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바라는 것을 해보기 위한 지출에 망설이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 이룰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할머니의 한마디
지긋한 연배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하며 아들 부부와 손녀가 함께 사는 농가에서 한적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으신 분입니다. 어느 날 여름방학을 맞아 농업 고등학교에 다니던 손녀가 동급생인 남자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손녀의 설명을 들어보니, 도시 출신인 친구에게 방학 동안 집안의 일을 거들며 농업을 배워볼 기회를 주고 싶어 데려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쭉 지켜봤습니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역시 엉성합니다. 젖소의 착유기 작동과정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당일 출하 예정이었던 우유가 못쓰게 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다들 처음엔 누구나 실수하는 것을 알기에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본인이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별 탈 없이 넘어갔습니다.
방학기간이 끝날 무렵, 남자아이는 그간 열심히 일한 대가로 급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여를 어디에 쓸 것인지 넌지시 물어봅니다. 남자아이의 대답은 자신이 가장 아끼며 키웠던 돼지를 도축하며 만들어진 돼지고기를 사는데 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축할 돼지에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름까지 붙여 밤낮으로 열심히 키웠던 돼지가 도축되었던 사건은 사실 남자아이에겐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축은 축산업 종사자들이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이 기르던 돼지의 고기를 구매하겠다는 것은 자신이 축산업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정신적 성숙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제가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를 들려줍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꿈과 피아노
위 내용은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은수저]라는 만화에 수록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도시 출신인 주인공이 농업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이 잘 묘사되었던 작품인데요, 저는 여유가 있는 분들에겐 종종 이 작품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부자인 우리 백수들에겐 꼭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돈을 전혀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돈 관리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되, 자신의 삶을 채워줄 의미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한 지출은 아껴선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꿈을 위한 지출입니다.
꿈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꿈은 오랜 시간 노력과 공부가 필요할 수도 있고 또 몇 가지 꿈들은 지금 당장 시작해볼 수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판단했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당장 이룰 수 있는 꿈들에 대해선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돈을 모으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꿈을 이뤄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여기에 대해선 추가적인 설명보다, 제가 가진 꿈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 저의 꿈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는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Goose house라는 채널로서, 그 채널에는 인디밴드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멤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였지만, 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제가 느꼈던 감정은 '부럽다'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O8lFROzMs
저는 일본어를 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면 참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낙 번역이 좋아 구성원들의 프로필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나이 때의 음악가였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부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이렇게 합주를 해보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특히 제겐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다들 그렇듯, 저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피아노를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셨지만 어린 나이에 연습과정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거나 연주회에 가서 피아노 연주 장면을 보게 되면 항상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피아노를 계속 연습했다면 지금쯤 좋아하는 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생각에서 오는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10년이 넘도록, 피아노 배우는 것은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직장에서 자리 잡고 나서 등등 핑계만 대며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배울 시간과 여유가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지금은 배울 때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카페나 술집에서 피아노를 보면 늘 상상했습니다.
그 상상은 제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면 저기 사람 없는 피아노에 가서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상상이었습니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꽤 즐거워지긴 했지만, 생각의 끝은 씁쓸했습니다. 결국 아직도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저는 직장을 퇴사하였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피아노를 구매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상당히 비싼 가격대의 피아노를 구매했습니다. 하다못해 지불한 금액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피아노를 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피아노만큼 중고 물건이 많은 악기도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성인이 되어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하지만, 어린 시절과 같은 이유로 금세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엔 걱정을 했습니다. 수입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너무 돈을 많이 쓴 것이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제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보며 부러워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오늘부터 이룰 수 있는 저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처음 건반에 손을 데고 눌렀을 때 들었던 그 청명한 소리가 잊어지질 않습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지겹기만 했던 바이엘도 최근 80번을 끝으로 졸업했습니다. 요즘은 학원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집에서 피아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간단한 것을 저는 10년이 걸려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10년 전에는 집을 옮기기 전이라 집에 피아노도 있었는데 더욱 아쉽습니다.
꿈과 위한 지출
저는 피아노를 구매한 뒤로, 더욱 취미생활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면서 좋은 음악을 듣고 나면 그걸 피아노로 쳐보고 싶어 집니다. 그러면 그날 해야 할 일을 끝낸 뒤 자기 전까지 피아노를 연습합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피아노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온 뒤에는, 저도 Goose house의 멤버들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함께 연주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팀이 제게 또 다른 즐거운 인생을 선사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생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제가 피아노 연습을 시작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더 이상 마음에 고민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젠 영화에서 피아노 치는 장면을 봐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도 바로 옆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면 되니까요. 물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연주를 하진 못하지만,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연주하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꿈을 위한 지출입니다. 물론 꿈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오랜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는 지금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지출을 너무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백수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꿈을 위한 지출은 자신의 삶을 한 눈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하면 돈은 도대체 언제 모으냐는 질문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꿈을 위한 지출이더라도 자신의 여력에 맞게 지출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꿈을 위해 지출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수록,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한 지출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