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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Oct 30. 2020

6-2. 가치의 축적:
쾌락은 유효기간이 짧다

내가 게임을 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서

높은 쾌락을 줄수록

나의 기억에 머무는

유효 기간은 짧았다




층간소음 허용 지대


 여러분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7살 때부터 12살 무렵이 제가 살아온 인생에 가 가장 즐거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당시에 살던 아파트 층수는 22층이었는데, 부모님의 친구분 가족들도 같은 아파트의 20, 21, 23층에 저희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왔었습니다.


 부모님 친구분들의 자녀들도 저와 비슷한 또래였기에, 저는 외로울 틈이 없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어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날따라 가보고 싶은 집은 어디든 들어가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꼭 집이 4층으로 된 주택에서 살았던 것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요즘 기준으론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제가 친구들을 부르는 방법은 일종의 층간소음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크게 몇 번 쿵. 쿵. 뛰고 나면 그 소리를 들은 친구들이 저의 집으로 올라왔으니까요.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당시에 가장 재미있게 했었던 놀이는 게임이었습니다. 특히 게임 중에서도 저희는 [뿌요뿌요]를 가장 많이 했었죠.


테트리스와도 비슷한 이 게임은 친구들과 하기에 아주 적합한 게임입니다.


 당시에도 저는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뿌요뿌요만 했다 하면 연패하기 일쑤여서, 벌칙으로 맨날 라면을 끓이거나 설거지를 하곤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 게임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까 봐 설명을 드리자면, '뿌요'라고 부르는 다양한 색상의 물방울을 4개 연결시키면 사라지는 것이 게임의 기본 구조입니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연쇄]입니다. 즉, 뿌요를 4개 모아 소멸되면서 다시 다른 색상의 뿌요가 4개로 연결되어 소멸하도록 처음부터 뿌요를 잘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러한 연쇄가 누적될수록 상대방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꽤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12월 어느 날에 부모님들이 송년회를 하러 가신 그날 밤의 뿌요뿌요 한 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연패만 하던 친구들 앞에서 제 인생 처음으로 6 연속 연쇄 뿌요에 성공해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날이 그날이었기 때문인데요, 저를 이기는 것은 잠들기 전 양치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던 친구의 당황하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기억은 제게 있어서 '추억'이라 부를 만합니다.




모험가의 꿈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저는 여전히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바쁘셔서 집에 혼자 있는 날도 많았는데, 그럴 때 친구들도 학원에 가거나 하면 저는 집에서 게임을 했던 것이죠. 이때 저는 제 마음에 심금을 울리는 게임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영웅전설 시리즈]입니다.


영웅전설은 3,4,5편이 하나의 시리즈로 이어지는데, 저는 특히 5편 [바다의 함가]를 좋아했습니다.


 영웅전설이라는 게임은 모험가들이 세상을 여행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가가브 트릴로지]라고 불리는 영웅전설 3,4,5편은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이 되는 터라 3편을 모두 플레이하고 나면 엄청난 이야기들이 한 줄기로 이어지는 데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는 5편 [바다의 함가]였습니다. 주인공인 폴트와 우나, 그리고 멕베인 할아버지, 귀여운 강아지 쟌은 위대한 음유시인 레오네 프레데릭 리히터가 남겨둔 24개의 공명석을 모아 전설로만 전해졌던 과거 수저 민족이 남긴 '환상의 멜로디'를 연주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떠납니다.


 이러한 모험의 과정에서 주인공 일행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공명석을 하나씩 모아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이 공명석에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거대한 힘을 노리는 악당,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입니다.


 제가 이렇게 게임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제가 당시에 플레이했던 게임들에 얽힌 기억들이 여전히 저에게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뿌요뿌요를 하며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고, 영웅전설이라는 게임을 하며 저는 모험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했었던 게임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습니다.




게임을 그만두다


 이후 저는 중, 고등학교 시절엔 책을 더 좋아하게 되어 게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된다면 다시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마 책을 읽었던 것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이었기 때문이지 게임이 싫어졌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생이 되었고, 동기나 선후배들과 다시 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못하는 것은 여전했던지라 동기들과 엄청 술에 취한 상태에서 PC방에 가서 단체로 카트라이더를 하다 제 카트가 바나나를 밝고 미끄러지자 울면서 짜증을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게임을 했을 때는 어린 시절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어릴 때보다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도 많고 플레이하는 게임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저에게 추억으로 될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게임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분명 지금 하는 게임은 어린 시절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면이 많았습니다.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그래픽이 사실적이거나, 스토리도 훌륭했습니다. 자극적인 면에선 감정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 세계의 유저들과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웠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게임에 투자한 시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게임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게임을 하면 분명 즐겁긴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저의 머리에 기억으로 남는 순간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쾌락의 유효기간


 저는 게임을 그만둔다는 경험을 통해, 자극적인 쾌락일수록 그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게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술에 취해 즐겁게 웃고 떠들며 회식자리를 가진 뒤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을 보았을 때 제가 느끼는 기분도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식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조차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어릴 적 제가 뿌요뿌요와 영웅전설이라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역시, 단순히 쾌락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보다는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던 그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좋은 소설책을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지금까지도 제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것이나 회식자리를 꼭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게임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로부터 술자리에서 들었던 진심 어린 한 마디에 인생의 중요한 결심을 하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결국 우리가 주의할 것은 쾌락을 좇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쾌락은 유효기간이 짧지만, 추억은 유효기간이 영원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쾌락은 없지만요. 그렇기에 가치 있는 것들을 쌓아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우리들에겐 자신이 지금 하는 것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지, 추억이 될 수 있음 직한 일을 하는 것인지를 구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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