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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백수의 돈 관리:
경험을 얻기 위한 지출

좋은 경험을 위한 지출은 소비가 아닌 투자가 된다

by 이도

경험을 얻기 위한 소비는

형체가 없더라도 내게 남아있다

경험을 위한 소비는 인생의 저축이다




소비의 재정의


돈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꼭 나타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비를 최대한으로 줄이기만 하면 돈 관리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은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낄 만큼 아끼면서 번 돈은 몽땅 은행에 저축만 하면서 살면 안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 생각에 대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근로능력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하여 목돈을 마련하는 것은 노후준비의 기초이며, 또한 우리는 살면서 큰돈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에, 그때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저축을 충분히 해두는 것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간략하게 말해서, 저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안 행복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특히 백수로 사는 분들 중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백수로 사는 어떤 분들은 돈을 쓸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현재 돈을 벌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어찌 함부로 돈을 쓸 수 있겠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당연히 이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면 왜 백수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는 본인이 마음을 먹으면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저라면 돈을 쓰는 것에 불안하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돈과 소비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의 의견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이자 목표가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비에 대해서도 생각을 재점검해볼 필요는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덜 불안해지고, 반대로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데 소비할 수 있을까요? 소비를 통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러한 소비를 더욱 많이 해보기 위해 더 열심히 살기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는 그 방법의 하나로써, 소비는 언제나 '경험을 얻기 위함'에 목적이 맞춰져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잊지 못할 승마체험


저는 어릴 적부터 말이라는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말은 역사적으로도 인간의 삶에 오랜 기간 함께 있어왔다는 점과, 영화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꼭 한번 나도 말을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말을 타겠다는 상상만 했을 뿐 직접 실행에 옮기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Screen-Shot-2019-08-06-at-10.50.26-AM-1024x490.png 초원에 있는 말을 보면 괜히 설레고 그랬습니다.


퇴사하고 난 뒤, 저는 제가 지금까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100가지가 넘었는데, 말을 타고 달려본다는 것은 무려 10위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특별히 순서를 정하지도 않았고 음악을 들으며 굉장히 몰입해서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인데도 승마체험이 이렇게까지 높은 순위에 있을 것이라곤 목록을 적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제 무의식 중에 승마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곧장 승마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보니 1시간 거리에 있는 경마장에서 주관하는 말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예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약 시간에 맞춰 저는 승마체험을 하는 곳에 도착했고, 마침 그날은 평일이라 제가 제일 먼저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본 말은 상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말의 코에서 불어 나오는 콧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제 머리카락이 살짝 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벌써부터 신이 났습니다. 그 후 승마에 대한 교육을 교관님으로부터 배운 뒤, 저는 교관님의 도움으로 말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말 위에 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고 흔들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과거 몽골제국이 세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말 위에서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등자를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장이 꽤나 두꺼웠는데도 말의 심장박동이 제 다리를 통해 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말에 묶인 끈을 교관님이 당기자,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46787f381535e10daf472e14668c490f.jpg 말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교관님이 말을 제어해주고 있으셨고,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에 점차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오는 데다 오늘은 제가 상상만 하던 승마를 체험하는 멋진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기 시작했던 그 찰나, 말이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 앞에 있던 나무기둥을 확인하지 못해 발이 걸렸던 것입니다. 하필이면 교관님이 끊을 세게 잡고 있지 않아 말은 갑자기 속도를 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몇 초간의 순간에도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겁이 나서 말 등에 바짝 엎드려 양팔로 말의 목을 감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사실 글로 적으면 굉장히 급박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말이 잠깐 발을 헛디디였고, 그 때문에 한 50미터 정도 앞으로 약간 속도를 내 달린 것이 전부이긴 했습니다. 그 마저도 다른 교관님이 빠르게 조치를 해주신 덕분에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말에서 내리고 난 뒤, 저는 제 등이 땀으로 다 젖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깐 동안 정신이 멍 한 상태로 있었지만,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가 탔던 말이 제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머리를 제 팔에 기대며 아양을 떠는 것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것도 참 신기했는데,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돌하르방처럼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한 첫 승마체험입니다.




경험은 돈보다 가치 있다


제가 갑자기 승마체험이야기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경험을 얻기 위한 지출에는 아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승마체험 동영상을 보더라도 제가 그 짧은 순간 말 위에서 경험했던 것만큼 실감 나게 체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의 승마체험은 제게 평생 동안 기억될 추억이 되었습니다. 저는 친구와의 만남에서 동물 이야기가 나오면 이날 제가 경험한 승마 이야기를 꼭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나 각종 매체에서 말에 관련된 이야기나 장면이 나오면 좀 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하나의 경험은 그 이후에도 추억으로 남아 우리의 삶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가보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의 진정한 시작은 관광지에 있는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것이 아닌, 외국의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배워왔고 익혀왔던 수많은 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그 자체가 우리에겐 신선한 경험이고 여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러한 경험을 쌓기 위해선 시간도 필요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시간이 없어서 경험을 쌓지 못한다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을 잘 찾아보면 승마체험이 아니러라도, 시간만 있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추억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백수 시절에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이라는 재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험 축적을 위한 지출에는 아까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경우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보다 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전체 지출금액은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경험을 쌓는다는 것이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지만, 잘 찾아보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가령 저는 지난여름에 서핑 체험을 하고 왔는데, 하루에 2만 원이면 서핑 경험을 충분히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 시간을 활용해 많은 경험을 쌓는 것 자체가 돈 관리만큼 소중한 자산의 축적이라는 것을 믿고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20191227170821497.jpg 경험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돈 관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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