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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백수의 경제 이야기:
소득과 행복은 비례하는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하여

by 이도

높은 소득은

나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




효용에 대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앞에서 재미없고 힘들었던 물가, 금리, 환율에 대한 내용을 다 읽으셨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힘들게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어려운 공부를 했으니 오늘은 좀 가벼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앞선 3편의 글을 쓴다고 꽤 힘들었거든요. 역시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이번에 아주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에너지가 부족해진 기분이라 오늘은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저의 경우엔 햄버거를 굉장히 좋아해서요, 뭔가 힘든 일을 하고 나서 지치고 배고플 때는 종종 햄버거를 먹는 편입니다. 햄버거는 종류가 다양해서 여러 가지를 골라 먹어보는 재미도 있고, 또 하나만 먹어도 금세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이 제가 햄버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intro-1540401194.jpg 맛있는 햄버거를 먹으면 아주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낍니다.


이렇듯, 제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고 나서 제가 느끼는 포만감과 같은 기분을 경제학에선 효용(Utility)라고 합니다. 물론 효용과 같은 만족을 주는 것은 햄버거와 같은 음식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효용을 주는 것에 대해서 소비를 한다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놓고 경제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실험을 하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햄버거를 한 입씩 베어 먹을 때마다 느끼는 만족감을 숫자로 표시해 노트에 적어본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주 배가 고플 때 햄버거를 한 입 먹으면 저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 만족감을 100이라고 적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먹었을 때도 만족도가 그리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첫 번째보다는 만족이 좀 줄어들 것 같긴 한데요, 한 95쯤 느낀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베어 먹을 때 역시 제가 느끼는 만족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저는 각각 85와 70만큼의 만족도를 느꼈다고 노트에 적었습니다.


저는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햄버거를 총 2개 먹었고, 베어 먹은 횟수는 전체 10번 정도였습니다. 5입에 햄버거 하나씩 먹은 셈인데요, 이때 저는 햄버거를 한 번 베어 먹을 때마다 그 만족도를 노트에 기록해두었기에 그 결과를 표와 그래프로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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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먹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제가 느끼는 만족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표와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분명 제가 햄버거를 한 입씩 더 먹을 때마다 누적되는 만족도의 총합은 증가하고 있지만, 한 입씩 먹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증가하는 만족도의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결과에 대해 동의하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해도 계속 먹다 보면 배가 부르게 되고, 어느 정도 이상을 먹게 되면 맛있다는 만족감보다는 왠지 배가 불편해지고 몸이 둔해지는 기분이 들어 만족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일상에서도 종종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선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계(Marginal)'라는 개념을 사용해 설명합니다.


'한계'라는 단어가 좀 낯설긴 하지만 어렵진 않습니다. '한 단위 더 추가하였을 때'라는 것이 한계라는 단어의 뜻이거든요. 그렇다면 아까 제가 만족감이라는 단어를 경제학에서 '효용'이라고도 부른다는 것과 같이 생각해본다면, 제가 햄버거를 먹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을 경제학적으론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경험하는 주관적인 만족도를 나타내는 효용은
한계적으로 체감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경제학에선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가장 마음속 깊이 공감했던 공식이 바로 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었거든요. 그 이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피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세상을 조금씩 더 경험하게 되면서 이 법칙이 과연 모든 것에 적용되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야기할 부분은 바로 이 의문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들만의 대답이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과 소득에 있어서도 한계효용의 법칙은 적용되는가?




행복과 소득


먼저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할 만큼,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약간 주제를 넘는 내용이긴 하지만, 과거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해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는 말도 했었습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중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중용의 개념을 간단하게만 설명해보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를 쾌락에 대입해 제 방식대로 해석하면 너무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지도 않고, 그렇다고 금욕만을 중시하며 사는 것도 아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중간점'을 찾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중용의 덕이자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중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득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이 참된 것이라면, 소득에 대해선 중용의 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소득을 얻는다는 목표를 위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소득 역시 중용의 덕이 적용되어 지나치지도, 그리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만큼만 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아등바등하며 소득이 많아지는 것만을 목표로 하며 살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볼 내용은 과연 소득이라는 개념에도 '적당한 수준'이라는 상한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일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알아보았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소득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내용에 대해 이미 연구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소득에 대해서도 한계효용이라는 것이 적용되며, 적당한 수준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효용의 증가율'이 높지 않다는 것을 실증적이 연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1974년에 발표된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


