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안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백수로 살아도 부끄러울 것은 없습니다
도망친 자신
제가 적은 글에는 백수로 살아가더라도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지만, 글을 적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 만족하고 있는 것 맞아?'라는 것이 질문의 내용인데요, 생각해보면 저도 처음부터 백수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백수의 삶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제가 "이제 백수로 살게 되었으니 저는 언제나 행복할 거예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그리고 걱정에 휩싸여 제대로 잠들지 못했던 나날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사실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에 저는 백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수가 되고 난 뒤 몇 개월 동안은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인터넷만 검색하며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나 지금 백수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백수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백수가 부끄럽다는 제 생각은 행동으로도 나타났습니다. 계속 방에서만 지내는 것은 저도 갑갑했던지라, 저녁 무렵이면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의 공원이나 바닷가에 산책을 다녀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있는 힘껏 페달을 굴려 바퀴에 몸을 맡겨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제가 지금도 종종 하고 있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저는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에 가서 야경을 충분히 즐긴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횡단보도가 나타났고 신호등은 아직 빨간불이었기에 저는 자전거에서 내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앞에는 창문이 열린 차량이 다가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차량이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것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우연히 저는 제 앞에 서있는 차량의 열려있던 조수석 창문을 통해 차량에 앉아있던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량에 앉아있었던 두 사람은 저의 고등학교 동창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들과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것은 아닌 그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언젠가 그들에 대한 소식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기억도 얼핏 나는가 싶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집안이 잘 살았는지, 혹은 하고 있는 일에서 큰 성공을 이룬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타고 있는 차량은 아주 값비싸 보였습니다.
글로 적다 보니 제가 오랫동안 창문을 쳐다본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지만, 실제론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고개를 돌렸고,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옆모습만 봤을 때는 살짝 긴가민가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제가 아는 사람이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고등학생 때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외모는 그때보다 훨씬 근사해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저는 신호등이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자전거 핸들을 돌려 그 장소를 벗어났던 것입니다. 제가 핸들을 돌리자마자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옆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냥 지나갔으면 되는 건데, 다시 생각해봐도 제가 했던 행동은 이해 못할 부분 투성입니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적었지만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자,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제가 도망쳤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도망갔는가
그날 저는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속엔 울분과 답답함이 가득해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원인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횡단보도에서 도망갔는가"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저도 이유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직도 제 마음속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마주쳤던 그 상황이 무슨 이유로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제가 생각해낸 것은 '제 처지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백수로 지낸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별 것 아닌 물음에 솔직하게 '난 요즘 우울하고 뭔가 잡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있어'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아는 다른 사람의 멋진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망갔던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제 스스로가 참 꼴사납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날 저는 혼자서 울분에 차올라 온갖 망상과 합리화를 반복하며 알량한 제 자존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하필이면 이 날 제가 아끼던 맥캘란 18년을 절반이나 비워버려 다음 날 엄청난 숙취와 후회감에 사로잡혀 종일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쓴 채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이후에 저 당시 횡단보도에서 눈을 마주쳤던 친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여전히 제가 사는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요, 이 때는 서로 길을 걷다가 눈 앞에서 만난 것이라 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당시 저와 눈을 마주쳤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는 제가 말해줄 때까지도 자신이 그날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동안이나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괜히 혼자서 우울해졌던 셈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친구도 직장을 퇴사해 저랑 같은 백수인 처지였습니다. 제가 봤던 차량도 자신이 구매한 것이 아닌 가족의 차량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듣고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제 자신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러한 두 가지 경험은 제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중요한 건 자기만족
제가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던 것은, 부끄럽다는 감정이 드는 원인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타인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부끄러움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복잡한데요, 다시 설명해보겠습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부터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더라도, 자기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수 있고, 당당하게 하루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면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 자신의 삶을 덜 부끄럽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요. 누군가와 자신의 삶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자 제가 왜 도망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백수로 지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망간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매 순간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고, 자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도 당당할 수가 없어서 도망쳤던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지금 제가 백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글에 언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데 있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더 열심히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아직도 게으름과의 전쟁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 순간 조금씩이나마 스스로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2달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던 피아노도 드디어 바이엘이 끝나고 다음 주에는 체르니 100번을 배우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생각만 해왔던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부끄럽고 숨기고만 싶었던 백수로서의 삶을, 이제는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족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숨길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나날을 꾸준히 쌓아 가다 보면 언젠가는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의 목표들을 달성할 날이 올 것이니까요. 따라서 저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미래에는 분명 기대했던 모든 일들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더 이상 제 삶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불안이 겆히고 평안과 차분함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가 찾아왔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니다. 제가 생각한 이 방법이 다른 분의 마음에도 평안이 깃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