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걱정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원인은
어디서 오는가
학교 언덕길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제가 대학교 다닐 적 있었던 작은 경험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저의 대학교 생활을 정말 단조로웠습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새는 법 없이 강의실에 들어갔고, 강의가 없을 때는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으니까요.
이런 생활은 단조롭긴 하지만 그런대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저는 등록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양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는다면 이것도 등록금 값어치만큼의 일을 하는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책을 읽어가며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는 것 자체도 저에겐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습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저는 식당 아래에 있는 강의장으로 가기 위해 학교의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에선 수십 명의 학생을 태운 교내 순환버스가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것을 보며 버스도 고생이 많다는 생각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덕을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저는 우연히 제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제가 조금만 더 떨어져서 걸었다면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요, 대화 내용 전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중 어느 한 남자분이 하셨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은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어"
제가 모르는 누군가에게서 이 말을 들었던 것도 이제 5년이 넘었지만, 이 말은 여전히 제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곱씹을수록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도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사례에 적용해보기도 하고, 의미를 확장시켜가며 다양하게 해석해보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문장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덜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의 원인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크고 작은 불안함과 걱정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서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봤습니다. [불안을 느끼는 3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과거에 대한 자책 섞인 후회
현재에 대한 실천 없는 생활
제가 생각했을 때 불안한 생각의 특징은 [미래-과거-현재]의 순서로 연될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만족스러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지 않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힘든 미래가 내게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미래를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과거에 하지 않거나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아쉬움과 자책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엔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지만, 이러한 자책은 자신을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 타인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생각을 할 때는 자신의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직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데다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도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함에 있어서도 과거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에 있어서도 행동에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신은 곧 과거 자신이 살아오며 해왔던 생각과 행동이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렇기에 과거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현재를 사는 자신에 대해 갑자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때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단어는 "해봤자"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지금 뭔가 열심히 해본들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도 우리는 후회만 가득한 채 불안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과거를 축적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불안뿐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곧 지금과 미래를 과거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마음에 불안보다 희망이 차지하는 공간을 넒힐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앞으로 축적될 과거를 예전보다 더 만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며, 조금 전 느꼈던 현재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과거가 되는 것이 시간의 속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과거의 축적이자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만족스럽게 쌓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금 현재를 살아가며 꾸준하게 행동 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읽고 있는 저의 글은 제가 과거에 글을 쓴다는 행동을 하며 만들어진 저의 과거이자, 저의 인생에 쌓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물론이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자신이 제가 과거에 남겨둔 이 글들을 보았을 때 저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이 순간에 글을 쓰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기에 지금 글을 쓰며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제가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의 즐거움은 시간이 흐르며 과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과거는 현재 제가 느끼는 즐거움이 글이라는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가 과거에 적어둔 글을 읽어보며 예전에는 현재였을 이러한 글에 담긴 그때 느꼈던 즐거움과 만족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쌓아갈 것인가
이러한 생각에서 저는 불안을 덜어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이 과거를 생각했을 때 보람과 만족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많이 쌓아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네요.
"인생은 레퍼토리의 축적이다"
사실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김우창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정말 그럴듯하지 않나요?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라면, 그들은 과거 자신이 열심히 연습한 결과 언제라도 축적된 레퍼토리를 꺼내 지금 이 순간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불안감은 적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이것이 나의 삶에 어떻게 쌓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합니다. 만약 쌓이는 것이 없거나 쌓이더라도 그것이 제 삶에 '추억'으로서 기록되지 않을 법한 일이라면, 저는 그러한 일들을 우선순위에서 아주 뒷부분에 배정합니다. 저에게 있어 이러한 일들은 게임과 잦은 회식자리 같은 것들입니다.
대신 우선순위의 앞부분에는 좋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공부하는 것들도 우선순위의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면 할수록 저의 과거가 보람된 기억으로 쌓여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과거를 생각하더라도 지금 느끼고 있는 이러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추억이라는 형태로 떠오르게 됩니다.
저는 시간의 여유가 많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은 저처럼 '무엇을 쌓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미래의 본인이 오늘을 기억했을 때 '추억'이 될 수 있는 일들을 가능한 많이 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며, 보람과 만족을 주는 일들이 인생의 레퍼토리로서 축적되어 나간다면, 그러한 인생에는 불안과 걱정보다는 행복과 기쁨의 방향으로 마음의 저울이 기울어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