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직접 함으로써 절약한다.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
게으름의 비용이 청구된다
로마 귀족의 삶
오늘은 분위기도 전환할 겸 해서, 그림 한 편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화가 로베르토 봄 피아니(Roberto Bompiani, 1821-1908)가 19세기 후반에 그렸다고 알려진 <A roman feast>입니다. 제 짧은 영어실력으로 제목을 옮겨보면 <로마인의 만찬> 정도가 될 듯합니다만, 그림에서 보이는 바로는 로마인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계급의 귀족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런 추정을 하는 것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림을 잘 보시면 귀족으로 보이는 가운데 남자는 하는 것이라곤 부채를 흔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귀족의 주변에선 그가 해도 될 일들을 모두 대신해주고 있으니까요. 옆에선 귀족이 마실 것으로 보이는 음료를 잔에 따라주고 있으며 같은 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귀족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장면도 보입니다.
남자 귀족의 오른편에 있는 여성은 부인일까요? 보아하니 여성의 오른쪽 팔에 다른 여성이 뭔가를 채워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팔찌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그들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귀족들이 직접 준비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아이가 음식이 담긴 그릇을 공손히 들고 다른 누군가가 그 음식을 집어먹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며 그림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귀족의 삶과 일반 평민의 삶을 구분 짓는 특징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귀족의 경우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타인으로 하여금 대신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신해준다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이자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의 근원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화폐 귀족의 시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수백 년 전의 귀족계급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 귀족계급이 가문의 힘과 신분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여하게 만들었던 이 구조 자체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화폐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우리가 충분한 양의 화폐를 보유하고만 있다면, 직접 해야 하는 일의 대부분을 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오늘날을 '화폐 귀족의 시대'로 재정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만약 통장에 아무리 써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해주도록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꽤 오래전 영화이지만 홍상수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면 극 중 등장인물이 모닝콜을 아르바이트로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도 이러한 모닝콜 서비스는 어플을 통해 가능하죠.
식사는 배달로 해결하고, 빨래와 청소는 가사 대행 서비스를 신청함으로써 해결 가능합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배달을 해준다고 하니 더욱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심지어 제가 악기를 배우고 싶거나 같이 산책하고, 운동할 사람을 구하는 것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일일 데이트 서비스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제는 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어진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기기와 돈만 있다면 로마 귀족이 누렸던 것 이상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틀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각을 화폐 만능주의로 빠지게 만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름의 비용
이 같은 화폐 귀족의 시대가 초래하는 문제는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모두가 화폐 귀족이 되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폐 귀족에 대한 열망은 이미 화폐 귀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지나친 동경으로 이어져, 화폐의 보유량을 통해 사람의 가치와 등급을 결정하는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가 더 중요한데요, 그것은 자신의 화폐 보유 수준과 관계없이 돈으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업무대행을 통해 자신의 욕구와 불편함이 해결되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일을 해결하는 것 자체를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돈으로 해결 가능한 행위들 중 몇몇 경우에 대해선 윤리성에 대한 문제도 검토해야 하지만, 이러한 점을 차치하더라도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행태에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하는 것에 비해 타인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에 대한 비교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오늘따라 저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습니다. 냉장고를 보니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충분했고, 유튜브를 통해 간단하지만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는 영상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김치찌개와 함께 먹을 밥과 반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모든 재료가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배달어플을 이용해 김치찌개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김치찌개 정식 8천 원에 배달비 2천 원을 붙여 1만 원을 지불합니다. 이때 자신이 주문한 김치찌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재료의 위생상태는 문제가 없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도 귀찮을뿐더러 이미 주문한 사람들이 남긴 평가를 보니 큰 문제는 없겠다고 믿어버리고 말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회폐 귀족의 시대에는 게으름이 곧 비용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을 더욱 편할 수 있게 도와주는 대부분의 일은 화폐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김치찌개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김치찌개 집이 생겨났고, 이를 집까지 배달해주는 배달기사님의 일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가게의 평판을 걱정하는 사장님을 위해 배달어플의 평판을 관리해주는 업체가 생겨난 것이 이와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금전 이외의 가치
물론 저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가령 본인이 현재 받는 급여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김치찌개를 주문해서 먹는 것이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계산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수에겐 시간이 황금만큼 소중하다고 말했으면서 지금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인데 그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돈으로 다른 일을 해결하는 것이 뭐가 나쁜지 제게 되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반론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수용하였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선 첫 번째 반론은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시급과 같은 금전으로 계산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물진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저의 입장에선 수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반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백수의 삶에서 시간의 가치는 낮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표 하나만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 이외에 해볼 수 있는 경험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에 대해 저는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중요한 만큼, 매일의 삶 속에 우리가 다양한 일을 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 또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드렸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게으름 자체가 비용이다'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백수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분들은 금전적 여유가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게으름마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돈을 모을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앞서 김치찌개의 사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술의 발전이 모든 것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꼭 사람이 게을러진다는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유튜브를 통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요리사로부터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제가 요즘 유튜브를 통해 배우는 피아노 선생님은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가르침을 받아볼 수도 없을 만큼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이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타인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스스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직접 얻게 되는 경험은 이전 글에서 설명드렸듯, 그 자체로 자신의 삶에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