이스털린의 연구는 고전 경제학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제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즉, 전통 경제학에선 소득이 증가할수록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소비의 범위가 넓어지므로, 우리는 더 많은 소비를 함으로써 효용이 증가하고, 효용의 증가만큼 행복을 느끼는 수준 또한 높아진다는 데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털린은 1974년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를 발표합니다. 연구는 1946년부터 약 2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산주의 국가와 선진국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에서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기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의 결과는 기존 경제학의 믿음과 상반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즉,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 개인이 느끼는 만족도가 소득에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연구결과는 제가 먼저 설명드렸던 '햄버거 만족도 실험'과 동일한 형태로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아직까지 소득 수준이 낮은 가난한 나라의 경우 소득이 증가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 반면, 이미 적당한 수준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국민들이 많은 선진국에서는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행복하다는 답변을 하는 비율이 줄어들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행복도가 줄어들었다는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easterlin-paradox.png 소득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연구결과



우리가 이러한 이스털린의 연구결과에 대해 '역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스털린의 연구내용이 기존의 전통적 경제학에서 생각한 가정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이스털린의 연구에 대해 논리적인 증명과정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직장생활을 경험하신 분들은 흔히 '괜히 임원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는 일 없이 놀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임원분들의 경우, 알고 보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고생과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대기업의 경우 젊은 30~40대 임원분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가진 업무능력을 곁에서 보고 나면 저는 임원을 시켜줘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임원분들이 받는 높은 수준의 연봉이 과연 그분들이 느끼는 행복 수준에 비례하는가에 대한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제가 모셨던 전무님의 경우 월요일 회의 준비를 위해 항상 일요일 오후엔 사무실에 출근하셨습니다. 선배들에게 들었던 바로는 전무님이 일요일 출근한 것이 신입사원 때부터였다고 하니 근 30년 가까이 남들보다 하루는 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원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입사 관문을 뚫어낸 젊은 직장인들이 직장을 포기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할 때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다녀보니 상상 이상으로 업무강도는 높았고 주변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는 불안감에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득과 행복이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털린이 옳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백수로 살며 직장생활을 할 때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급여를 받고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고민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과연 '어느 만큼의 소득'이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적정 소득에 대해서


제가 오래전 읽었던 어느 논문에서는, 한국인들이 경우 이스털린의 역설에 빠지지 않는 '적정 수준'의 소득에 대해 월 500만 원을 제시하기도 했었습니다. 즉, 논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소득 수준이 월 500만 원을 벌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면, 그때부터는 소득을 높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다른 일을 함으로써 개인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월 500만 원을 번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 무한정 불가능한 수준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입사원 때는 힘들 수 있지만, 직장에서 연차가 쌓이면서 승진을 하다 보면 평균적으로 매월 500만 원 정도는 받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매월 500만 원만 받게 되면 반드시 행복해질까요?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잘못 이해한 것에 가깝습니다. 다시 햄버거의 예를 들면, 저는 7~8번째로 햄버거를 베어 먹었을 때 만족도가 급감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소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의 경우 햄버거를 반 개만 먹더라도 제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높은 만족감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소득에 대해서도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본인이 우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 만으로도 우리가 백수로 살면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취업과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는 연봉이 삶의 행복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무작정 높은 수준의 연봉을 주는 회사와 직업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해보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있어 '만족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소득 지점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맞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는 곧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수준의 만족도 증가율을 보이는 소득 수준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고민은 자신에게 높은 만족도를 주는(반대로 말해 한계효용이 급감하기 직전 구간)을 찾아내어, 그 수준만큼의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며 인생의 진로와 목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지난 장에서 설명드렸던 '인생 예산계획서'를 작성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인생 예산계획서를 작성함으로써 약 450만 원 정도를 버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소득 수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목표는 매월 450만 원을 벌기 위해선 어떤 직업과 일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내어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운이 좋아 450만 원 이상을 벌게 되는 기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저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필요할 경우엔 저는 기회를 깨끗이 포기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쓰고, 피아노를 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적정 소득만 충족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어쩌면 '적정 수준의 소득'을 찾아보는 과정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중용의 덕'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적정 수준의 소득'은 얼마가 될지 저도 궁금해지는데요, 앞서 배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여러분의 소득 수준에도 적용이 되는지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꼭 자신만의 적정 소득 수준을 찾으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maxresdefault.jpg 한계효용의 법칙은 햄버거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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