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만큼은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로 살았다.
빙고게임과 부끄러움
오늘 이야기를 함에 앞서, 저의 과거를 하나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실 생각하고 싶은 내용은 아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될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의 사연은 바로 '빙고'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5살 무렵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당시 부모님의 친구분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섬진강 유역에 물놀이를 갔었는데, 사람이 꽤 많아 학원 통학용 차량으로 주로 사용되는 작은 버스를 타고 다 같이 이동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마 형과 함께 뒷좌석에 앉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는 저보단 4~5살쯤 많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부모님 친구분들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지루한 이동시간을 잊어버리는 데는 뭔가 놀이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빙고게임이었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뭔가 종이와 펜을 나눠 받았던 것처럼 생각이 나는데요, 당시 저는 한 번도 빙고라는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 역시 저는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이었기에 굉장히 낯설게 느꼈습니다.
이제부터는 단편적인 장면만 기억이 나는데요, 저는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게임 방법을 몰라 숫자를 부르지 못해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어떤 형이 자신의 빙고에 필요한 숫자를 말하라고 알려줬고,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숫자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저에게 숫자를 알려준 형이 이겼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별 일은 아닌데, 이런 저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짜증을 불러일으켰나 봅니다.
다음 판에서, 저는 게임의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빙고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빙고!'를 외쳤습니다. 확인해보면 당연히 빙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누군가 굉장히 화를 냅니다. 앞에서 저 때문에 짜증이 났던 그 사람입니다. 저는 당시 상황이 앞뒤로 다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짜증 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입니다.
당시엔 너무 어렸기에 공포감을 느낀 이유를 자세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최근까지도 그때 제가 공포를 느낀 이유는 낯선 누군가가 저를 상대로 짜증과 화내는 모습, 목소리 때문에 공포감을 느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무리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데서 느낀 소외감 이었습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화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또래의 게임 참가자들은 별 다른 제지가 없었습니다. 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제가 게임 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룰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행동 때문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부모님께 빙고게임 당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너무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의 친구분이 저를 달래느라고 한참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정작 저는 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잘은 모르지만 기억에서 강제로 삭제시켜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당시 화를 냈던 부모님 친구분의 아들을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면 빙고 게임이 있은 이후로 근 2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분도 저를 보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빙고 사건이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머리에 빙고게임 당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을 굉장히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도 깜짝 놀라 결국 식사시간에 빙고 이야기가 나왔고, 아주 겸연쩍은 사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제가 왜 그렇게 노려보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진 않습니다.)
빙고 게임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 오늘 주제와 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 느꼈던 감정을 살아오며 몇 번 더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리에 소속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소외감'은 다른 분들도 종종 느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들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감정이며, 되도록이면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공통적으로 합니다. 저는 바로 이 심리상태가 우리로 하여금 '남들처럼'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배척당한다.
결국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은, 남들과 비슷한 형태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행동에 대해 의심받고, 비판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미 조직과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있는 상황에서 그 집단의 규칙에 맞지 않거나, 집단에서 '아무도 한 적 없는'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의 행동은 범죄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즉,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사실 꽤 합리적인 선택이고, 현명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예상 범위를 넘어가는 일 없이, 혹은 그들이 해주기를 기대하는 부분에서 그 기대치보다 약간만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기만 하면 우리는 인정과 존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 있어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 째, 다른 사람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대치보다는 약간 더 나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학생 시절 다 함께 치는 시험에서, 남들보다 우수한 시험 점수를 받으면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일한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나의 의지'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마치 방의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집단생활에서는 조직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이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을 쉽게 해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만약 직장에서 이런 분들을 상급자로 만나게 된다면 하급자인 여러분들은 이분들이 승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이 분들에게 권한과 권력이 주어지면 하급자들은 굉장히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스위치 on-off'가 되는 삶의 형태가 이상적인 것으로 보이시나요? 사회생활을 잘하는 어른스러운 처신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스위치를 켜고 끄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본모습을 속이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최소한 저에겐 이런 식의 삶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몸이 거부한다는 것이 좀 더 맞을 듯합니다. 항상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가 집단에서 못 버티고 도망친 것이기도 합니다.
남들처럼 사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 더 근본적인 데서 질문을 다시 시작해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서로의 공통점만 바라보고 맞춰간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똑같은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약속을 해야겠지요. 그러한 규칙을 우리는 사회 속에서 법률로 정해두는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다 같이 조금 더 잘 살아보기 위해 함께 지켜나갈 약속'이 곧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본인이 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내가 그동안 남들이 기대하는 것에 맞춰 살아왔던 것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내가 소속된 집단에서 배척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배척당함에 따라 느끼게 되는 소외감을 두려워하였기에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담 이제 방법을 찾아야겠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성향에 맞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남들이 나의 생활양식을 따르게 만든다.
집단에 속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꾸릴 능력을 갖춘다.
욕망의 그릇 자체를 줄여버린다.
첫 번째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흔히 '셀럽'이라고 불리는 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서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저 또한 '법정'스님의 삶을 보고서, 그분의 삶을 배워보고자 집 안의 물건 대부분을 정리하며 무소유를 실천해보고자 시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본인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가치관을 삶과 행동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을 보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직과 집단의 보호를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남들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 같은 시간의 부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노력을 거듭해, 무인도에서도 혼자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부단히 노력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살아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살고자 도전하는 주체성은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관념적인 철학에 가깝습니다. '내면의 평화'와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요약하면 남들이 나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법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은 충만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1주일에 하루라도 좋으니 하루 종일 집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영화 보는 것 정도만 해도 1주일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은 퇴근하고 난 뒤 달 목욕을 결제 해운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불린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시는 맥주 한 캔을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정해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이 정도만 해도 자신의 삶 속에서 충분히 행복감을 느낍니다. 행복이 반드시 거창한 일을 해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 또한 존중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방법을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저와 약속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건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서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반드시 만족스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