산책하기엔 날씨가 적합하지 않을 때는 실내에서 산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산책 삼아 자주 가는 곳 중 하나는 백화점입니다.


백화점은 뭔가를 사기 위해 가면 참 지루하고 피곤한데, 아무 생각 없이 구경만 하러 갔을 때는 굉장히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뀝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며 1층에서부터 풍겨오는 향수와 화장품 냄새를 맡게 되면, 저는 평소와는 다른 낯선 곳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맡으며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저와 같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산책하는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몰링(Malling)이라고 정의되는 이 산책 방법은 주변에 사람이 많고 위기상황에선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노인분들에게 추천하는 산책 방법이라는 것이 신문을 통해 소개된 적도 있었습니다.


20ea1a433b082f38545bc3c4367dae32_1515067496_8403.jpg 마트와 백화점은 또 하나의 산책코스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직장인들과 달리 백수인 저에겐 평일 오전과 같이 한적한 시간대에 여유롭게 백화점을 구경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끔은 저 이외엔 아무도 없는 공간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뭔가 제가 백화점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상상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상은 부차적이겠죠. 백화점에 가서 우리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물건들입니다.


백화점에 가면 평소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사고 싶어 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친절한 직원분의 설명을 듣고 나면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의 경우, 직원의 설명을 들어도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그 직원의 노력이 가상하다는 이유로 물건을 하나 사주기도 합니다. 더 흔한 경우로는 기왕 백화점에서 왔으니 '뭐라도 하나 사서 가자'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백화점에 가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 백화점은 굉장히 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같이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쇼핑이 가능해진 시대에는 일단 백화점으로 고객이 오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단 백화점에 고객이 오시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어떤 식으로든 물건을 하나 둘쯤은 구매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기왕 백화점 씩이나 왔으니까요.


그래서 백화점에선 고객들에게 '뭐라도'하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온갖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백화점에서 구매하게 되는 브랜드 제품 이외에도 서적, 음반, 소모성 전자기기, 수입산 식재료 등과 같이 큰돈은 들지 않으면서도 취미나 선물용 도로 구매하기 적합한 물건들을 진열해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이 생각보다 잘 팔립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것을 사주신다고요? 기왕 백화점 온 김에 '뭐라도'사자는 생각이 든 고객분들이 사주시는 것입니다.




소확행의 함정


최근엔 이렇게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좀 괜찮은 품질의 물건이지만 가격대는 같은 브랜드 내 다른 제품에 비해서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두고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니 명품 브랜드점에서 판매하는 스카프, 손수건, 넥타이나 핸드크림 등을 사는 것이 소확행의 예시가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확행은 앞서 소개드린 백화점에 방문한 고객이 '온 김에 뭐라도' 구매하게 만드는 전략을 수행하는데 굉장히 매력적인 수단입니다. 백화점 전략기획팀에서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처음엔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시작된 소확행의 소비가, 뛰어난 인력들이 가공한 판매전략과 마케팅의 마사지를 받고 나면 '사지 않으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기분이 들도록 소비의 형태가 바뀌는 것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제가 읽었던 소설 중에서 '속고 있는 사람이 속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기는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이렇게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질문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주의하라고 설명드렸던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확행에서 시작한 고객의 소비욕구를 살짝 바꿔서 고객이 어떤 물건에 대해 그걸 구매하지 않았다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도록 만드는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나쁜 행위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함정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떤 점이 함정일까요? 그것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인데도 마치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잘 알려진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서 크리스마스 연말 세일로 핸드크림을 평소보다 50%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나니 기존 3만 8천 원 하던 핸드크림이 1만 9천 원에 판매하는 것이 굉장히 저렴해 보입니다. 심지어 선물용 포장도 500원만 추가하면 해준다고 합니다. 이제 사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50%의 할인을 하고, 500원 선물포장 이벤트는 해당 화장품 브랜드의 핸드크림이 잘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실무진에서 기획하고, 회의를 거쳐 부장님이나 임원의 결재가 떨어진 하나의 작은 비즈니스 판매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런 기획전을 실시하더라도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보다는 신규 고객이 유입될 가능성이 더 높으며, 여전히 원가 대비(화장품의 원가는 연구개발비를 포함하더라도 판매 가격의 20%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높은 마진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산출되었기에 가능한 이벤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확행을 즐길수록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족스럽게 소비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도록 누군가가 밤낮으로 회의와 고민을 한 결과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적과 기능에 집중한 소비


그렇다면 정말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소비의 목적과,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능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무작정 저렴한 것만 소비한다고 해서 그게 합리적인 소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목적과 기능에 집중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이 소비에 대해서 '왜'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가령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선물의 목적은 상대방에게 일어난 이벤트에 대해 축하하기 위함입니다. 이게 선물의 목적 중 하나이며, 선물을 통해 상대를 축하함으로써, 나에 대한 상대의 호감을 더욱 높이려는 또 하나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은 기능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연구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할 것인지, 그리고 선물에 만족함으로써 나에게 호감을 생기도록 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선물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너무 저렴하면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며 너무 비싼 선물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상대방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고른 뒤, 그 선물보다 약 30% 정도 더 괜찮은 상품을 선택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가령 10만 원에 구입 가능한 물건이 있다면, 그보다 조금 더 상위에 있는 13~15만 원 정도의 물건을 구입해 선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을 경우 상대를 실망시킨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에 대한 소비에 있어선 더 철저하게 목적과 기능에만 집중합니다. 특히 이러한 선택을 함에 있어 다른 사람이 나의 소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즉, 내가 뭘 입거나 사용할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비하는 것이 참 편합니다.


가령 곧 겨울이 오면 점퍼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년에 잘 입었던 점퍼 외에도 여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점퍼를 살 때 4가지를 고려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짙은 갈색이니, 이번엔 회색이나 검은색 점퍼를 살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털이 들어간 물건은 구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디자인은 너무 튀지 않으면 문제없고 모자는 달리지 않은 것이 편합니다. 가격은 10만 원 아래로 구매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4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물건이 보이면 바로 구매하고 난 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잘 입고 다닐 뿐입니다. 누가 저의 점퍼에 대해 브랜드가 어떠한지, 기능은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도 없을뿐더러, 평가를 받더라도 금세 잊어버립니다. 제가 판단해서 잘 구매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목적과 기능에 집중하는 소비입니다. 이 원칙을 가지고 소비를 하면 낭비성 지출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꼭 사야 하는 것이 별로 없다


결국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사고 싶거나 이걸 사면 이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소비를 할 때 그 목적과 기능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여러 번 해보는 습관을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평소에 생각하고 있으시면 이것 만으로도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들어 돈이 조금씩 모인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세히 들여다보고 따져보면 우리가 필요한 순간에만 지출할 수 있도록 지출습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있어 꼭 사야만 하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과정을 통해 여러분의 돈을 지켜드리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린 이렇게 모든 돈을 가지고 소중한 경험을 쌓기 위한 소비도 해야 하며, 오랜 기간 꿈꿔왔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지출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의 돈이 대신 열심히 일하도록 투자의 종잣돈을 모으기 위함입니다.


예전에 어떤 방송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0% 할인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요, 만약 저 말이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사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했던 말이라면 저도 동의하고 싶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뭐든지 안 산다고 생각하면 그건 안 좋습니다. 돈은 소비하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쓸 땐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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