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공감과 위로면 충분합니다
지적하지 않아도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해줍니다
내가 답답할 뿐
우리는 종종 그들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하거나 지적하곤 합니다. 이런 행동에 대한 이유는 언제나 그럴듯합니다. '나니까 특별히 알려주는 거다', '나 때는 이렇게 알려주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 '내가 정말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너무 안돼 보여서 알려주는 거니까 잘 알아둬' 등등,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지적하는 데는 항상 정당한 이유가 붙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의 충고와 지적에 감사해하기는 커녕,
나에 대하여 분노와 불쾌감만 쌓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지적하거나 충고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여러분은 어딘가에 있는 술자리에서 어떤 안주보다도 훌륭한 안주거리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어떤 사람도 타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거나 충고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자꾸만 타인에게 지적을 할까요?
저는 그 이유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알려줄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만족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우리가 남에게 잔소리하거나 지적을 하는 원인은 남이 아진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미 대부분 말씀드렸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잔소리하거나 지적하는 것을 싫어할뿐더러, 우리가 남의 행동에 지적하는 이유는 자신이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과 이를 통해 만족감을 얻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니, 가급적이면 잔소리하고 싶은 욕망을 줄여보자는 것이 오늘 말씀드릴 내용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내기엔 아무래도 지면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이와 관련된 저의 경험담 몇 가지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망고빙수 6만 원
저는 이번 여름에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제가 사는 지역에 놀러 왔던 것을 계기로 겸사겸사 저를 만나자고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었는데요, 저희 일행은 저녁식사를 한 뒤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옛날 팥빙수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동네 주민들이나 가끔 사 먹는 가게였는데, 요즘은 인기가 많아졌는지 팥빙수집이 확장도 하고 점포도 추가로 개점하신 것을 보면 영업이 잘 되시는 듯했습니다. 저는 얼음에 팥이 올라간 것 이외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이 팥빙수가 유명해졌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지만, 아마 4천 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2 사람이 먹기 충분한 양이 제공된다는 점은 이 팥빙수의 장점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먹고 있는 것이 팥빙수다 보니 대화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팥빙수가 되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 한국 팥빙수가 유행이라는 친구의 말에 이 시국에 갑자기 일본 이야기가 왜 나오냐며 장난을 치는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그건 아마도 이 친구들을 만날 때는 아무 이야기나 막 던져도 어떻게든 대화는 되겠다는 생각에서 찾아온 편안함이라고 저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친구가 말하길, 자기가 얼마 전에 신라호텔에 가서 망고 빙수를 먹고 왔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망고 빙수를 이날 처음 봤는데, 이게 빙수인지 망고 덮밥 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팥빙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빙수를 먹으러 호텔까지 간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사진을 보고 나니 이런 팥빙수면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망고빙수가 그래도 호텔이니 한 2만 원은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알려준 망고빙수의 가격은 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6만 원!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호텔에는 봉사료라는 것이 붙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빙수 가격 치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들려준 바에 따르면, 이 신라호텔의 망고빙수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름에 줄을 선다고? 저의 이해심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신라호텔이 맞다면, 그 호텔은 남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충동이나 동국대 역에서부터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한 여름에 신라호텔을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친구는 차가 없기 때문에 분명 걸어서 올라갔을 것이며, 가는 중간 땀을 뻘뻘 흘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 고생을 해서 호텔에 가 6만 원을 내고 빙수를 하나 먹고 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마음엔 친구에게 뭔가 한마디 하고 싶다는 욕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친한 친구일수록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선 안되기에,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잔소리가 될 수 있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식사 때 반주로 마신 과일소주와, 이 친구들에겐 편하게 말해도 될 것이란 근거 없는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찰나, 저는 다른 친구가 꺼낸 말 덕분에 겨우 이성을 되찾고 말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긴 신라호텔은 숙박하기엔 부담스러우니까,
친한 사람들이랑 빙수 나눠먹고 호텔이나 근처에서 놀다 오는 것도 괜찮겠다."
친구의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가득 담긴 이 말을 들은 순간, 제 마음엔 친구가 존경스럽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어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 대단한 친구입니다.
마법의 한 마디
이후에 저는 저 말을 했던 친구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이 들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사실 본인도 썩 내키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즐겁게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를 무안해지게 하는 것보단 좋게 받아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을 했었다고 제게 알려줬습니다.
친구의 대답은 제 마음에도 울림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잔소리나 지적하고 싶은 사람은 저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저까지 그 대열에 합류에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고 있는 잔소리에 제 목소리를 추가로 더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잔소리하고 싶은 사람이 훨씬 많다면, 반대로 소중해지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공감해주거나 위로해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전공씩이나 했다는 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원리는 제가 이전에 말씀드렸던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우리는 들어주는 사람의 역할을 하자는 것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제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잔소리하고 싶은 내용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었을 때는 일단은 한 번 쉬어가려고 합니다. 제 표현대로 말씀드리자면 '눈을 한 번 감는다'라고도 합니다. 일단은 제 생각을 말하지 않고, 한 번 눈을 감은 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도 무슨 이유든지 하고 싶다는 생각과 마음이 생겨서 했을 것이니까요. 제가 할 일은 이러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고 공감해볼 수 있도록 신경을 써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상대의 말에 공감해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제 마음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생각을 상대에게 일부러 들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알려주는 것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저는 이것 만으로도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눈을 감아도 눈 앞에서 뭔가가 아른거리고 방금 들었던 말이 생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화의 맥락에 잘 안 맞기는 하는데,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끔 써먹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한 마디를 상대방의 모든 충격적인 생각과 말을 한 번에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생각에서 '마법의 한 마디'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친구 : "나 갑자기 집에서 펭귄 키우고 싶어 졌어!"
나 : "그렇구나,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후배 : "선배, 저 아침잠이 많아서 회사 그만두고 싶어 졌어요"
나 : "후배님, 저는 후배님이 행복하길 바라고 있어요"
* 이 때는 웃으면서 말해야 듣는 사람도 농담이란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떤 대화에 사용해도 무리가 없고, 모든 대화의 맥락을 깨버리는 이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제가 사용하는 마법의 한 마디입니다. 꽤 효과가 좋아서 친구들은 뜬금없이 이 말을 들으면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마법의 한 마디를 개발해 보실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법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