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8. 백수의 돈 관리:
나를 지켜줄 비상 계좌

위기의 순간, 나를 구해주는 것은 비상금이다.

by 이도

위기는 말없이 찾아온다

비상 계좌가 있다는 것만으로

웬만한 위기는 대처할 수 있다




금전관리의 첫 단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은 '명확한 목표 설정'에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저와 같이 백수이거나, 혹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잠시 동안 백수로서 살아가는 분들에게도 뭔가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동기부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금전관리의 측면에서는 눈으로 숫자를 확인하며 목표를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한 가지 금전관리 목표를 제안드리려고 합니다. 이전까지 제가 설명드렸던 여러 가지 돈 관리방법이 번거롭게 느껴지셨다면, 우선은 이것 하나만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300만 원을 통장에 저금한 뒤,
그 통장을 없애버리세요


위에서 제가 제시한 300만 원은 '최소한'의 금액입니다. 만약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직장에서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이 있거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충분히 많은 상태인 경우라면 퇴사 전에 받았던 연봉 총액의 10% 정도, 혹은 부동산을 제외하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10%를 기준으로 설정하셔도 좋습니다.


이 돈은 앞으로 여러분이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지켜줄 가장 마지막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 돈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물론 요즘은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고도 계좌 개설이 가능한 만큼, 통장을 없애라는 것은 이 비상금을 언제든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위기는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찾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한밤 중 적군이 기습공격을 하듯 찾아봅니다. 그렇기에 많은 분들은 인생에 찾아올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평소에 저축을 해놓거나 보험에 가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수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달 납부해야 하는 보험금 역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건이 되지 않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바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직장에 다니기 전에는 보험을 가입할 여유가 없었고 직장 다닐 때는 계속 다닐 것이라고 생각해 직장에서 가입시켜주는 보험으로도 웬만한 보장을 다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저도 제 삶에 퇴사의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왔습니다. 퇴사와 동시에 저를 지켜주던 직장보험의 혜택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직장보험 이외엔 그 흔한 실손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역시 불안한 예상은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생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큰 병은 아니었고 쓸개라는 기관에 담석이 생겨 통증이 심해 응급실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병원 담당자분의 설명을 들어보니 담석을 제거하는 수술만 하면 무리 없이 생활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천만다행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3주 정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버지 병간호를 도와드렸습니다.


수술도 잘 끝났고, 이제 퇴원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는 병실에서 짐을 챙긴 뒤 병원 원무과로 가서 계산을 했습니다. 사실 조금 걱정도 되었습니다. 평상시에 제가 담석 수술에 대한 비용을 찾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런 정보는 인터넷으로 검색한다고 제대로 찾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직원분은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공제받는 부분을 제외하고 제가 납부해야 하는 비용이 적힌 청구서를 건네주셨습니다.


117만 3천4백 원


이상하게 저 숫자가 잘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숫자를 보자마자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평소 급여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건강보험료 공제금액이 크다고 불만을 가졌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제로 거의 절반가량의 금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안도감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백수이긴 하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비상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를 지켜줄 비상수단


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살면서 갑자기 큰돈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금 통계를 보니 대한민국에선 '하루'에만 평균적으로 교통사고가 600여 건 발생한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 뉴스에선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해 집안 물건이 전소하는 사고도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위기상황은 자신에게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백수로 살아가는 기간에는 잊어선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자신과 자신이 모아둔 돈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나 친구가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타인의 도움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상금을 모아두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심리적 안정감입니다. 제가 300만 원을 제시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월세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경우 약 6개월 정도 월세를 납부하며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월세가 40~50만 원 정도 하므로, 비상금으로 월세를 납부하며 그 기간 동안 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으면 6개월 안에는 대부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장 소득이 없어 곤란해지더라도 비상금 300만 원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절약과 저축의 습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위기상황을 대비해 비상금을 저축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월급과 퇴직금이 있는 분들에게는 300만 원이 큰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직 취업준비생이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분들에겐 300만 원이 결코 작은 돈이 아닐 것입니다. 300만 원은 최저시급으로 계산하면 350시간이나 일을 해야만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 우선 300만 원을 모아놓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동시에 저축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비상금은 모으는 것만큼 모아둔 돈을 쓰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은 [주택청약저축계좌]를 개설해 청약저축용으로 300만 원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300만 원을 제시한 또 다른 이유를 아실 수 있게 됩니다.




