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관리의 시작은 흩어진 자산을 모으는 것부터
내가 가진 자산의 전부를
파악하고 모아놓은 것은
자산관리의 출발점이다
우유급식과 잊고있던 돈
얼마 전 부모님과 함께 은행을 다녀왔습니다. 예정된 계획은 아니었고 마트에 가려다 문득 은행에 볼 일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잠시 들리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함께 은행에 방문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처리할 일이 끝나고, 저는 옆에 계셨던 부모님께 지나가는 말로 기왕 은행에 오셨는데 뭐 처리해야 할 것 없는지 여쭤봤습니다. 부모님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긴 일이 있어 오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물어보니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으실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지점에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은행원께서 어머니에게 한 가지 권유를 하셨습니다.
"어머님 혹시 계좌 잔액조회 한 번 해보시겠어요?"
은행원님이 설명해준 내용은, 오픈뱅킹 도입 이후로 다른 은행의 계좌라도 본인 명의로 가입된 계좌의 잔액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은행계좌 중에서 잊어버리고 인출하지 않은 금액이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한 번 조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였는데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어머니 이름으로 된 계좌 중에서 6만 원가량의 돈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통장이 있었습니다. 이미 꽤 오랜 기간 동안 거래가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알고 보니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우유급식비로 자동이체를 신청해둔 계좌에 남아있었던 돈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기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은행원분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법인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1원도 빼먹지 않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정작 부모님 계좌의 현황은 한 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계기로 관심이 생겨 정부에서 추진 중인 여러 금융제도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알아보니 '내 계좌 한눈에'라는 서비스가 도입되어 휴면계좌의 잔액이나 보험 해지 후 남아있는 금액 등을 인터넷을 통해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재산이 얼마일까
그러고 보면 우린 그렇게 돈에 관심이 많은데도 정작 자신이 보유한 총자산이 얼마인지 제대로 아는 경우가 없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돈에 대한 관심도에 비해선 정확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찾아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알 수 있다는 믿음에서 소홀해지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산을 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한 번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자산이 얼마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자신의 보유한 전체 자산에 대해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예상되는 지출과 수입을 확인해보는 것은 돈 관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큰 단위의 금액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거나 은행 어플을 이용해 계좌 현황을 확인하면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전재산 파악하기를 백수의 돈 관리 방법 중 하나로 추천드리는 이유는 큰 단위의 금액보다는 '소소한 것'을 찾아본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어머니 휴면계좌에 남아있던 우유급식비처럼,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계좌나 자산들을 찾아보는데 어떤 정부제도나 시스템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잊고 살았던 잔액을 찾는다는 이득이 있습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본인 스스로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서랍 뒤지기부터
물론 잊고 있는 돈을 찾는 방법은 정부 서비스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취업준비생분들은 이런 방법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셔도 충분합니다. 그 대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시면 됩니다. 그것은 서랍 속에 남아있는 동전이나, 옷장 속 옷 주머니에 담겨있는 돈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저는 금액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이 돈 관리를 이렇게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경험을 얻는다는 데서 활동의 의의를 찾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부수적인 효과로 서랍과 옷장을 뒤지는 김에 불필요한 옷이나 물건들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옷장과 서랍을 뒤져보았는데요, 제가 중학생 시절 사용하던 지갑이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천 원짜리 '구권' 2장이 들어있는 부직포 형태의 반지갑이었는데, 그 지갑을 보자마자 예전 중학생 시절 학교를 마치고 나와 닭꼬치를 사 먹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동전의 경우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한국 돈도 있었지만 외국여행을 나갔을 때 남았던 동전들도 있었습니다. 이 역시 은행에서 환전도 해주지 않는 큰 값어치 없는 동전이었지만, 그 동전을 보고 있으니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들도 생각나고, 또 서로 여행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생각이 나서 역시 찾아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찾은 동전은 은행이나 편의점에 가서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계좌에 입금하시면 됩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마무리되고 나면, 우리는 이제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전체 총자산이 얼마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금액이야 매일 조금씩 바뀌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나마 자신이 보유한 전체 금액에 대한 감을 잡고 있는 것은 아마 여러분의 소비하고 싶은 순간에 적절한 브레이크 기능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의 계절, 가을입니다. 곧 있으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올 텐데요, 그러면 슬슬 겨울옷을 꺼내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옷장 정리를 하는 김에, 혹시 옷 속에 잊고 있던 돈이 있지는 않은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돈 관리는 소소한 것을 잘 챙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