주택청약저축계좌 활용하기


주택청약저축계좌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집이 없는 분들이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선 보통 '분양권'이라는 것을 신청하게 됩니다. 분양권은 말 그대로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나면 해당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러한 분양권을 신청(청약) 하기 위해선 주택청약저축계좌를 개설해 일정 수준의 금액과 가입기간을 분양권 신청 조건으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2121.PNG 여기서 제가 300만 원을 제시한 이유를 아시게 됩니다.


위 <표>는 주택청약계좌를 통해 분양권을 신청할 때 지역과 아파트 면적별로 계좌에 들어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금액을 보여줍니다. 가령 서울과 부산에서 85제곱미터 면적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300만 원이 청약저축계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300'원'이 아닙니다) 이 요건은 강제사항입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분들은 향후 근로활동을 통해 소득을 벌게 된다면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을 구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 분양권 청약을 통해 아파트 입주권을 얻기 위해선 이와 같이 주택청약계좌가 필요하므로 지금부터 미리 청약계좌를 개설해 비상금을 저축하는 용도로 사용하실 것을 추천드리는 것입니다.

Housing_Sale-1-04.jpg 1순위 청약자격을 얻기 위해선 가입기간도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럼 정리해보겠습니다. 현재 서울의 경우 25개 모든 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관악구 주민이라고 가정했을 때 신축 아파트의 85제곱미터 아파트 분양권을 청약하기 위한 1순위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 <표>에 따르면, 저는 관악구에서 1년 이상 집이 없는 상태로 살아야 하며, 청약저축계좌에 가입(개설)한 기간이 2년을 넘어야 합니다. 동시에 계좌에는 300만 원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 1순위 청약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요건인 것입니다.


비상금을 주택청약저축계좌로 모아두는 것의 장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만약 비상금을 쓰려고 청약계좌에서 돈을 인출하게 되면 주택청약저축계좌는 그 순간부터 해지가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이 다시 청약 1순위 요건을 맞추기 위해선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웬만큼 위급한 일이 아니면 주택청약저축계좌를 해지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자연히 비상금을 쓰지 않는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특히 요건을 충족하는 청년들의 경우 기존 주택청약계좌보다 높은 이율을 받을 수 있는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요즘 어느 은행에서도 2%가 넘는 금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기존에 주택청약계좌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 사실을 몰랐던 분들이라면 평일에 당장 은행을 방문해서 이것부터 가입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운로드.png
cats-34.jpg
비상금 저축용 계좌로는 청약통장을 추천드립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에 대해선 아래의 정부24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도 있습니다.

https://www.gov.kr/portal/service/serviceInfo/161300000088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능력


백수로 살면서도 의외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이런 과정들이 번거롭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들은 우리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다 해내는 것들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직장 다닐 때는 점심시간에 은행 다녀온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을 아주 여유롭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열려있는 시간이라면 아무 때나 본인이 가장 편한 시간에 방문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온 김에 날씨가 좋다면 산책을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즉, 백수로 살아가는 이 시기에 제가 설명드리는 것들을 여유를 가지고 하나씩 준비해두는 것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는 백수이기 전에 성인이고, 삶을 살아가야 할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합니다. 언제까지나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이 우리를 돌봐주실 수는 없는 법입니다. 반대로 저희가 그분들을 챙겨드려야 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그토록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던 저 날 이후로 인생을 살아감에 조금 더 진지함이 생겼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항상 제 앞에서 앞서 가시던 아버지와 자리를 교대할 날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무엇보다 자신부터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꼭 백수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건강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을지를 고민해본다는 것이 더 맞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나를 지켜줄 비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여러분의 목표를 이루는 그 순간까지 300만 원을 쓸 일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7. 백수의 돈 관리: 서랍 속 동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